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만 나오면" 망신, 망신, 여론조사…이번엔 '샤이 트럼프' 선반영?
[편집자주] 세계가 주목하는 미국 대선 투표가 이제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여전히 박빙 승부가 이어지고 있지만 흐름의 변화도 감지된다. 미국의 다음 4년이 어떤 모습일지, 우리에게 미칠 영향은 어떨지 짚어본다.
주요 외신과 전문가들은 이처럼 지지율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작은 오류만으로도 결과 예측이 빗나갈 수 있다며, 앞선 대선 결과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샤이 트럼프' 파악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는 여론조사 기관들이 과거 트럼프가 과소평가 된 이유를 아직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번 선거에서도 비슷한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샤이 트럼프'는 트럼프 지지자인 것을 숨기는 유권자로, 주로 백인 남성인 것으로 파악된다.
◇"트럼프만 등장하면…" 두 번이나 빗나간 선거 예측
트럼프가 후보로 나섰던 2016년과 2020년 대선은 여론조사와 크게 다른 결과를 냈다.
RCP가 집계한 2016년 선거일(11월8일) 전 여론조사 평균에 따르면 힐러리 클린턴의 지지율은 46.8%로, 트럼프(43.6%)보다 3.2%포인트 높았다. 여러 분석 기관들은 클린턴 당선 확률을 넉넉히 높게 봤다. 실제 대선에서 클린턴의 득표율은 48.2%로 트럼프(46.1%)보다 높았지만, 실제 중요한 선거인단 수에서 232명에 그치면서 트럼프(306명)에 패배했다. 경합주에서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은 '샤이 트럼프'의 표가 트럼프에 몰리면서 예상을 뒤엎은 것이다.
2020년 대선 때도 마찬가지다. 바이든 대통령이 승리한 결과는 맞았지만 득표율은 크게 달랐다. 바이든이 득표율 7.2%포인트 차이로 앞선다고 봤지만 실제 차이는 4.5%포인트였으며, 경합주들의 초박빙 승부로 바이든 당선 확정까지 나흘이 걸렸다. 미국 여론조사연구협회(AAPOR)는 '2020년 여론조사 오류' 보고서에서 "실제 결과와 예측치 차이가 전국 단위로는 40년, 주 단위로는 20년 만에 최고치였다"고 지적했다.
◇'반전' 조짐 보이는 판세…샤이 트럼프 선반영됐나
여론조사 기관들은 신뢰를 회복하고자 학력에 따른 결과 왜곡 보완, 조사 대상 확대, 새로운 조사 방식 도입 등으로 '샤이 트럼프' 찾기에 나섰다. 그 결과 2022년 중간선거에서는 전반적으로 정확한 여론조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여론조사 업체 퓨 리서치는 "2022년 여론조사의 정확성은 당시 투표용지에 '트럼프'의 이름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대선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율이 지난 두 대선 때보다 높고, 최근 우상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샤이 트럼프' 지지율이 여론조사에 반영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다만 미국 여론을 더욱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SNS)에서 트럼프에 대한 중립적 여론이 큰 것으로 보아 '샤이 트럼프'가 이번 대선 때 다시 존재감을 드러낼 거란 전망도 여전하다. 미국 SNS 분석 업체인 임팩트소셜의 9월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에 대한 긍정과 부정 여론은 각각 10%, 20%지만 중립적 여론은 70%에 달했다. 해리스에 대한 긍정과 부정 여론은 22%, 30%, 중립 여론은 48%였다.
◇경제: 바텀업 vs 톱다운
경제 정책에서 카멀라는 '기회의 경제'를 내세운다. 전반적으로 중산층 확대에 초점을 맞춘 바이든 정부의 정책을 이어받으면서 물가를 안정시키고 출산·육아 가정,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 소상공인 등 서민 지원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대신 부유층과 대기업엔 세금 부담을 늘리겠단 구상이다. 미국 제조업을 살리기 위해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도 그대로 계승한다. 바이든 정부에서 미국에 통 큰 투자로 보조금을 이끌어낸 한국 기업으로선 해리스 당선 때 정책적 안정성을 기대할 수 있을 전망이다.
트럼프는 감세를 통한 성장에 방점을 찍었다. 법인세는 현행 21%에서 15%로 과감하게 내린단 구상이다. 팁과 사회보장 소득, 초과근무 수당에 대한 면세 등도 추진한다. 트럼프는 감세가 기업 투자, 가계 소비 여력을 늘려 경제 성장과 세수 증대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 바이든 정부의 최대 경제 유산인 IRA에 대해선 대대적으로 손보겠다고 벼르는 중이다. 의회 지지가 필요하단 조건이 있지만 한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에 파장을 던질 수 있는 사안이다. 트럼프는 얼마전 미국산 자동차 구입 시 대출 이자에 세금 공제를 해주겠다고 말했다. 반도체법과 관련해 트럼프가 정확히 입장을 밝히진 않았으나 해외 기업에 대한 관련 지원금을 축소할 수 있단 관측도 나온다.
◇통상: 표적 관세 vs 더 큰 폭탄 관세
대외 경제 정책에선 관세를 빼놓을 수 없다. 집권 1기 동맹 여부를 불문하고 관세 폭탄으로 세계적인 무역전쟁을 촉발한 트럼프는 백악관 재입성 때에도 같은 정책을 펼칠 전망이다. 강도는 더 세졌다.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제품에는 최소 60%의 관세를 매기겠단 계획이다. 멕시코산 중국차엔 최대 10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도 했다. 트럼프는 최근 유세에서 "관세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언급했다. '관세=만병통치약'이란 그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단 평가다. 무역적자 해소나 외교·안보 목표 달성을 위한 지렛대로 관세 칼날을 휘두를 수 있단 의미다.
반면 해리스는 트럼프식 관세 폭탄이 결과적으론 미국인에 소비세처럼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그보단 미국 산업 보호를 위해 철강과 알루미늄, 전기차 등 중국이 물량 공세를 펼치는 품목에 한해 전략적 표적관세가 필요하단 입장이다. 누가 집권해도 중국 견제 차원의 보호무역주의는 이어지는 셈이다.
◇외교: 동맹 중시 vs 미국 우선
외교적으로 두 후보 간 가장 큰 차이가 나는 지점은 동맹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해리스는 바이든 정부의 연장선상에서 미국의 리더십 아래 다자주의와 자유주의 중심의 국제질서를 유지하고 우호적인 동맹 관계를 추구하며 중국 견제 등에서 동맹에 협력과 협조를 구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트럼프는 동맹 관계도 비즈니스로 보는 인식이 강하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그는 국익을 극대화한다는 명목 아래 동맹에도 거침없이 공격을 가할 태세다. 한국을 "머니 머신"에 비유하며 방위비 분담금을 현재의 9배 수준으로 늘리겠다고 언급한 게 그 예다. 북대서양조약기국(NATO)에도 미국 탈퇴를 위협하면서 방위비 증액을 압박할 공산이 크다.
◇안보: 대북 억지력 vs 북미 정상외교 추진
북핵 문제에 대한 접근법에서 해리스는 바이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대북 억지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출 전망이다. 다만 장기화하는 중동 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고려할 때 북핵 문제를 우선해 다루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는 북핵 문제에 의욕을 보인다. 중동 전쟁에 대해선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타격해도 된다고 할 정도로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에 영토를 일부 내어주는 조건으로 평화 협정에 나서야 한단 입장이다. 두 개의 전쟁 종료를 자신하는 트럼프는 임기 중 김정은과의 친분과 개인기를 앞세워 톱다운식 관계 개선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그는 8월 "김정은도 나를 그리워할 것"이라며 북미 정상외교를 재개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 당선 시 한반도 정세가 출렁일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민: 상식선에서 vs 사상 최대 추방
이민 문제에서 트럼프는 초강경 입장을 취한다. 그에게 불법 이민자는 범죄자나 마찬가지다. 취임 첫날 멕시코 국경을 폐쇄하고 불법 이민자를 역사상 최대 규모로 추방하겠다는 게 그의 계획이다. 그는 최근 한 유세에서 "이민자가 미국인을 살해하면 사형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해리스는 국경 안전을 강화해 불법 이민과 관련 범죄는 최대한 막으면서도 합법 이민 통로를 유지하는, 상식에 기반한 이민 정책을 추진한단 계획이다.
낙태 문제에서 해리스는 낙태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트럼프는 3월만 해도 낙태 금지에 치우치는 듯했으나 여성 표심을 감안해 "전국적인 낙태 금지법을 반대한다. 주에서 유권자의 뜻에 따라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입장을 선회했다.
◇선거인단 동수 현실화되나… 존 퀸시 애덤스 대통령 이후 사례 없어
해리스와 트럼프의 선거인단이 동수(269 대 269)가 나오는 시나리오 중 하나는 경합주 중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20년 대선에서 이긴 4개(미시간 위스콘신 네바다 애리조나) 주를 해리스가 가져가고 나머지 2개(펜실베이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주를 트럼프가 가져가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네브래스카와 메인 등 선거인단 승자 독식 구조가 아닌 2개 주(네브래스카, 메인)가 중요해진다.
네브래스카는 5명의 선거인단 중 2명은 지역별로 득표율이 높은 후보에게 1명씩 배정한다. 전반적으로 공화당이 우세한 지역이지만 조지 소로스의 고향이자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사는 오마하 등 도시 지역에선 해리스를 지지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선거 때 네브래스카에서 선거인단 1명을 확보했다. 이때 메인주에서 트럼프 역시 선거인단을 1명 확보하면 정확히 동수가 된다.
이렇게 선거인단 수가 같아지면 수정헌법 12조에 따라 상원이 부통령을 정하고 하원이 대통령을 정한다. 하원에서 대통령이 결정된 사례는 1824년 수정헌법 제12조 개정 이래 딱 한 번 발생했다. 1825년 2월 9일 존 퀸시 애덤스 대통령이 하원 투표로 선출된 바 있다.
◇하원 대표단이 각 1표 행사, 26표 얻으면 승리
어떤 시나리오로 동수가 나오더라도 이후 절차는 같다. 대선 당일인 11월 5일 각 주는 모든 유권자의 투표 결과를 인증하며 그 결과에 따라 선거인이 임명된다. 임명된 선거인단은 12월 17일 주에 모여 투표한다. 새로 선출된 119대 의회가 2025년 1월 6일 합동 회의를 열어 선거인단 투표를 집계한다. 여기서 동점일 경우 하원이 대통령을 선출하고 상원이 부통령을 선출한다.
하원의 각 주 대표단은 대선에서 가장 많은 선거인단 표를 받은 세 후보 중 한 명을 선택해 한 표를 던진다. 승리하려면 과반수인 26표가 필요하다. 컬럼비아 특별구는 투표하지 않는다. 필요한 경우 하원은 한 후보가 과반수를 얻을 때까지 투표를 계속한다. 헌법상 마감기일은 3월 4일. 만약 하원이 이날까지 새 대통령을 선출하지 못하면 부통령 당선자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다.
부통령도 선거인단 수를 가장 많이 얻은 두 후보 중 상원이 투표로 결정한다. 부통령이 되려면 과반수인 51표를 얻어야 한다. 이런 별도의 투표를 거치기 때문에 대통령과 부통령이 각각 다른 정당에서 선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원 대표단 당파 구성 현황은 공화당에 유리
미국 정치 백과사전 밸럿피디아에 따르면 이 같은 제도는 현재 공화당에 유리하다. 선거인 숫자는 각 주 인구에 비례해 책정되는 반면 의회 대표단은 인구와 관계없이 주마다 1표를 받기 때문이다. 민주당 성향의 워싱턴DC는 선거인단에는 포함돼있으나 이 대표단에는 빠져있다. 현재 공화당은 하원에서 220 대 211로 다수당(4개의 공석)이다. 이 비율대로라면 공화당은 주 대표단에서 26 대 22를 차지해 트럼프가 당선된다.
반면 상원에서는 민주당이 현재 51대 49의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상황이 다음 의회로 이어진다고 가정하면 민주당이 부통령을 선출하는데 필요한 표를 확보하게 된다. 어떤 경우든 현재 살아있는 미국인은 경험해본 적이 없는 만큼 200여 년 만에 두 후보 간 선거인단 동수가 발생한다면 일대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혜인 기자 chimt@mt.co.kr 윤세미 기자 spring3@mt.co.kr 김희정 기자 dontsig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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