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7000만원이 12억 됐다"…한국 떠난 S급 인재 '쓴웃음'
(下) '16년째 등록금 동결' 부메랑…산학연 인재 생태계 붕괴
연봉 12억 vs 7천만원…S급 인재 '초고속 탈출'
국내 저연차 교수 연봉, 미국의 절반
빅테크 엔지니어 대비 '10분의 1토막'
열악한 처우에 석·박사 줄줄이 해외로
1~3년 차 한국 교수의 연봉이 연차가 같은 미국 교수의 절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빅테크의 동일 연차 직원과 비교하면 연봉 격차가 열 배까지 벌어진다. 대기업도 빅테크와의 ‘인재 전쟁’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있다. 연봉은 물론 비전 면에서도 낮은 점수를 받는다는 게 대기업 인사 담당자들의 토로다.
28일 세계 최대 규모의 직업평가기관 글라스도어에 따르면 1~3년 차 한국 교수의 연봉 중위값은 5만5000달러(약 7600만원)로, 같은 연차의 미국 교수 연봉 중위값인 10만1000달러의 절반에 그쳤다. 올해 들어 서울대와 KAIST 이공계 교수들이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텍사스A&M대, UC샌타바버라 등으로 자리를 옮긴 것도 처우 문제 때문이라는 게 대학들의 설명이다.
한국의 박사급 인재 영입을 노리는 미국 빅테크의 연봉은 ‘비교 불가’ 수준이다. 시장조사업체 로버트월터스에 따르면 박사급 연구원의 평균 연봉은 오픈AI가 86만5000달러, 앤스로픽 85만달러, 테슬라 78만달러, 아마존 72만달러, 구글브레인(구글 딥러닝팀)이 69만5000달러 등으로 국내 기업 및 대학보다 5~10배가량 높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삼성, LG, SK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도 고급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 미국이나 캐나다의 명문 인공지능(AI) 스쿨을 졸업한 인재들의 1순위 직장은 오픈AI 같은 스타트업의 창립 멤버가 되는 것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 입사는 ‘2순위’, 한국 대기업은 ‘3순위’다. 기업 성장성과 연봉, 복지, 생활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로 풀이된다. 한 정보기술(IT) 대기업 대표는 “몇 년 전까지 두 배 정도였던 미국 기업과의 엔지니어 연봉 격차가 AI 시대가 오면서 3~4배 수준으로 벌어졌다”고 말했다.
"美선 신생 벤처도 연봉 2억 주는데…韓서 교수·연구원 왜 하나"
서울 이공계 대학원 교원 '반토막'…KAIST·서울대 출신 지원 '0명'
“박사 학위로 실리콘밸리 인공지능(AI) 스타트업에 취업하면 최소 연봉 2억원은 받는데 굳이 한국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서울의 한 대학 AI학과에서 초봉 연 8000만원 안팎을 받고 있다는 교수 A씨의 얘기다. 그는 “대학 등록금이 16년째 동결된 상태에서는 연봉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기 힘들다”며 “기회가 생기면 해외로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2차전지 셀 엔지니어인 B씨는 4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임원들이 50대 중반에 짐을 싸는 것을 보고 불안감을 느꼈다. 그때 중국 헤드헌터가 접근해 현재 연봉의 4배를 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B씨는 “고연봉, 50평(165㎡)대 신축 아파트, 통역 지원은 물론 연간 여섯 차례 한국에 오갈 수 있는 항공편까지 보장했다”고 전했다.
심화하는 S급 인재 엑소더스
28일 학계와 업계에 따르면 대학과 대기업, 정부 기관이 채용 시장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S급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해외 일자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조건과 비전, 연구 환경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상황이 심각한 곳은 대학이다. AI를 연구하는 서울의 한 이공계 대학원은 올해 교원을 구하는 데 진땀을 뺐다. 지원자 수가 전년 대비 반 토막이 나서다. 이공계 교원 인력 풀의 주류를 차지하던 서울대, KAIST 출신 지원자는 ‘제로(0)’였다. 이들은 해외 대학 교수, 빅테크 연구원 등을 택했다. 문일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는 “10년 전에는 자동차와 조선 인력 유출이 많았는데 지금은 AI와 반도체, 2차전지 인력이 집중적으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시설 노후화도 우수 인재의 해외 이탈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서울의 한 대학은 여름철 비가 올 때마다 교수들이 물통을 동원해 연구실 빗물을 받아내는 게 일상이 됐다. 실험 자재 보관 창고의 벽면 곰팡이를 닦아내는 일도 교수들 몫이다. 이해근 고려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대학 시설 현대화를 위해 등록금을 현실화하고 우수 교원을 영입하는 데만큼은 교부금을 투입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짚었다.
우주항공청에서 우주탐사 관련 프로젝트 기획과 설계를 진두지휘할 우주탐사부문장 자리가 개청 5개월이 넘도록 공석인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과 중국 등 우주기술 선도국들의 달 탐사 프로젝트가 임박한 가운데 국내 실무 책임자 공백이 길어지면서 국제적 협력에도 차질이 생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주요 부문장조차 임명되지 않은 기관은 각국 우주기관과의 대화 테이블에서 입지가 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주청의 민간 인재 모시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된 데는 낮은 연봉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부문장 연봉은 1억4000만원으로 공직자 중 최고 수준이지만,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연구원 평균 연봉인 3억~4억원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AI 인재 부족 ‘첩첩산중’
기업들도 애를 먹기는 마찬가지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1년에도 두세 번씩 미국행 비행기를 탄다. 북미 지역 AI 고급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조 사장은 지난 5월 “‘리더’가 될 수 있는 인재라면 100만달러 이상은 물론, CEO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조건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파격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런 총력전에도 불구하고 S급 인재 유치는 오픈AI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에 밀린다. 기업의 성장성과 연봉, 복지, 생활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다.
인재 유출 문제는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공계의 미래로 불리는 AI 분야가 특히 심각하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초격차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글로벌 기술 협력 촉진 방안’ 보고서는 5년간(2023~2027년) 국내 AI 인력이 1만2800명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는 초·중급 인력이 3800명 초과 공급되지만, 고급 인력은 1만6600명 모자랄 것으로 예상했다. 빅데이터 분야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 초·중급 인력이 4300명 초과 공급되는 반면 최고급 인력은 2만3900명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강경주/황정수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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