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해 한국 현대사 영화를 만든 한국, 일본인 부부

(Feel터뷰!)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양영희 감독, 아라이 카오루를 만나다
<디어 평양>의 아버지

아버지는 열혈 조총련 간부로 세 아들을 북한으로 보내는데 앞장선 사회주의자였고,

<디어 평양>의 어머니와 오빠

그런 아버지를 따르던 어머니는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로 그 시대의 아픔을 안고 살아갔다. 이제 두 부모는 세상에 없는 고인이 되었지만, 재일교포 출신의 막내딸 양영희 감독은 부모님이 지내온 격동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디어 평양>의 아버지와 북한에 있는 세 오빠

2006년 <디어 평양>, 2009년 <굿바이,평양>, 2012년 <가족의 나라> 그리고 지난주 개봉한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한국, 일본 현대사의 슬픈 이면 속에 살아간 양영희 감독 가족의 이야기로 모두가 잊거나 잊으려 했던 우리 역사의 현실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남북 분단의 아픔과 제주 4.3 사건의 이야기를 담아낸 뜻깊은 다큐멘터리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연출한 양영희 감독과 남편이자 프로듀서인 아라이 카오루를 직접 만나 영화와 관련한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참고로 양영희 감독이 12살 연상이다.)

옛나잇 필름

-이전의 이야기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북한에 있는 오빠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이번에는 어머니의 이야기다.

제주 4.3 사건을 알게 된 것은 30대 후반 미국에서 만난 유대인 역사학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처음 알게 되었다.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부모님이 제주도 출신이라고 말했더니 4.3 사건에 대해 아냐고 물으시는 거였다. 그 당시 나는 4.3 사건의 존재를 몰라서 혹시 5.18 광주민주화 운동과 혼동하신 게 아닌지 다시 물었는데, 아니라고 한번 찾아보라고 언급하셨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고 사건의 존재를 알았을 때 충격을 받고 놀랐다. 아버지가 제주도 출신이셔서 4.3 사건을 아시는지 여쭤봤다.

아버지는 당시 사건으로 수많은 가족, 친구를 잃으셨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걸 모르신다고 하셨다. 평생 북한을 위해 사신 분이셔서 그럴 만도 했다. 어머니도 고향이 제주도여서 여쭤봤는데 그 당시는 모른다고 말씀 하시면서 더 이상 묻지 말라고 대답을 피하셨다. 이후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를 통해 계속 여쭤봤는데, 어미니께서 그거 계속 캐기 시작하면 위험하다고 하시는 거였다. 어머니는 아직도 대한민국이 4.3 사건을 은폐하고 쉬쉬하시는 줄 알고 계셨다. 그래서 나는 이제 대한민국이 변했고, 4.3 사건을 인정하며 재단, 연구소도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래도 못 믿으시더라.

참고로 어머니는 한류 드라마, K-POP 가수들도 싫어하실 정도로 대한민국을 싫어하시는 분이시다. 어머니의 반응을 보면서 어머니가 제주 4.3 사건의 아픔을 피부로 느끼신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최대한 어머니를 안심시키며 대한민국의 변화에 대해 계속 말씀드렸더니, 결국 조금씩 증언을 해주셨다. 그렇게 해서 이 영화가 완성될 수 있었다.

옛나잇 필름

-이전의 다큐멘터리의 이야기에 없었던 감독님의 결혼 이야기가 추가되었다.(웃음)

맞다.(웃음) 이번에 남편의 존재가 이번 영화를 완성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어머니의 증언은 확보했지만, 이것만 갖고 장편은 힘들 거라 생각해서 단편으로 완성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이상한 일본 남자가 내 곁으로 찾아오게 되었다. 그게 남편 아라이 카오루다.(웃음, 남편은 이 영화의 프로듀서) 남편이 내 영화 팬이어서 이번 영화 기획과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제주 4.3사건에 대해 이야기해 줬는데, 그 사건을 듣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면서 이 이야기는 어떻게든 꼭 만들어야 한다며 제작을 도와줬다. 당시에는 남자친구였는데, 영화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청혼을 했고, 직접 엄마한테 인사를 하러 갔다. 영화의 구성이 전반부는 어머니의 증언, 후반은 어머니와 남편의 이야기로 한 것은 바로 그런 배경이 있어서였다.

-영화 초반부에 고인이 되신 아버지께서 "절대 일본인, 미국인하고 결혼하지 말라"라고 하셨는데, 결국 일본 남자와 결혼하셨다. 어머니께서는 반대를 하지 않으셨나?

사실 나도 어머니가 남편을 받아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웃음) 어머니도 아버지와 의견을 같이 하는 사람이셨고, 조총련에서 조선 사람들끼리만 가족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시면서 그러한 편견에서 벗어나신 것 같다. 남편도 어머니가 자기를 보면 소금 혹은 김치를 뿌릴까 봐 걱정했다고 한다.(웃음) 그런데 엄마가 첫 만남부터 남편에게 삼계탕을 극진하게 대접하면서 남편을 받아줬다. 이후 남편이 삼계탕에 중독되어서 스스로 삼계탕을 만들어 먹더라.(웃음) 이제는 김치, 마늘 없이 못 사는 이상한 일본 사람이 되었다. 심지어 자기가 요리한 삼계탕에 엄청난 양의 마늘을 넣어서 먹는다.(웃음) 그리고 한국에 와서 삼계탕을 먹는데, 일본에서는 마늘 추가하면 비용을 내야 하는데, 여기서는 무료로 넣어주니 감동했다고 한다.(웃음)

옛나잇 필름

-작품 중반부에 등장한 애니메이션이 인상적 이었다. 어떻게 완성했나?

이 작품은 극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이기에 애니메이션을 통해 어머니의 증언을 표현하는 게 관객의 이해를 높여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시 사건의 여파로 인해 어머니의 십대 시절 사진이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 오사카에서 낳고 자라다가 태평양 전쟁으로 미군이 폭격을 가했고, 미군의 공격을 피하려고 제주도로 이주했는데, 4.3 사건이 터지게 되면서 다시 오사카로 밀항하셔야 했다. 그러다 보니 사진을 챙길 여유가 없으셨다. 내가 다큐 작품을 연출하면서 지키려고 하는 규칙이 있다면 당시 자료 영상, 뉴스 기사를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런 자료 영상에 의존하면 그것은 다큐가 아닌 뉴스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영화관에 공개될 작품이기에 되도록이면 내가 찍은 영상을 선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활용하는 장면에서는 애니메이션을 활용하기로 했고, 내가 좋아하는 화가이자 전직 애니메이터인 코시다 미카씨에게 애니메이션 작업을 부탁했다. 그런데 그분이 제주도를 가본적도 없고 4.3 사건에 대해 모른다며 직접 제주도를 방문회 4.3 전시관 까지 갔다 오셨는데, 돌아오시고 나서 많이 우시더라. 너무 몰랐고 슬픈 역사라며 말이다. 이 역사를 알고 나니 오사카에 재일한국인들이 많이 사신 이유를 알겠다고 한다. 그래서 아주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셨다고 한다.

옛나잇 필름

-이전에 만드신 작품들도 그렇고 돌아보면 너무나 드라마틱한 삶을 사신 가족의 일원이시다. 그럼에도 내 삶의 일부분을 다큐멘터리와 극 영화로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내 이야기를 영화로 활용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

가족 한 구성원으로서의 나, 한 부모의 딸, 세 오빠의 여동생 그리고 감독으로서의 내가 있다. 그렇게 피사체의 대상이 있지만, 가족이라는 구성원으로서 이야기를 담으려 하니 쉽지가 않았다. 사실 재일교포 사회 안에서 나와 같은 삶을 지닌 특수한 가족들이 많다. 그렇지만 일본을 비롯한 한국 사회에서는 그 이야기가 매우 특별해 보였을 것이다. 특수하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점에서 영화로 만들면 좋을 거라 생각했고, 그 점에서 관객들도 공감할 거라 생각했다.

-영화를 촬영하면서 힘드신 점은 없으셨는지?

사실 내 영화는 만들었다고 해서 흥행이 크게 되는 작품이 아니다. 돈을 들이면 소모되는 게 내 작품이다. 첫 작품인 <디어 평양> 촬영 때는 심한 우울증이 찾아와 자살 생각도 했었다. 돈도 없었고 가난했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한국처럼 제대로 된 독립영화 지원금 제도가 없다. 비슷한 게 있는데 그것도 심사를 받아야 해서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런 한풀이를 평소 알고 지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박찬욱 감독님께 했는데 그럴 때마다 두 분이 방법을 알려 주시고, 조언도 함께 주셨다. 그리고 내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이 고기, 쌀, 야채를 보내줘서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우울증을 극복하게 되면서 내 가족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들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도 어머니가 북한에 있는 오빠들에게 돈을 보내야 한다고 내가 번 적은 돈을 어떻게든 보내려고 해서 어머니와 여러 번 싸웠다.(웃음) 그런 어머니가 올해 1월 알츠하이머로 고생하시다가 뇌경색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어머니가 망상 속에 사신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상하게 나는 어머니의 그 모습이 행복하게 보였다. 아들들이 북송된 이야기부터 돈을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더 이상 안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가족이라는 큰 짐에서 해방되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남은 생을 어린 소녀처럼 행복하게 그림책을 보시고 평화롭게 지내셨고, 그럴 때마다 남편이 어머니 옆에서 책을 읽어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러니하게 어머니를 힘들게 한 것 같았던 그 망상이 고맙게 느껴졌다.

옛나잇 필름

-북한에 있는 가족들도 어머님이 돌아가신 것은 알고 계시나?

코로나 이후 북한이 편지까지 차단했다. 그래서 대신 전보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아직도 전보를 쓰는 나라라고 하니 완전히 다른 별에 있는 것 같았다.

-세 명의 오빠들과는 어린 시절 헤어졌다. 오빠들에 대한 기억이 있으신지? 감독님은 어떻게 성장하고 자라셨는지 궁금하다.

오빠들은 일본에서 자라서 십 대 때 북한으로 넘어갔다. 청춘시절에 자유 문화를 즐기다 북한으로 가야 했으니 분명 힘들었을 것이다. 17살 때 조총련이 특별히 준비한 가족 만남 투어가 있었고, 그때 오빠들을 제대로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왜 부모님이 오빠들을 북한에 보냈고, 왜 돈을 보내고, 북한의 현실을 알면서도 왜 북한을 지지하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런 현실을 피하고 싶었다. 학교도 조총련 학교를 다녔는데, 매일 집단주의, 공산주의만 배워야 하니 답답했다. 심지어 학교에서 나에게

너도 북한에 갈래?"

라는 질문까지 한 적이 있었다.(웃음) 그러다 보니 탈출구로 연극, 영화를 좋아했고 지금의 영화 감독일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 일 때문에 부모님과 많이 싸웠는데, 그럴 때마다 왜 나는 자유가 없고 마음대로 해외도 나갈 수 있는 대한민국 재일교포로 왜 태어나지 못했나 하는 생각도 한적이 있었다.(웃음) 그러다 보니 영화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았고 소재를 찾다가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생각해서 지금까지 계속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게 되었다. 사실 다큐멘터리로 상을 받는 작품이 어떤 작품인지 살펴보면 특이한 가족, 개인을 소재로 한 작품이 받게 된다. 그래서 '어느 가족이 이상한가?'라는 소재로 토너먼트를 하면 우리 가족이면 가능하겠다 싶어서 영화를 만든 것 같다.(웃음)

옛나잇 필름

-일본 영화계에서는 재일 동포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이 자주 제작되었다. 대표작으로 가네시로 카즈키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고>, 최양일 감독 연출에 기타노 다케시가 출연한 <피와 뼈>, <박치기>도 있으며, 최근에는 애플TV 플러스로 <파친코>가 방영돼 큰 화제를 불러왔다. 이러한 재일 동포 소재 작품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개인적으로 이런 작품들이 더 많이 나와주었으면 한다. 사실 <파친코> 같은 작품은 일본에서 제작되었어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아까 말씀 주신 영화 <고>는 재일 동포 소재 영화의 입문서와 같다고 본다. 일본인으로 태어났지만, 이런 배경을 지닌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일본 대중들에게도 인지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디어 평양>을 만들 때 대중들이 재일 교포 역사를 잘 몰라서 이에 대한 시대적 배경 설명을 해야했다. 이럴 때마다 아쉬운게 해외에서 나치 소재 영화를 만들때 이러한 과거 배경 설명을 안 해도 된다는 점이 부러웠다. 그만큼 당시 역사의 비극을 전 세계인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재일 동포들의 이야기 역시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알았으면 한다. 참고로 <파친코>가 제작되었을 때 스태프와 제작진이 내 영화를 잘 봤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참 기분이 좋았다.

옛나잇 필름, 사진 오른쪽이 남편인 아라이 카오루

-이제 질문을 감독님의 남편인 아라이 카오루씨에게 하겠다. 아주 중요한 질문이다.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를 듣고 싶다.(함께 크게 웃음)

아라이 카오루

아내와 나는 결혼 전부터 SNS 상에서 아는 사이였다. 아마도 3년 동안 SNS 친구였던 것 같다. 원래 아내 영화의 팬이었는데, 계속 대화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직업이 프리랜서 작가였는데, 음악을 좋아해서 돈을 모아 해외 음악제, 콘서트, 재즈 클럽을 가는 것을 좋아했다. 아내 역시 나와 취향이 비슷해서 대화 소재가 그쪽으로 갔는데, 첫 데이트도 그 분야로 할까 생각했었다. 막상 만나자고 하면 변태적인 남자로 보일 수도 있기에 콘서트에 함께 가자고 하면 자연스럽게 만남을 허락해 줄 거라 생각했다.(웃음) 그래서 밥 딜런 공연을 통해 아내와 첫 데이트를 하게 되었고, 공연 후 좋은 와인 가게를 예약해서 그곳에서 데이트를 이어나갔다.(웃음)

-왜 감독님께 제주 4.3사건을 꼭 영화화해야 한다고 의견을 드렸나?

아라이 카오루

감독 양영희를 절대적으로 응원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 사건은 장모님의 인생이기에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내도 이 작품을 하고 싶어 하는 걸 느꼈다. 이전부터 아내가 가난 때문에 영화를 만들지 못했던 사연을 잘 알기에 생활비는 어떻게든 내가 만들 테니, 영화를 포기하면 안 되겠다 생각하며 돕고 싶었다. 나는 그녀의 응원단장이니까.(웃음)

마음산책

양영희 감독

마침 10월에 내 에세이 도서인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가 출간된다. 그 책에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인터뷰에서 다 못다 한 이야기는 그 책을 통해 이어서 하겠다.

수프와 이데올로기
감독
양영희
출연
강정희, 양영희, 아라이 카오루
평점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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