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에게 ‘은행 계좌’ 생겼다는데...무슨 사연일까?

곽은영 기자 2026. 5. 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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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놀라게 한 ‘고릴라 은행 계좌’ 실험
자연을 보호 대상에서 경제 주체로
르완다에서 고릴라에게 '은행 계좌'를 부여하고 인간이 보호 활동을 하면 보상을 지급하는 구조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오랫동안 보호 대상이었던 자연을 경제 시스템 안 '행위자'로 편입하려는 시도가 등장하고 있다. 르완다에서 시작된 '고릴라 은행 계좌' 실험은 이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이 보호 활동을 하면 동물의 계좌에서 돈이 지급되는 구조다. 생태계를 공짜로 이용해온 것이 시장 실패였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인간과 생물, 기술이 함께 공존하는 새로운 경제 모델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고릴라가 돈 지급"...전례 없는 보전 방식

르완다에서 시작한 독특한 실험이 국제 사회에서 주목 받고 있다. 고릴라에게 '은행 계좌'를 부여하고 인간이 보호 활동을 하면 보상을 지급하는 구조의 실험이다. 

실험의 핵심은 단순하다. 르완다 화산국립공원의 고릴라 개체마다 디지털 신원을 부여하고, 올가미 제거, 나무 심기, 밀렵 감시, 순찰, 서식지 복원 같은 생존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한 사람에게 고릴라 계좌에서 소액을 지급한다. 

2024년 첫 거래에서는 한 고릴라 개체의 계정에서 올가미 제거 대가로 현지인에게 5000르완다프랑, 약 3.42달러가 지급됐다. 역사상 최초로 영장류가 자선 대상이 아니라 돈을 지불하는 주체가 돼 사실상 '종 간 경제 거래'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셈이다.

워싱턴 포스트가 지난달 28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는 전직 종군기자 조나단 레드가드(Jonathan Ledgard)가 비영리단체 테하누(Tehanu)를 통해 동물에게 '은행 계좌'를 만들어주면서 시작됐다. 

코 주름 패턴을 기준으로 고릴라 개체를 식별하고, 고릴라 계좌에는 르완다 정부와 민간 기부자들이 지원한 자금이 채워졌다. 기부금은 막연히 단체 운영비로 들어가는 대신 특정 고릴라, 특정 행동, 특정 지급 기록으로 연결된다. 

자연에 가격을 매기는 것에 대한 논쟁

이 실험은 동시에 여러 비판을 낳고 있다. 자연에 가격을 매기는 것이 과연 윤리적인지, 동물의 이익을 누가 대리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절도 방지, 소유권 분쟁, 인간 수탁자 선정, 수탁자의 책임 규정 등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적 보상이 오히려 행동을 왜곡할 가능성도 우려된다.

이에 대해 레드가드는 "기존 방식은 너무 느리고 부족하다"며 "자연에 금융적 목소리를 부여하는 새로운 실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보도했다.

다만 투자 관점에서는 아직 초기 단계라는 평가가 많다. 규모가 작고 수익 구조가 불명확하며 성과 측정도 제한적이어서 기관투자자들이 참여하기에는 장벽이 있다는 분석이다.

개체 단위 관리가 어려운 종에는 적용이 쉽지 않다는 한계도 있다. 고릴라처럼 개체 식별이 쉬운 상징종에는 적용하기 쉽지만 박쥐나 곤충, 식물, 토양 미생물처럼 생태적으로 중요하지만 개체 단위 관리가 어려운 종에는 설계하기가 복잡해 대규모 성공 가능성은 아직 제한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단기적으로는 기관투자자가 대규모 자금을 넣는 채권형 상품보다는 기업 ESG 예산, 기부금, 재단 자금, 관광 수익 일부, 정부 보조금과 결합한 성과 기반 보전 지출에 더 적합하다는 분석이다. 

자연, 보호 대상 아닌 경제 주체로 편입
세계은행이 발행한 '코뿔소 채권'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는 자연 보호와 자금 흐름을 연결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이러한 실험이 등장한 배경에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자연은 탄소 흡수, 수분, 물 정화 등 막대한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경제적으로는 거의 보상받지 못해 왔다. 생물다양성 감소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시장 실패의 결과라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고릴라 계좌 모델 역시 완전히 새로운 발상이라기보다 기존 '보전금융'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는 자연 보호와 자금 흐름을 연결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 사례는 코스타리카의 생태계서비스지불제(PES)다. 숲을 보전하면 정부가 직접 보상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토지 소유자가 산림 보전·복원·지속가능한 토지를 이용하면 연료세, 물 사용료, 생물다양성 보전 인증서, 탄소 크레딧 등을 재원으로 보상이 이뤄진다.

세계은행의 '코뿔소 채권'도 있다. 2022년 세계은행은 남아프리카 검은코뿔소 보전을 위해 5년 만기 1억5000만 달러 규모의 성과 기반 보전채권을 발행했다. 투자 수익이 코뿔소 개체수 증가 성과와 연동된다. 즉, 종 보전 성과가 금융 수익률에 직접 연결된다.

바하마의 부채-자연 스와프도 비슷한 맥락이다. 바하마는 국가 부채 일부를 해양 보호 자금으로 전환했다. 부채 구조조정을 통해 1억2000만 달러 이상을 해양·맹그로브 보전 자금으로 전환한 것으로 국가부채, 보증, 보험, 보전 목표를 묶어 자연 보호 재원을 만드는 방식이다.

캐나다의 그레이트 베어 온대우림 탄소 프로젝트는 원주민 공동체가 탄소권과 산림 보호의 경제적 이익을 직접 가져가는 사례다. 그레이트 베어 카본에 따르면, 캐나다 최초의 원주민 소유 탄소상쇄 프로젝트로 수익이 해안 원주민 부족 공동체와 보전 활동으로 흘러간다.

고릴라에게 계좌를 부여하는 이 실험은 단순한 기술적 시도가 아니라 자연을 '보호해야 할 대상'에서 '경제적 주체'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그 가능성과 한계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연을 경제 바깥에 두고서는 더 이상 보전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 점점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