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 없고 임대료는 비싸고… '명동의 봄' 내쫓는 고질병 [視리즈]
視리즈 명동, 활황의 이면 2편
관광객 다시 돌아오고 있는 명동
‘돌아온 호황’ 지속할지는 의문
관광 추세 문화 체험으로 변했지만
명동 콘텐츠는 ‘쇼핑’에 치우쳐 있어
전통ㆍ문화 볼 수 없는 단점도 여전
명동만의 콘텐츠 만드는 노력 필요
"한국만의 전통과 문화를 느낄 수 없어 아쉽다." 명동에서 만난 외국인 관광객들을 인터뷰할 때 공통적으로 들은 말이다. 팬데믹 여파로 텅텅 비었던 명동에 관광객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하지만 명동은 '전통과 문화가 존재하지 않아 특색이 없다'는 이전의 단점을 그대로 갖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매력 없는' 명동을 계속 찾아올까.
9월 30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명동 거리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팬데믹과 경기침체로 오랜 겨울잠을 자던 명동에 다시 봄이 찾아온 듯 활력이 넘실댔다.
관광객들은 명동의 분주한 풍경을 사진에 담기 바빴다. 그들은 이방인의 자유로움과 이국의 낯섦, 군중 사이를 헤치고 다니는 즐거움을 실컷 만끽하고 있었다. 길에 앉아 닭꼬치ㆍ크레페 등 길거리 음식을 먹는 이들도 숱했다. 다만, 이 풍경 속에서 한국만의 '문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 많고, 쇼핑할 곳 많아요. 그런데 한국의 아이덴티티(정체성)는 없어요." 말레이시아에서 온 페리드(25)씨는 명동을 관광한 후 이렇게 말했다. "일본ㆍ베트남 등의 도시들을 여행할 때는 그 지역만의 정체성이 뚜렷했어요. 명동은 쇼핑할 곳도, 길거리 음식도 많은데 이곳만의 문화가 없어서 아쉬웠어요." 그는 "다음에 한국에 방문하면, 오늘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도록 한국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부산이나 제주에 가보고 싶다"고 털어놨다.
프랑스에서 온 엘리옷(26)씨의 감상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명동에서는 K-팝 문화 정도만 볼 수 있을 뿐, 한국의 전통과 문화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며 "관광 안내소를 찾기 어려웠던 점도 불편했다"고 말했다. 일본인 마야(38)씨는 "한글의 모양을 좋아하는데, 명동은 간판에 영어가 많았다"며 "한글을 조금 더 보고 싶다"고 했다.
명동 상권은 2010년대부터 가파르게 늘어난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로 호황을 누리다 팬데믹 탓에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장기침체를 겪었다. 그러던 2022년, 엔데믹(풍토병ㆍendemic) 국면이 열리면서 관광객이 조금씩 돌아왔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누적 방한訪韓 외국인 관광객은 1067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2.9% 늘었다. 팬데믹 전인 2019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93.0% 회복했다.
팬데믹 전과 달라진 점은 유커는 줄고 다른 국적의 관광객이 늘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유커는 202만명으로, 2019년 대비 33.5% 수준에 불과했다. 명동 메인스트리트에서 30여년째 티셔츠 장사를 하고 있는 정순옥(가명ㆍ67)씨는 "옛날에는 중국 손님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면, 지금은 동남아ㆍ일본ㆍ유럽 등 다양하다"며 "팬데믹 전과 비교해선 60~70%까지 매상이 올라왔다"고 전했다.
다만 5년여 만에 '돌아온 호황'이 지속할지는 의문이다. 이전에 존재했던 단점들이 보완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어서다. 외국인 관광객의 국내 관광 추세는 단체관광 위주에서 개별관광으로, 쇼핑보다 그 나라만의 문화를 체험하는 것으로 변했다.
BC카드가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 트렌드를 2019년과 2023년을 비교ㆍ분석한 결과, 즉석사진ㆍ노래방 등 체험 업종의 매출은 증가하고, 쇼핑 업종의 매출은 줄어들었다. 쇼핑 업종의 외국인 관광객 매출 비중은 2019년 79.0%에서 2023년 58.0%로 21.0%포인트 감소했다.
이런 트렌드와 정반대로 명동의 콘텐츠는 '쇼핑'과 '길거리 먹거리'에 국한돼 있다. '쇼핑 관광 명소'라는 특징 탓에 '지역성'도 부재하다. 그렇다고 체험 콘텐츠들이 많은 것도 아니다. 임대료가 너무 비싸 젊은층이 좋아하는 힙한 콘텐츠들은 명동에 정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인근 관광지와의 연계성이 아쉬운 것도 고질적 문제다. 한 상인은 "주변에 남대문시장이라는 매력적인 관광지가 있지만, 명동과의 연계성이 없어서 가는 길이 불편하다"며 "안내를 해주거나 남대문시장으로 가는 길을 편하게 만들면 명동과 남대문시장 둘 다 윈윈할 수 있는데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정란수 한양대(관광학부) 교수는 "명동은 쇼핑이 중심이다 보니 한번 방문하고 나면 굳이 재방문할 필요가 없고, 그 지역만의 즐길거리나 매력이 부족하다"며 "개별 여행객들이 로컬 문화를 즐기는 최신 여행 트렌드에 대응을 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또 "공공에서 팝업스토어를 만들거나 축제를 더욱 많이 개최하는 등 명동만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1일. 기자는 다시 명동을 찾았다. 지하철 4호선 명동역 6번 출구로 나오자, 전날과 다른점이 한눈에 들어왔다. OTT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초록색 체육복 차림을 입은 캠페이너들이 길을 지나는 외국인들과 함께 딱지치기 등 전통놀이 체험을 하고 있었다.
서울시관광협회에서 1일부터 8일까지 주최하는 '2024 서울 환대주간(Seoul Welcome Week 2024)' 캠페인이었다. 이 캠페인은 명동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서울 각지에서 펼쳐진다.
캠페인에 참여한 엘메르(34)씨는 "딱지치기를 처음 해봤는데, 필리핀에 없는 놀이여서 정말 재밌었고, 다채로운 딱지의 색깔도 예뻤다"며 "한국에 또 오고 싶다"고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이 체험은 8일이 마지막이다. 명동이 단점을 극복하기엔 너무 짧고 단발적이다. 명동은 과연 매일이 '환대주간'인 관광 명소로 변모할 수 있을까.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hongsam@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