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사람들을 다시 극장으로 향하게 한 이유 [사이에 서서]

OTT 시대에도 여전히 극장으로 향하게 하는 힘

천만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동네 극장에서 봤다. 한국에서 2월에 개봉한 영화가 거의 일주일 만에 미국까지 건너왔다.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한국 영화가 미국 극장에 걸리는 건 드문 일이고, 상영을 한다 해도 상영관 수도 현저히 적다. ‘대세’ 영화가 아니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미나리〉 역시 2021년 오스카 후보에 오른 이후에야 잠시 극장에 걸렸던 기억이 있다. 윤여정 배우의 오스카 수상 직후 현지 분위기를 한국 언론에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상영관을 찾으러 한참을 헤맸던 기억도 있다. 우리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영화관이 열 곳 가까이 있지만, 〈미나리〉를 상영하는 곳은 극장 하나에 불과했고, 상영 시간표도 띄엄띄엄이었다.

왕과 사는 남자
감독
출연
이준혁,황성구,장항준,박윤호,이재혁,배정윤,심현섭,송종희,달파란,허선미,양승리,박지환,이준혁,안재홍,한종훈
평점

한국에서 상영되는 영화가 외국에서도 거의 같은 시기에 개봉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2023년 〈서울의 봄〉부터였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영화를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에 있는 동네 극장에서 봤다.

영화 산업이 당면한 큰 고민은 관객이 극장을 찾지 않는다는 점이다.

코로나 이후 그 흐름은 더 뚜렷해졌다. 집에서 영화를 보는 일이 훨씬 쉬워졌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가 영화와 드라마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공동 제작이나 동시 상영이 늘었고, 극장 상영 후 한두 달 만에 OTT로 공개되는 일도 흔해졌다.

배우 유지태는 〈유퀴즈〉 인터뷰에서 이런 현상에 대해 언급하며, 자신이 몸담고 있는 영화 산업 자체가 저물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제작되고 우리를 찾는 영화의 수는 예전에 비해 많아졌지만, 극장을 찾는 일은 이제 ‘특별한’ 일이 되었다.

특히 미국에서는 극장을 찾는 데 따르는 저항감이 한국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티켓 가격만 봐도 그렇다.

한국에서는 평균 1만5천 원 정도 하는 영화 티켓에 각종 할인을 적용하면 만 원 안팎으로 영화를 볼 수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주중과 주말, 시간대와 영화에 따라 티켓 가격이 다르게 책정된다.

이른바 ‘대세 영화’의 경우 주말 기준 25달러 안팎, 한화로 약 3만6천 원 정도를 내야 하고 별다른 할인도 없다.

우리 세 식구가 영화를 보러 가면 티켓과 간식을 포함해 100달러 정도 쓴다. 영화 한 편에 한국 돈으로 15만 원에 달하는 가격을 지불하는 셈이다.

대부분의 미국 영화관 좌석이 리클라이너라 한국의 일반 극장에 비해 편안하긴 하지만, 가격 면에서 느껴지는 부담은 확실히 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영화는 사람들을 다시 극장으로 불러 모은다. 이유는 각자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영화를 보러 갔던 무렵, 〈왕과 사는 남자〉는 한국에서 천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뉴스와 SNS를 통해 전해지는 분위기만으로도 영화의 열기가 느껴졌다.

자고 나면 변하는 관객 수, 연일 n회차 관람 인증이 쏟아지기에, 미국에서도 그 기분에 동참하고 싶었다.

그래서 ‘왕사남’의 우리 동네 극장 상영 일정이 발표되었을 때 한숨이 나왔다.

2월 말, 단 일주일뿐이었다. 하필 출장 기간과 겹쳤다. 이런 기회를 놓치나 하는 서운한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출장을 마치고 일요일 새벽에 워싱턴 공항에 도착한 순간, 여전히 〈왕사남〉이 상영 중이라는 동네 극장에서의 반가운 소식을 발견했다. 피곤은 잠시 제쳐두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극장에 들어서자 예상보다 사람이 많았다. 곳곳에서 한국어가 들려왔다.

웃음이 터지는 순간도 비슷했다. 노산에게 가야 할 밥상의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다가 트림 소리에 들통이 나는 장면이라든가, 유해진의 능청스러운 수다 같은 장면에서는 객석 곳곳에서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상영관 속 사람들과 한마음이 된 느낌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았다.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없었지만,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쓰며 부모와 자녀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영화의 배경처럼 들려왔다.

평소 잘 사용하지 않던 어떤 감각, 이를테면 K-문화근육 같은 것이 꿈틀대는 느낌이었다.

어떤 문화에 동화된다는 것은 ‘웃음 코드’를 맞추는 일이라고나 할까.

늘 한 박자 늦게 웃거나, 웃어야 할 곳에서 웃지 못해 답답했던 일상의 긴장이 영화관 안에서 같은 장면을 보고, 같은 순간에 웃으며 약간은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도, 조금만 기다리면 집에서 볼 수 있는 시대다. 시간에 맞춰 움직이지 않아도 되고, 표를 예매하지 않아도 된다.

'영화를 본다'라는 개념이 예전에는 영화관으로의 이동, 혹은 화면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복수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많은 시네필, 혹은 배우들이 그들의 영화에 대한 열정이 부모님을 따라 간 극장에서, 혹은 가족과 함께한 ‘주말의 명화’에서 비롯되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지금은 같은 집 안에서도 각자의 화면을 켜고 각자의 영화를 본다. 어떤 콘텐츠를 ‘함께’ 보는 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경험을 다시 만들어내는 영화들이 있다. 미국에서도 그런 일이 몇 년 전 있었다.

영화 제작자들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만들어진 하나의 현상이었다.

2023년 여름 미국에서는 ‘바벤하이머’라는 표현이 생겨날 만큼, 사람들이 극장을 하나의 축제 현장처럼 즐겼다.

같은 시기 상영된 분위기가 극명하게 다른 두 영화, 핑크빛 판타지 코미디 〈바비〉와 묵직한 역사 드라마 〈오펜하이머〉를 연달아 보는 것이 하나의 놀이처럼 번졌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한동안 화두가 되었다. 월요일이면 오가는 “주말에 뭐 했어?”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인종과 국적, 나이를 불문하고 ‘바벤하이머’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어쩌면 〈왕과 사는 남자〉를 보러 극장으로 향한 사람들도 비슷한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겠다, 라는 마음이 담긴 발길이 이어진 것이다.

‘만백성이 뒤늦은 단종의 장례식을 치르는 중’이라는 말은, 극장으로 향한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한국의 역사에 대해 모르는 외국인들은 이 영화가 ‘역사적 사실’에 기반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영화가 끝났을 때, 극장 안은 잠시 조용했다. 사람들은 코끝이 찡해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오는 길에는 간간히 대화가 들려왔다. 이민자들의 대화가 그렇듯, 자녀들은 영어로, 부모들은 한국어로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했다.

한국에서의 인기가 영향을 미쳤는지, 〈왕과 사는 남자〉는 미국 극장에서 한 달 가까이 상영되었다.

상영 기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왕과 사는 남자〉를 두 번 관람했다. 한 번은 남편과, 두 번째는 아들과 함께였다. 2회차 때 함께 갔던 아들은 이제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사실 영화를 보러 가면서 몇 년 전 같은 극장에서 〈서울의 봄〉을 보고 나오던 길, 당시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이 물었던 질문에 대한 뒤늦은 답을 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고 설명해주자, 주인공이 어떻게 되었는지, 또 권력을 잡은 사람은 어떻게되었는지를 묻는 아들에게 우리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주었다.

아이는 우리에게 물었다.

“엄마, 착한 사람이 왜 힘들어? 나는 왜 착하게 살아야 해?”

몇년 사이, 아이는 한국어를 학교에서 배우고, 조선시대를 비롯해 한국 역사에 대해 조금씩 배우고 있다. 커져버린 문화적 배경만큼 못 다 이은 대화가 가능할까 하는 건 엄마의 착각이었다.

아이는 K-드라마를 보지만, 사극에 큰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일단 한복을 입고, 말투가 달라지는 데서 느끼는 심리적인 거리감이 존재한다.

아이가 〈왕과 사는 남자〉를 보러 가고 싶어 한 건, 주연배우 박지훈이 출연한 고등학교가 배경인 드라마 〈약한 영웅〉에서의 모습을 보고 그 캐릭터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을 연기한 박지훈 배우. 출처: 쇼박스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끊어졌던 이전의 아쉬운 대화를 이어볼 생각으로 〈서울의 봄〉을 봤던 걸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사실 아이가 〈서울의 봄〉을 보러 간 건 드라마 〈D.P〉에 나왔던 배우 정해인과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왔던 배우 유연석에 대한 팬심이 기본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사춘기 탓일지, 아니면 정말 기억에서 사라진 탓인지, 아이는 <서울의 봄>을 보며 본인이 했던 질문 자체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며 화제를 돌렸다.

“엄마는 같은 영화를 두번 보면서도 또 울어?” 라며 나를 오히려 놀리기 시작했고, 방금 보고 나온 <왕과 사는 남자>는 어땠냐는 나의 물음에는 어색한 호랑이 CG를 언급하는 T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예상치 못한 전개지만, 이 대화 역시 '우리의'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왕과 사는 남자〉는 천만 관객을 넘어, 4월 11일 기준 1628만3970명을 기록하며 〈극한 직업〉을 넘어 역대 한국 영화 흥행 순위 2위에 올랐다.

해외에서 〈왕과 사는 남자〉를 관람한 관객 수는 한국 관객 수에 집계되지 않지만,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까지, 곳곳에서 해외 여화관에서 <왕과 사는 남자>를 봤다는 후기가 전해진다. 이런 숫자들까지 더해 본다면 아마 역대 1위 〈명량〉을 넘어섰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천만이라는 숫자는 언제나 특별하지만, OTT 시대에 이뤄낸 천만은 분명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집에서 영화를 보는 일이 점점 쉬워진 시대이지만, 어떤 이야기들은 여전히 사람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다.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을 다시 극장으로 향하게 할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 계기는 무엇일까.

그 순간을 또 한 번 함께하게 될 날이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문득 기대해 보게 된다.


[사이에 서서] 황진영

미국 Washington DC에 있는 국제기구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우리’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공저 <세상의 모든 청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퇴사하면 큰일 날 줄 알았지>를 썼습니다.

양 극단으로 보이는 개념들은 어쩌면 서로 맞닿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이에 서서]를 통해 '어쩌면 우리일 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 해당 글은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에 연재되고 있는 글입니다. <세상의 모든 문화>는 총 20여 명의 작가들이 매일(주중)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뉴스레터로,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무료 레터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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