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개념 ‘주적’이라는 낡은 프레임 벗어나자 [왜냐면]

한겨레 2025. 7. 23.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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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김동엽 | 북한대학원대 교수

장관 청문회만 열리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북한이 주적입니까?”

문득 이런 우스꽝스러운 질문이 떠오른다.

“나랑 밥 먹을래, 사귈래?”

국방부 장관에게, 통일부 장관에게, 심지어 고용노동부 장관에게까지 이 질문이 던져진다. 그리고 그 답변을 놓고 여야가 벌이는 공방은 이제 의례적인 정치 의식처럼 반복된다. 북한이 주적이라고 답해도, 아니라고 답해도 상대는 이미 바라는 바가 정해져 있다. 그 사이 국정 현안 논의는 뒷전으로 밀리고, 불필요한 이념 논쟁이 청문회를 지배한다.

‘주적’이라는 용어는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의 6·25전쟁 기념사에서 처음 등장했고, 이듬해 국방백서에 공식화됐다. 군사적으로는 당연한 수사였다. 당시 북한의 핵 개발로 제1차 핵 위기가 불거지고, 무장공비의 잇단 침투로 안보 불안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주적’이라는 규정은 군의 대적 정신을 강화하고 국민에게 안보 경각심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여전히 1990년대의 언어를 붙들고 있다.

안보 현실은 변했다. 북한의 위협은 여전하지만 그 성격은 달라졌다. 재래식 도발보다는 핵·미사일을 통한 전략적 억지에 방점이 찍혔다. ‘적’이 아니라 ‘위협’이다. 적은 파괴의 대상이지만, 위협은 관리하고 통제해 국익에 부합하도록 다뤄야 한다. 전략이란 적을 반드시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위협을 관리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안보는 훨씬 더 복합적이다. 사이버 공격, 경제 안보, 회색지대 도발까지, 누가 주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선명히 구분되지 않는 시대다.

게다가 ‘주적’이라는 용어는 남북관계에 있어 대화의 문을 닫아버리는 자충수가 된다. 통일부가 주적을 상정한 채 대화를 추진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기모순이다. 국방부의 강력한 대비 태세와 통일부의 교류·대화는 긴장과 유연성이라는 두 축으로 조화롭게 작동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주적론의 단순한 부정도, 맹목적 수호도 아니다.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이 프레임을 더 성숙하게 다듬는 것이다.

물론 군 내부의 대적 정신을 완전히 지우자는 말은 아니다. 군은 군대로서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 전쟁을 억제하고, 유사시 승리하기 위해 강력한 대비 태세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대외 관계 설정이나 통일 정책 논의의 모든 영역에 획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은 아니다.

청문회는 정책을 검증하는 자리이지, 이념 충성심을 시험하는 자리가 아니다. 안보를 정치적 구호로 소비하는 것은 이제 멈춰야 한다. 장관은 국민을 설득하고 정책을 조율하는 자리다. 그렇다면 더 큰 관점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주적’이 아닌 ‘현존하는 위협’으로 재규정하는 것이 그 출발이다.

얼마 전 부부 동반으로 만난 친구가 아들이 곧 군대에 간다며 걱정을 털어놓았다. 그때 친구 아내가 한마디 했다.

“군대 보내는 엄마 마음에는 주적이라는 단어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순간 울림이 왔다. 과연 2025년의 한반도 안보 현실에서, 여전히 ‘주적’이라는 개념은 유효한가를 다시 묻게 된다.

새로운 안보 현실에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주적이라는 낡은 프레임을 벗고, 위협을 관리하며 평화를 설계하는 안보 철학으로 나아가야 한다. 주적이라는 단어 없이도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미래지향적인 안보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이제 그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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