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사키 로키의 컴백
‘애물단지.’ 다저스의 일본인 루키 투수다. 사사키 로키(23)를 지칭하는 단어다.
그가 컴백했다. 어제(한국시간 25일) 성공적인 복귀전을 치렀다. D백스 전에서 1이닝을 깔끔하게 막았다. 세 타자를 땅볼-삼진-삼진으로 정리했다.
감독의 입이 귀에 걸렸다. 왜 아니겠나. 하루 이틀이 아니다. 날마다 불펜 때문에 속을 끓였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그런 불면증을 낫게 해 줄 귀인이 나타난 셈이다.
“전혀 다른 투수가 돼서 돌아왔다. 시즌 초반보다 확실히 위력적이다. 불펜에서는 1~2이닝만 막으면 되니 더 자신감과 확신에 찬 모습이 보인다.” (데이브 로버츠)
사실 당사자에게는 낯선 등판이다. 일본에서도, MLB에서도 늘 선발로만 뛰었다. 7회에 마운드로 간 건 처음이다. 아무렴 어떤가. 덕분에 게임을 이겼다(연장 11회 다저스 5-4 승리). 매직 넘버도 ‘1’로 줄였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일이 있다. 애물단지가 구속을 회복했다. 최대 시속 99.5마일(약 160.1㎞)을 찍었다. 반올림해서 100마일이다.
한 기자가 묻는다. “어떻게 구속을 되찾았나?”
로버츠 감독이 설명한다.
“(사사키) 로키는 자신의 노력으로 감각을 회복한 형태다. 다만, 재활 기간 동안 애리조나에 있는 구단 시설에서 상당히 효과적인 세션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볼의 스피드가 예전에 가까운 수준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한 사람을 지목한다. 메이저~마이너의 여러 투수 코치 중에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다. 롭 힐(Rob Hill)이라는 생소한 인물이다.

커쇼의 비밀과외
6년 전이다(2019년). 역시 가을 커쇼다. NLDS 최종전(5차전)을 후루룩 말아 드셨다. 앤서니 랜던과 후안 소토에게 홈런을 맞고 게임을 내줬다. 워싱턴 내츠의 NLCS행을 허락한 것이다.
탈락의 충격이 크다. 일주일을 시름시름 앓았다. 그러더니 뭔가 마음먹은 것 같다. 비장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잡는다. 구단 오피스에 이런 부탁을 남긴다. “예약 좀 잡아줘.”
그리고는 시애틀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행선지는 외곽의 허름한 창고 같은 곳이다. 여기서 이틀간 머물렀다.
가뜩이나 을씨년스러운 건물이다. 그런데 이 시기는 더 그랬다. 출입문을 모두 꽁꽁 걸어 잠근다. 창문에도 커튼을 친다. 철저하게 외부 접근을 막는 조치다.
도대체 뭐 하는 곳이길래.
요즘은 많이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대중적이지 않았다. 바로 드라이브라인(DBㆍDriveline Baseball)이라는 시설이다. 그러니까 (야구) 사설 교습소 같은 곳이다.
당대 최고의 투수다. 사이영상을 3번이나 받았다. 하지만 자존심을 꺾고 문제 해결을 자청했다. 온몸에 센서를 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 자세, 각도, 간격…. 어디를, 어떻게 손봐야 하는지. 정밀 진단을 받은 것이다.
DB 측도 신경이 곤두선다. VVIP 고객이다. 그를 모시기 위해 최고의 스태프를 배치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롭 힐이었다. 바로 로버츠 감독이 언급했던 그 인물이다.

24살짜리 최연소 코치
주목할 지점이 있다. 롭 힐의 이력서다.
커쇼를 봐줄 당시 나이가 놀랍다. 겨우 23살이었다. 그러니까 대학을 막 졸업한 파릇한 청년이다.
무슨 대단한 천재도 아니다. 평범한 야구 선수였다. 그저 그런 (야구 실력이) 하위 레벨의 대학에서 투수로 뛰었다.
80마일 중반의 스피드가 고작이었다. 90마일(약 145㎞)을 던지려고 몸부림치던 지망생이다. 그걸 위해 드라이브라인의 수강증을 끊었다.
하지만 좌절을 겪어야 했다. 부상이 겹치면서 꿈을 접었다. 대학 3학년 때다. 그리고 졸업과 함께 새 일자리를 찾았다. 이번에는 수강생이 아니다. DB의 정규직 스태프로 취직했다.
마침 재능이 빛을 발한다. 굵직한 고객들과 연결된다. 특히 트레버 바우어와 만남이 커다란 전기였다.
아시다시피 얼리어댑터다. 새로운 기술에 매료되는 스타일이다. 당연히 DB의 첨단 장비에 흠뻑 빠진다. 획기적인 데이터 분석에 심취한다.
게다가 대단한 스피커다. 지극히 활발한 개인 미디어 활동가다. 유튜브, 인스타드램, X 등 자신이 가진 모든 SNS를 통해 신기한 경험을 떠들어댄다.
당연히 많은 선수들이 관심을 보인다. 커쇼도 그중의 하나인 셈이다. 이어 마무리 투수 켄리 잰슨도 소개를 받는다. 다른 다저스 투수들도 속속 연결된다.
그러다가 아예 직장이 바뀐다. 이들의 추천으로 명문 구단에 입사하게 된 것이다. 그의 나이 24세 때였다(2020년). 다저스의 ‘피칭 디렉터’라는 직함을 얻게 된다. (‘최연소 코치’라는 타이틀로 소개되기도 했다.)

‘슈퍼 을’의 질문
작년 겨울의 떠들썩한 기억이 있다. 사사키 로키의 ML 포스팅을 놓고 벌어진 치열한 경합 말이다.
이른바 ‘슈퍼 을(乙)’이었다. 원하는 구단이 줄을 선다. 오히려 그들이 만남을 청한다. 어렵게 자리가 마련된다. 이를테면 취업 면접이다.
취준생이 거꾸로 예비 고용주에게 묻는다.
“나에 대한 어떤 성장 계획을 갖고 있는가.”
“당신들의 신인 육성 프로그램을 설명하라.”
“아시아계 투수가 ML에서 극복해야 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하는 식의 질문들이다.
그중 하나다. 이런 물음이 있었다.
“일본 프로 초창기 때 100마일까지 나오던 구속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그 이유를 분석하고, 해결책이 무엇인지 의견을 달라.”
공교롭게도 이는 현실이 됐다. 올 시즌 중반 부진을 겪었다. 몸에도 이상이 생겼다. 검진 결과 어깨 충돌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번에 롭 힐의 보고서에도 그 부분이 적혔다.
“그의 많은 투구 영상을 함께 지켜봤다. 그러면서 각도나 폼의 이상을 스스로 깨닫게 됐다. 아마 어깨 통증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걸 수정해야 하는데,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깊이 있는 대화와 공감을 통해 해결해 나갔다.”
아마 분석력이 뛰어난 것 같다. 그리고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 같다. 유능한 코치의 전형이다.
물론 그것 만이 아니다. 진짜 탁월한 것은 소통 능력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듣는 방법,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을 중요하게 따진다. 스파르타식, 자율적인 방식 등을 맞춤형으로 진행한다고 알려졌다. 대학 시절 전공이 커뮤니케이션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