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쾌거에 기뻐한 당신, 국어는 얼마나 쓰고 있나요?[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이미지 기자 2024. 10. 1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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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강. BREAKING NEWS The 2024 #NobelPrize in Literature is awarded to the South Korean author Han Kang “for her intense poetic prose that confronts historical traumas and exposes the fragility of human life.”
한국 시각 10일 오후 8시,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 문학상 발표를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한국 작가가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않았기에 그저 누가 되는가, 호기심으로 지켜보다가 “South Korean author, Han Kang(한국인 작가, 한강)”이 호명되는 순간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세상에, 다른 상도 아니고 노벨 문학상을, 버나드 쇼와 펄 벅, 헤세, 헤밍웨이, 카뮈가 탄 그 상을 한국인 작가가, 한국 작품으로 수상하다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감개무량했다.

수상 직후 공개된 노벨위원회와 인터뷰에서 한강 작가는 ‘한국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어릴 때부터 한국어로 된 책들을 읽으며 자랐다…한국 문학과 함께 자랐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소식이 한국 문학 독자들과 내 친구 작가들에게도 좋은 일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그의 수상은 한국어와 한글로 작품활동을 하는 많은 작가, 그 독자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긍지와 자부심을 안겼을 것이다. 마침 수상일은 한글날 바로 다음날이었다.

● 노벨 문학상 탔지만…“학생 10명 중 2명 교과서도 이해 못 해”

‘나랏말ᄊᆞ미 듕귁에 달아 문ᄍᆞ와로 서르 ᄉᆞᄆᆞᆺ디 아니ᄒᆞᆯᄊᆞㅣ(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훈민정음 서문은 너무도 인상적이라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한글 창제 목적이 이 한 문장에 담겨 있다. 한글은 나라말을 오롯이 담기 위해 창제됐다. 세종과 당대 최고 엘리트들이 머리를 맞댄 덕에 우리는 우리의 말은 물론 생각과 문화, 그 미세한 차이까지 담아낼 수 있는 최고의 그릇을 갖게 됐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같은 성찬도 이런 훌륭한 그릇이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어 맞춤 제작이긴 하나 한글은 그 자체로도 매우 우수한 문자다. 음운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만들었기에 전 세계 문자 중 가장 많은 소리를 담을 수 있다고 한다. 한글의 독창적이고도 과학적인 창제 원리를 담은 훈민정음 해례본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글날만 되면 언론을 도배하는 건 외국어 잠식, 한글 뜻 모르는 아이들, 독서 인구 최저치 같은 우울한 소식이다. 올해도 여지없이 그런 기사들을 볼 수 있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전국 초·중·고 교원 5848명을 대상으로 ‘학생 문해력 실태 교원 인식’을 조사했는데, 교원들 91.8%는 아이들의 문해력이 과거보다 떨어졌다고 답했다. 도움 없이는 교과서의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등 문해력이 부족한 학생이 전체 학생 중 21% 이상이라고 답한 교원은 절반(48.2%)에 달했다. 조사를 통해 수집된 문해력 부족 사례를 보면, 학생들은 시발(始發)점을 욕으로 알아듣고 금일(今日)을 금요일로, 이부자리를 별자리로 이해했다고 한다. 두발 자유화 두발을 두 다리, 족보를 족발보쌈세트 줄임말로 안 아이도 있었다.  

한글날을 닷새 앞둔 4일 오후 국립국어원이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한글을 바르게 한글에 반하게’를 주제로 서울 종로구 경복궁 흥복전에서 열린 ‘전국민 받아쓰기 대회’ 에 참석한 내외국인 130여 명이 본선 경쟁을 하고 있다. 예선에만 3천 여 명이 신청했으며 이날 본선 문제는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출제됐다.

● 어른도 할 말 없어…절반 이상 1년에 책 한 권 안 봐

인터넷에 떠도는 요즘 아이들 맞춤법 오류 사례를 보면 ‘이것 웃기려고 만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황당한 것들도 많다. 안 핵갈려요(안 헷갈려요). 권투를 빈다(건투를 빈다), 문안한 스타일(무난한 스타일), 골이따분한 성격(고리타분한 성격), 유종애미(유종의 미), 눈을 부랄이다(눈을 부라리다), 일해라 절해라 한다(이래라저래라 한다) 등. 놀라운 건 현직 교원에게 보여주었더니 요새 일기나 과제를 받아 보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사례들이라고 했다는 점이다.

문해력 저하는 그만큼 한글로 읽고 쓰지 않는 데 따른 것이다. 아이들만 뭐라 할 건 아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19세 이상 성인의 독서율도 43%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57%, 즉 절반 이상은 1년에 책 한 권 읽지 않았다는 뜻이다.

온라인커뮤니티를 둘러보면 어른들의 국어 수준도 만만찮음을 볼 수 있다. 금새(금세), 않된다(안 된다), 어떻해(어떡해) 같은 맞춤법, 띄어쓰기 오류는 물론 정체를 알 수 없는 외래어로 점철된 문장(시크한 인상과 큐티한 복장), 비문, 비속어까지, 게시물 하나 걸러 하나씩 이런 글을 발견할 수 있다.

2023년 하반기 한 기업의 공채 온라인 직무적성검사를 앞두고 감독관이 응시자 대상 예비소집을 진행하고 있다. 동아일보DB

● ‘국어보다 영어’ 입사·채용 시험서도 홀대받는 국어

‘나랏말ᄊᆞ미’ 이런 상황인데 우리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남의 나라말, 영어 교육에 내몰린다. 내 주변에도 자녀를 영유아 때부터 영어 사설 기관(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부모가 적지 않다. 한창 국어 단어와 표현을 왕성히 흡수해야 할 나이의 아이들이 영어 단어와 노랫말부터 배운다. 언젠가 지인들 모임에서 유치원생쯤 되는 아이에게 노래를 시켰더니 영어 동요를 불러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영어유치원에 다니며 매일 영어 노래를 부른다는데, 다들 대단하다며 감탄했지만 솔직히 씁쓸했다. 저맘때쯤 한창 불러야 할 우리 동요에 담긴 한국말이 얼마나 예쁘고 아기자기한데…. 저 아이는 모르고 크는 게 아닐까.

물론 국어를 등한시하고 영어 교육에 열 올리는 게 부모와 아이들 탓만은 아니다. 각종 입학, 채용 시험에서 영어가 변별력이 되다 보니 영어 사교육에 아니 몰릴 수 없다. 얼마 전 만난 한 외국인 취재원은 한국에서 학교와 직장을 다니며 “에세이(글쓰기) 시험이 거의 없는 것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여러 나라에서 거주해 본 그는 각국에서 입학, 채용 시험을 경험했는데 대부분 나라에서 에세이 시험이 있는 반면 한국에선 글쓰기 시험이 거의 없고 대체로 단편적인 지식이나 영어 실력을 평가하는 시험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국어가 중히 쓰이지 않는데 사람들이 국어를 공부할 이유가 없다. 안 그래도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꼭 필요한 스펙과 정보만 습득하기도 바쁘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자기기를 통한 짧고 빠른 콘텐츠 소비까지 확산하면서 긴 호흡의 국어를 읽고 쓸 기회는 더욱 줄어들고 있다. 

10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서 시민들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의 책을 살펴보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시간) 한국인 소설가 한강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한국 작가 가운데 노벨 문학상 수상은 한강이 처음이다. 2024.10.10/뉴스1

● 한강의 수상에서 그치지 않기를

노벨상 수상 소식 직후 각종 온라인 서점에서 한강의 소설이 동나고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품귀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문학상 수상 소식을 계기로 한 명이라도 더 책을 읽고 한강 작가의 글 세계도 접할 수 있게 됐다니 기쁘다.

부디 이런 열기가 금세 사그라지지 않고 다른 K문학 작품으로, 또 다른 책으로 번져 나가길 빈다. 그게 한강 작가도 수상소감에서 바란 긍정적 선순환 아닐까. 우리가 이토록 기쁘고 뿌듯하게 맞이한 노벨 문학상 수상은 국어가 좀 더 소중하고 중요하게, 그리고 많이 쓰여야 또 나올 수 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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