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이 얼마나 힘들길래”…판돈 들고 싸움판 전전하는 동학개미들

만성 저평가, 금투세 폭탄에 ‘도박성 테마주’ 투심 몰려…요동치는 주가에 ‘깡통’ 차기도
[사진=뉴시스]

최근 유명 기업들의 경영권 분쟁이 잇따르면서 ‘경영권 분쟁 관련주’라는 새로운 테마가 등장했다. 통상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경우 주체 당사자들 간 지분 경쟁이 심화돼 주가가 오른다는 점을 노리고 주식을 매입하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일시적인 이슈로 상승한 주가 대부분이 단기간 내 다시 하락해 대규모 손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이미 주식시장에선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도박성 투자가 인기를 끄는 것은 한국 증시의 투자 매력도가 그만큼 낮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만성 저평가에 금투세 시행 가능성까지 겹치면서 더 이상 국내 증시에서 정상적인 투자로는 돈을 벌기 어렵다는 심리가 확산됐고 결국 이러한 도박성 투자에 투심이 몰리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주식 수익률 세계 꼴찌’ 나라의 슬픈 자화상…경영권 싸움에 판돈 거는 동학개미들

3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아동 도서 전문 출판사인 예림당은 전일 대비 10.31% 상승한 2995원에 장을 마감했다. 주가는 장중 한때 전일 대비 27% 가까이 오르며 상한가 직전에 도달하기도 했다. 이미 예림당은 전날 상한가(+29.90%)로 장을 마감한 바 있다. 예림당의 주가가 급등한 이유는 현재 최대주주로 자리매김 중인 티웨이항공 경영권 분쟁 때문이다.

▲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에 세워져 있는 티웨이항공 여객기. [사진=뉴시스]

예림당은 티웨이홀딩스 지분 39.56%를 보유하고 있다. 티웨이홀딩스는 티웨이항공 지분 28.02%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또한 예림당은 티웨이항공 지분 1.72%를 직접 보유한 상태다. ‘예림당➞티웨이홀딩스➞티웨이항공’의 수직적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 견고한 지배체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티웨이항공 경영권을 노리는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항공 사업 진출 의지를 꾸준히 드러내 온 대명소노그룹은 지난 8월 JKL파트너스로부터 티웨이항공 지분 14.9%를 매입하며 최대주주인 예림당과의 지분 격차를 약 3% 수준까지 좁혔다. 현재 티웨이항공의 대명소노그룹 지분율은 26.77% 가량이다. 예림당이 티웨이홀딩스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유한 지분와 직접 보유한 지분의 합은 29.74% 수준이다. 티웨이항공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으로 인해 예림당 뿐 아니라 대명소노그룹의 유일한 상장사인 대명소노시즌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전날 14% 가까이 상승한데 이어 오늘도 장중 8% 넘게 치솟았다.

경영권 분쟁 이슈와 관련 깊은 기업들의 주가가 요동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하반기 국내 증시 최대 사건으로 꼽히는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 여파로 고려아연의 주가는 2월 전에 비해 무려 3배 가까이 뛰었다. 얼마 전엔 주당 150만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30일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결정이 알려진 직후에는 곧장 하한가(-29.94%)를 기록했다.

고려아연의 최대주주인 영풍과 자회사 영풍정밀 역시 불과 몇 일만에 상한가와 하한가를 오가고 있다. 지난 8월 20만원대에 머물던 영풍은 9월 20일 60만원을 돌파한 후 다시 10월 들어 30만원대로 내려앉았다. 현재 고려아연에 대한 영풍·MBK연합 지분율(38.47%)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지분율(35.42%) 차이는 약 3%p 정도다.

▲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뉴시스]

올해 초 한미약품그룹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 모녀와 장남인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이사와 차남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 형제 간 갈등을 겪었던 한미사이언스도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한미사이언스는 최근 일주일 간 40% 넘게 오르며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3만원 초반에 거래되던 주가는 어느새 5만원을 돌파한 상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경영권 분쟁 관련 종목에 투심이 몰리는 상황에 대해 회의적인 여론이 우세하다. 구체적인 주가 상승 동력이 없는데도 단순히 경영권 분쟁으로 인한 일시적인 상승에 의존한 투자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 증시 저평가, 금투세 등 한국 증시에 대한 각종 악재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증시 매력도 상승이라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실제로 올해 들어 한국 코스닥지수는 전날까지 약 15.4% 가량 내리며 글로벌 주요 증시 가운데 최저 수익률을 기록했다. 코스피지수 수익률 역시 마이너스 3.5%로 글로벌 지수 하락률 순위 4위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미국·일본·홍콩 등 세계 주요 증시 모두 20% 이상의 수익률을 낸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현재 전쟁 중인 이스라엘도 8%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 증시는 투자가 아닌 투기만 판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며 “가뜩이나 저평가 된 주식이 많은 상황에서 금융투자수익에 세금을 매기는 금투세 이슈까지 터지다 보니 비정상적인 주가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종목들에 수급이 쏠리는 형국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국내 주식시장 가치를 저하시키는 다양한 요인들이 얽히고설켜 있어 건전한 투자환경의 조성이 어려운 상황이다”며 “금투세에 대한 노선을 확실하게 정하고 특수관계인에게 집중된 시장의 분위기를 바꿔야만 비로소 합리적인 투자처로 인식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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