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삶도 따스하게, 위로를 전해드립니다.
👻: 오늘은 가장 한국적인 화가, 박수근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1. 서민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화가, 박수근
2.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주목한 이유
3. 박수근 화백 그림의 매력, 한국적인 것과 종교의 결합
4. 개성있는 회화적 특징과 다양한 소재
서민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위로한 화가 🖍
이 그림은 바로 화가 박수근의 대표작이자 2007년의 경매에서 당시 최고가를 기록했던 <빨래터>예요. 빨래터의 아낙네들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우리 주변의 이웃들을 소박한 시선으로 담아냈는데요. 그의 그림은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을 소재로 했어요. 가난하고 평범한 주변 이웃들의 생활을 현실적으로 묘사했죠. 박수근은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며 전쟁과 기근으로 상처받은 한국의 서민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위로했어요.
박수근의 작품은 당시 인기 있던 서구적인 추상화와는 사뭇 달랐어요. 잎사귀 없이 헐벗은 나무들, 삶에 지친 표정의 여인들, 그리고 무기력한 노인들의 모습들까지 아름다움과는 다소 먼 소재들이 그의 화폭 위에 그려졌죠. 그러나 그의 그림이 냉혹하거나 비참한 분위기를 자아낸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정겨운 색감이나 수수한 형태에서는 온기와 아련함이 느껴지죠. 서민의 삶을 바라보는 그의 다정한 시선은 후대에 들어 크게 사랑받았고, 그의 그림들은 한국인의 자화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고.
👻: 그림으로 서민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멋진 화가였네요~ 박수근이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주목했던 이유가 궁금해요!
어두운 시대, 밝지만은 않았던 삶 🌉
박수근이 가난한 이들의 삶에 주목했던 건 그 역시 혹독한 가난과 함께했기 때문이었어요. 1914년에 태어나 광복과 한국전쟁을 온몸으로 지나온 박수근은 형편이 어려워 유학이나 전문적인 그림 공부는커녕 보통학교*까지만 다닐 수 있었죠. 그러나 그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면서도 미술을 독학해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상했는데요.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가난했던 그는 생계를 위해 미군 PX에서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수입을 얻었어요. 박수근은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꼭 물건을 하나씩 구매하는 따뜻한 이웃 사랑을 실천했다고 해요. 그림 <노상>도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하게 되었다고.
시간이 지나며 그의 작품은 외국인들에게 차츰 긍정적인 반응을 얻기 시작했어요. 외국인들이 그의 그림을 구매하면서 미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박수근에게 짧은 전성기가 찾아왔죠. 이 무렵부터 박수근 특유의 화풍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는데요. 그러나 그는 갑작스레 걸린 백내장으로 한쪽 시력을 잃고, 이후 건강이 악화되면서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어요. 생전 그 가치만큼 주목받지 못했던 그의 그림은 사후에야 제대로 인정 받았다고.
*보통학교: 일제의 통감부 지배 아래 1906년에 소학교로 불리우던 초등학교의 명칭이 변경된 말.
*조선미술전람회: 일제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개최되었던 전국적인 규모의 미술 공모전.
👻: 살아있을 때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니 안타깝네요... 박수근 화백의 그림에는 어떤 매력이 있나요?
종교적 색채와 한국적인 것의 결합 ✝
박수근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유명했어요. 서양의 기독교인 작가들처럼 성경의 장면이나 종교적 소재로 작품을 그린 건 아니지만,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을 늘 되새기며 살려고 애썼죠. 이를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가난한 이웃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종교적 신념에 기반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박수근의 그림들은 신앙심에서 비롯된 사랑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고.
서양 화가 밀레* 역시 종교적 신념을 통한 박애주의*를 그림에 잘 녹여낸 것으로 유명해요. 밀레의 <이삭줍기>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던 박수근은 어린 시절부터 닮고 싶은 화가로 꾸준히 밀레를 지목했고, 그의 작품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요. 박수근은 종교와 서양의 작품들이 준 영감에 한국적인 요소를 결합한 특별한 그림들을 그려냈어요. 그는 석불, 석탑 등 옛 한국 유적의 아름다움을 작품에 녹여내고자 애썼죠.
*밀레: 19세기 프랑스의 화가.
*박애주의: 개신교를 비롯한 종교에서 강조되는, 사랑에서의 평등함을 강조하는 정신.
👻: 한국적인 것과 종교의 조화라니...정말 멋지네요! 그런데 아까 보니 그림체가 굉장히 특이하던데요?
수수하고도 개성 있는 회화적 특징 🎨
그의 대표작들에서 알 수 있듯 박수근의 그림은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장남 박성남>을 포함한 초기 작품에서는 입체감과 색채를 표현하기도 했으나, 시간이 흐르며 점점 그만의 뚜렷한 스타일을 찾아갔죠. 그는 물감을 칠하고 말린 후 그 위에 물감을 층층이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그림의 표면을 거칠거칠하게 마감해 독특한 재질을 연출했어요. 화강암의 표면 같은 질감을 위해 나이프로 덧칠을 하기도 했죠. 이런 기법이 연출하는 특유의 투박한 질감은 그림에 한국적인 색을 더하고, 그림에 그려진 서민의 고단한 삶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고.
또한, 그는 배경을 거의 그리지 않고 인물의 윤곽선을 간결한 직선으로 표현했어요. 그의 작품을 주제로 쓰인 시의 제목이 <납작납작>일 정도로 그는 평면적인 형태를 추구했는데요. 입체적 표현이나 원근감을 무시하고 마치 인물을 납작하게 눌러 놓은 것처럼 평평하게 연출했죠. 움직임을 표현하는 대신 멈춰 있는 인물을 주로 그리기도 했어요. 이런 특징들은 서양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박수근만의 독자적인 개성이죠.
👻: 그림의 질감이나 형태가 특이한 이유가 이거였군요! 그런데 박수근은 주로 인물화만 그렸던 건가요?
박수근의 집과 고목 🌳
박수근이 그린 건 인물화만이 아니었어요. 집과 같은 장소도 그의 작품의 단골 소재였죠. 집은 근원적이고 따뜻한 안식처와 제일 일상적인 생활의 공간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나타내는 소재로, 일상적이고 평범한 대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다는 그의 신념과 잘 맞아떨어지는 대상이었어요. 초기에는 초가집과 그곳에서 일하는 농촌의 여인들을 그렸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형 한옥과 서울 변두리의 판잣집 등 다양한 도시 풍경을 그려냈죠. 근대화를 겪는 한국의 사실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그의 그림은 마치 근대 한국의 초상화 같기도 해요.
잎이 없는 앙상한 나무와 고목도 박수근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데요. 단독적인 소재로 등장하기도 하고, 인물화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하는 고목은 쓸쓸한 분위기를 조성해 전쟁을 겪었던 한국의 아픈 기억을 상기시키죠. 찾아올 봄을 기다리는 겨울 나무의 모습은 꼭 전쟁이 끝나고 되찾을 행복한 일상을 소망하는 한국 서민들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해요. 이처럼 박수근은 평범하고, 때로는 초라해 보이는 소재에도 따스한 희망과 긍정을 담아낸 화가였다고.
👻: 상징적인 소재들을 알고 보니 박수근 그림이 더 흥미롭게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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