
공장에서 짓는 원자로의 시대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는 원자로·증기발생기·주배관 등 핵심 주기기를 공장에서 표준 모듈로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건설 기간과 초기 투자 리스크를 획기적으로 낮춘다. 대형 원전이 현장 시공 중심이라 변수 관리가 어려운 반면, SMR은 공장 품질을 그대로 옮겨와 일정과 비용을 예측 가능하게 만든다. 단일호기 규모는 작지만 모듈을 병렬로 확장해 수요에 맞춰 단계적으로 증설할 수 있어, 그리드 부하와 자본 집행을 동시에 유연화한다.

두산이 먼저 만든 제작 체계
두산에너빌리티는 국내에서 가장 먼저 SMR 주기기 제작에 착수해 ‘원전 파운드리’의 기반을 구축했다. 모듈 압력용기, 열교환기, 핵심 배관과 내부구조물 등 고난이도 부품을 대형 단조·용접·기계가공·비파괴검사까지 일괄로 수행하는 체계를 정립했다. 초도 물량만으로도 의미 있는 매출이 창출되고, 이후 후속 물량과 유지보수 부품 수요까지 이어지며 장기 일감이 안정화되는 구조다. 제조 기반을 국내에 두면서 글로벌 프로젝트의 납기·품질 요구를 충족시키는 ‘제작 허브’ 역할이 가능해졌다.

‘100년 수명’의 공학적 근거
원전의 설계수명 연장은 단순 운전 연장이 아니라, 재료·열화·응력·부식에 대한 전 주기 검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SMR은 원천 설계에서 수동안전계통과 낮은 선심열출력으로 사고 시 열 제거를 수동으로도 감당하도록 설계됐다. 모듈화된 계통은 교체·보수가 용이해 장주기 운전에 유리하고, 주요 구조물의 피로·취화 관리를 용이하게 만드는 표준화된 모듈 교체 전략이 포함된다. 결과적으로 60년을 넘어 80~100년까지의 수명 목표가 설계·재료·유지보수 전략으로 구체화된다.

데이터센터와 산업단지로 확장
SMR은 기저부하 전력과 공정열을 동시에 공급할 수 있어, 산업단지·항만·데이터센터의 분산형 전원으로 각광받는다. 대형 송전망 확충에 수년이 필요한 상황에서, 부지 내 설치가 가능한 SMR은 전력망 병목을 회피하는 해법이 된다. 특히 전력 집약적 AI 데이터센터는 전원 다변화가 핵심인데, SMR은 무탄소·고가동률의 전원을 제공해 전력가격 변동과 탄소가격 리스크를 동시에 완화한다. 장기 PPA와 결합하면 금융·규제 리스크 관리도 용이하다.

한국 제조가 잡는 글로벌 밸류체인
미국·영국 등은 설계·규제 역량이 강하지만, 대형 원전 기자재 제조 인프라의 공백이 크다. 한국의 대형 단조와 주단조, 초정밀 용접·열처리 역량은 이 공백을 메우는 즉시전력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글로벌 파트너와 함께 SMR 시제품·초도호기를 거쳐 양산 체제로 전환하는 로드맵을 가동하고, 모듈 단가를 학습곡선으로 낮추는 ‘반도체형’ 생산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이는 수출형 프로젝트에서 납기·비용·품질의 삼박자를 맞추는 결정적 차별점이 된다.

장주기 성장산업으로 산업 지도를 바꾸자
SMR은 단발성 경기순환이 아니라 수십 년의 운영·정비·연료·업그레이드 수요를 동반하는 장주기 산업이다. 국내에선 실증-표준설계-규제 가이드-금융 구조를 정렬하고, 해외에선 설계·제작·시운전·운영 서비스까지 패키지로 수출하는 모델을 정착시키자. 탄소중립과 전력안보의 교차점에서, 한국 제조와 엔지니어링이 글로벌 표준을 선도하자. 그러면 ‘국내 최초 SMR 제작’의 출발을 ‘세계 3위 수명’의 자신감으로 확장해, 100년 에너지의 미래를 우리 손으로 설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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