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아바타들의 고전..美중간선거 판세 바뀌었다[윤홍우의 워싱턴24시]
‘달걀이 부화하기 전에 닭을 세지 마라’(Don't count your chickens before they hatch). 미국의 유명한 속담이자 월스트리트의 격언 중 하나입니다. 함부로 결과를 예단하지 말라는 건데요.
이게 뉴욕 증시 뿐 아리나 이번 미국의 중간선거에도 유용한 속담인 것 같습니다. 지난 상반기까지 사실상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참패로 예상되던 미국 중간선거의 흐름이 미묘하게 바뀌고 있습니다.
지난 17일(현지시간)이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하이오주를 찾았습니다. 자신이 지지한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 JD 밴스를 지지하는 유세에 온 건데요. 여기서 “JD 밴스는 내 엉덩이에 키스하고 있다”는 식의 트럼프 특유의 막말 지원을 했습니다.
오하이오주는 정치적으로 공화당과 민주당이 치열하게 경합해온 지역이긴 하지만, 공화당의 우세가 강한 지역입니다. 지난 2016년 대선 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여기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11% 포인트 차로 제쳤고요. 지난 2020년 바이든 대통령도 이겼습니다.
오하이오주에서 은퇴를 선언한 롭 포트먼 상원의원도 공화당 출신입니다. 공화당의 대표적 ‘정책통’으로 신망받던 정치인입니다. 그래서 트럼프의 지지를 받는 JD 밴스가 쉽게 이기지 않겠냐는 전망이 있었는데요. 여론조사의 뚜껑을 열어보니 초박빙입니다.
민주당 후보는 하원의원 팀 라이언인데요.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가 46%대 45%로 밴스가 불과 1 %포인트가 앞섭니다. 오차 범위 안이죠. 이 전에는 라이언이 앞선다는 조사도 있는 등 엎치락 뒷치락입니다. 자칫하면 오하이오 상원이 민주당으로 넘어가는 상황인 셈입니다.
자 이게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미국 상원은 정확히 민주당과 공화당 50대 50으로 양분돼 있습니다. 상원의장을 겸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민주당이 상원 주도권을 간신히 쥐고 있는 데요
이번에 35석을 새로 뽑는 데 누가 상원의 주도권을 쥐게 될 지가 초미의 관심입니다. 기존에 상원의원이 공화당이었던 지역이 21곳, 민주당이었던 지역이 14곳입니다. 공화당으로서는 지켜야 할 지역이 더 많지만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이 워낙에 인기가 없었던 터라 상원이 공화당에게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그런데 기존에 공화당 지역이었던 오하이오주가 민주당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이구요. 원래 공화당 지역이던 펜실베니아주 역시 아예 게임이 끝난 분위기입니다.
펜실베니아주의 공화당 후보로는 TV 의사로 유명한 메멧 오즈 박사가 출마했는데요. 역시 트럼프의 지지를 받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민주당의 존 페터먼 부지사가 10% 포인트에 가까운 격차로 오즈 박사를 앞서고 있습니다. 오즈 박사는 우리 식으로 보면 ‘위장 전입’ 이런 논란이 불거지면서 표를 더 깎아 먹었습니다.
자 이렇게 되면 공화당이 두 석을 더 뺐길 수가 있습니다. 상원이 52대 48이 될 수 있는 건데요. 이건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민주당이 그동안 상원에서 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내부의 적’이죠. 민주당 조 맨친 의원의 반대로 못한 경우가 굉장히 많았기 때문입니다. 상원이 52대 48이 되면 민주당은 조 맨친 의원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원하는 법안을 추진할 수 있게 됩니다.
공화당이 50대 50의 균형을 맞추려면 기존 민주당 지역을 뺏어와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가능한 곳으로 꼽히던 지역이 아리조나주, 조지아주, 네바다주 정도인데요.
아리조나주 같은 경우는 현역 상원의원인 마크 켈리가 공화당 도전자, 역시 트럼프의 지지를 받은 후보인데요. 블레이크 마스터스를 큰 격차로 앞서고 있습니다.
그나마 공화당 입장에서는 현재 가장 해볼 만한 지역이 조지아주와 네바다주가 꼽힙니다. 조지아주에서는 라파엘 워녹 현 민주당 상원의원과 허셜 워커 공화당 후보자가 초접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조지아주는 미국 여론의 풍향계와 같은 곳인데요. 원래 공화당 우세 지역이지만 지난 대선과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 바람이 불었습니다.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라는 겁니다.
자 이번에는 하원의 상황을 보면요 하원의 경우 총 435석을 다시 뽑습니다. 현재는 민주당이 221석, 공화당이 212석, 공석이 2석입니다. 과반수가 넘으려면 218석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때문에 공화당이 6석만 더 얻으면 하원 주도권을 쥘 수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전망은 여전히 공화당의 하원 장악이 유력시 된다는 겁니다. 뉴욕 타임즈(NYT)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요. 민주당의 기존 지역 가운데 23개 지역이 경합 지역인 반면에 공화당의 기존 지역에서는 8개 지역만이 경합 지역입니다. 당연히 민주당이 불리할 수 밖에 없는데요. 다만 지난 상반기부터의 예측에 비하면 공화당 민주당의 하원 의석수 격차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만큼 민주당은 상승세, 공화당은 하락세를 타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 원인을 한번 찾아봐야 할 텐데요. 사실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은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혼란스런 철군 이후에 지속적으로 지지율이 하락해 왔습니다. “바이든이 외교를 잘한다” “트럼프보다 안정적이다” 고 해서 뽑아줬는데 대체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런 여론이 있었군요. 여기에 상반기에 인플레이션이 4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기름값이 미국인들의 심리적 저항선인 4달러를 넘어 5달러를 돌파한게 아주 치명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도 최악으로 치달았는데요. 하반기에는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 흐름이 바뀌는 몇가지 중요한 흐름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역시 기름값 하락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전략 비축유 방출부터 시작해서 국내 원유 생산 확대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했는데요. 워싱턴 DC 인근 버지니아주 같은 경우 갤런당 3달러대 중반까지 내려왔습니다. ‘기름값 때문에 못살겠다’ 이런 분위기는 좀 사라진 상태라는 겁니다.
둘째는 낙태 이슈인데요. 지난 6월 말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법관 중심의 연방대법원이 지난 50년간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해온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이러면서 기존에 무소속 여성 유권자들이 대거 민주당쪽으로 옮겨 갔는데요. 사실 낙태 문제에 영향을 받을 유권자가 얼마나 되겠느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미국에서는 비단 낙태가 아닌 나의 몸에 대한 ‘자유’의 문제라는 점에서 상당한 정치적 파급력이 있습니다.
미주 한인유권자연대(KAGC)의 송원석 사무국장도 “기름값이 하락하고 낙태 논쟁이 불거지며 민주당 지지층들이 결집하는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셋째로는 여러 가지 분석들이 나오는데요. ‘바이든 대통령의 입법 성과가 좋았다’ ‘학자금 대출 탕감부터 시작해 복지 혜택이 많아졌다’ 이런 분석들도 있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보려합니다.
여러분도 느끼시겠지만 일단 트럼프 정부와 지금 바이든 정부의 정책이 크게 차이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시 민주당 정권과의 차별점을 부각시켰던 ‘미국 우선주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 이런 것들이 지금 바이든 정부에서도 똑같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한국 전기차를 차별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가 아주 대표적인 사례죠.
미국인들의 그동안 응축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 공화당도 민주당도 사실상 똑같은 정책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선동이 더 이상 그렇게 정치적 파급력을 가지기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트럼프 진영 쪽에 남은 건 어쩌면 극단적인 보수주의, 파시즘 같은거인데요.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은 ‘굳이 트럼프 쪽으로 다시 기울 필요가 있느냐’ ‘트럼프의 시대가 다시 오는 것이 맞느냐’ 이렇게도 느끼는 것 같습니다. 트럼프가 직접 지지하는 후보들이 상원에서 고전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이번 중간선거는 차기 미국 대선으로 가는 발판입니다. 앞으로 2년 후 미국인들이 어떤 대통령을 택할지 이번 중간선거를 통해 그 민심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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