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천재 리오넬 메시, 놀라운 다섯차례 진화

김세훈 기자 2026. 6. 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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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넬 메시. AFP

리오넬 메시(39·아르헨티나)는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1962년 브라질 이후 처음으로 월드컵 2연패에 도전한다. 메시는 이번 대회에서 개인 통산 여섯 번째 월드컵에 나선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기예르모 오초아(멕시코)와 함께 역대 최다 월드컵 출전 기록에 도전한다. BBC는 8일 “그러나 이번 월드컵의 메시는 2003년 바르셀로나 1군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10대 윙어와는 전혀 다른 선수”라며 메시가 그동안 밟아온 변화를 분석했다.

메시의 첫 번째 역할은 오른쪽 측면을 지배하는 드리블러였다. 2003년 조제 모리뉴 감독이 이끌던 포르투와의 친선경기에서 바르셀로나 1군 데뷔전을 치른 그는 오른쪽에서 공을 잡아 안쪽으로 파고드는 전형적인 왼발 윙어였다. 당시 바르셀로나의 간판스타였던 호나우지뉴는 메시를 처음 보고 “그는 최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메시는 곧 세계 축구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2005년 주안 감페르 트로피 유벤투스전에서 18세 메시가 보여준 플레이는 파비오 카펠로 당시 유벤투스 감독을 놀라게 했다. 바르셀로나의 세대교체가 시작되던 시기, 프랑크 레이카르트 감독은 메시가 더 자주 공을 만져야 팀이 강해진다고 판단했다. 측면의 돌파 자원이던 메시는 점차 경기 중심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결정적 전환점은 페프 과르디올라 감독 체제에서 왔다. 과르디올라는 처음에는 수비적 이유로 메시를 오른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옮겼다. 메시는 적극적으로 수비 가담을 하는 유형이 아니었고, 오른쪽 풀백에게 부담이 커졌다. 그러나 과르디올라는 메시가 결국 경기 운영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2009년 5월 2일,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레알 마드리드전은 메시의 전술적 진화를 상징하는 경기였다. 과르디올라는 메시를 오른쪽 윙에서 빼 중앙 공격수 위치에 세웠다. 그러나 전통적인 스트라이커 역할은 아니었다. 메시는 내려와 공을 받고, 상대 수비수를 끌어내고, 공간을 만들고, 직접 마무리했다. 사뮈엘 에토오는 오른쪽으로, 티에리 앙리는 왼쪽으로 벌렸다. 결과는 바르셀로나의 6-2 대승이었다. 현대 축구에서 ‘가짜 9번’ 메시가 본격적으로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 실험은 곧 유럽 정상 무대에서도 통했다. 과르디올라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2009년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도 메시를 중앙에 배치했다. 메시는 후반 헤더 골을 넣으며 바르셀로나의 우승을 이끌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메시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69경기에서 96골을 넣었다. 2009년 처음 받은 발롱도르는 이후 그의 전유물처럼 됐다. 그는 2010년, 2011년, 2012년, 2015년, 2019년에도 발롱도르를 받았고, 결국 통산 8회 수상자로 남았다. 첫 수상은 22세 때였고, 마지막 수상은 36세 때였다.

다음 변화는 바르셀로나의 황금 미드필더진이 해체되면서 찾아왔다. 사비가 2015년 팀을 떠났고, 이니에스타도 2018년 바르셀로나를 떠났다. 이전까지 메시는 결정적인 장면을 마무리하는 선수였다. 그러나 이후에는 팀의 엔진 역할까지 떠맡아야 했다. 공을 전개하고, 공간을 만들고, 패스를 찌르고, 득점까지 해야 했다. 골잡이이자 10번, 가짜 9번이었던 그는 더 깊은 위치로 내려와 경기를 연결하는 ‘엔간체’가 됐다. 남미 축구에서 엔간체는 공격과 미드필드를 잇는 고리 역할을 하는 선수다. 메시는 이제 득점뿐 아니라 동료들을 살리는 역할까지 수행했다.

기록도 이를 보여준다. 2019-2020시즌 그는 라리가 33경기에서 25골 22도움을 기록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2020-2021시즌에는 리그 35경기 30골 11도움을 올리며 득점력을 유지했다. 그러나 파리 생제르맹 이적 첫 시즌에는 공식전 34경기 11골 15도움을 기록했다. 클럽 경력에서 처음으로 도움 수가 득점보다 많아졌다. 한 아르헨티나 분석가는 이를 두고 “골잡이가 이니에스타가 됐다”고 표현했다.

대표팀에서의 메시도 긴 변화를 겪었다. 그는 2011년 아르헨티나 주장 완장을 찼지만 오랫동안 국가대표팀에서는 실패의 상징처럼 다뤄졌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결승에서 독일에 연장 패했고, 2015년 코파 아메리카 결승과 2016년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결승에서는 칠레에 승부차기 끝에 졌다. 2016년 결승 패배 뒤 메시는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는 돌아왔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지도자가 됐다. 2019년 코파 아메리카 준결승에서 브라질에 패한 뒤에는 남미축구연맹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침묵하던 천재가 아니라 팀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는 주장이 됐다.

전환점은 2021년 코파 아메리카였다. 아르헨티나는 브라질 마라카낭에서 열린 결승에서 브라질을 꺾고 28년 만에 메이저 대회 정상에 올랐다. 메시는 경기 전 라커룸 연설로 동료들을 울렸고, 마침내 대표팀 우승이라는 부담에서 벗어났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의 메시는 그동안 거쳐온 모든 형태가 결합된 선수였다. 크로아티아와의 준결승에서는 요슈코 그바르디올을 따돌리며 2009년의 측면 돌파 능력을 다시 보여줬다. 프랑스와의 결승에서는 경기 흐름을 읽고, 패스를 넣고, 페널티킥을 성공시키고, 결정적인 순간 박스 안으로 침투했다. 그는 더 이상 한 가지 역할로 설명할 수 없는 선수였다.

현재의 메시는 뛰기보다는 많이 걷는다. 인터 마이애미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그는 전성기처럼 많이 뛰지 않는다. 과거에는 이를 비판하는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게 해석된다. 메시는 체력을 아끼면서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린다.

BBC는 “처음에는 카펠로를 놀라게 한 10대 윙어였다. 이후 유럽 축구의 전술 체계를 흔든 가짜 9번이 됐다. 중원과 공격을 잇는 엔간체로 변했고, 아르헨티나에서는 마침내 국가가 필요로 한 주장으로 성장했다”며 “이제 그는 거의 뛰지 않는 베테랑이지만, 여전히 경기에서 가장 먼저 답을 찾는 선수”라고 정리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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