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의 시대, 두바이를 다시 읽다
2026년 3월, 인천에서 두바이로 향하는 직항편 예약 화면에는 ‘운항 중단’이라는 네 글자가 떠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매일 사람들을 실어 나르던 항로이다. 황금빛 사막과 세계 최고층 마천루, 그리고 낯선 이방인에게도 스스럼없이 커피 한 잔을 건네던 도시로 가는 길이 막혔다.
그 도시가 그리운 사람들이 있다. 신혼여행으로 처음 두바이의 모래 언덕에 섰던 부부, 금시장 골목에서 흥정의 즐거움을 처음 알았던 여행자, 사막 한가운데 캠프에서 별을 보며 아라비아 커피를 처음 마셨던 이들. 사람들이 두바이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뉴스 속 위험천만한 비장한 도시가 아니라, 그 곳이 처음 건네던 환대의 온도이다.

“중동은 위험하다”는 단정적인 편견은 갖지 말길
중동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좀 비뚫어진 것은 인정한다. 분쟁, 극단주의, 종교 갈등. 그 단어들이 뉴스에서 반복될 때마다 중동 전체가 하나의 위험 지대로 뭉뚱그려지기도 한다. 언론의 클릭용 자극적인 헤드라인에 줏대없이 휘둘렸거나, 중동 지도를 너무 대충 읽은 결과다.
중동은 하나가 아니다. 내전 중인 나라가 있는 반면 바로 옆에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꼽히는 곳이 붙어있기도 하다. 지금의 분쟁은 이란을 중심으로 한 세력과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를 중심으로 한 세력 사이의 지역 패권 다툼이다. 종교의 이름을 빌렸지만 실질적으로는 영토, 자원, 외교적 주도권을 둘러싼 국가 간 정치 싸움이다. 이것을 ‘이슬람 문화는 원래 폭력적이다’는 식으로 읽는 것은 심각한 오독이다.
두바이가 이 싸움에서 무사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중립을 선언하였지만 이란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였다. 그 비극은 분명히 기록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사실이 두바이가 수십 년간 쌓아온 도시의 품격과 문화까지 지우지는 못한다.
2025년 전 세계 도시의 범죄율과 안전 수준을 측정하는 글로벌 데이터 기관인 누메오(Numbeo)가 발표한 안전 지수에서 두바이는 세계 3위를 기록했다. 범죄 발생 빈도를 수치화한 범죄 지수는 16.5로, 런던 45, 뉴욕 48.7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다. 이 수치는 오랜 시간 이 도시가 어떻게 운영되어 왔는지 증명한다.

커피 한 잔이 건네지는 순간
두바이에서 낯선 공간에 처음 발을 들일 때, 어김없이 먼저 나오는 것이 있다. 달라(Dalla, 아랍 전통 커피 주전자)라는 길쭉한 황동빛 주전자에서 피나잔(Fnaijan, 손잡이 없는 작은 잔)이라는 작은 잔으로 흘러내리는 연한 금빛 커피다. 이름은 가와(Gahwa), 아라비아 전통 커피이다. 옆에는 대추야자 한 알이 따라온다.
호텔 로비에서도, 시장 골목 상점에서도, 사막 한가운데 천막 캠프에서도 이 의식이 반복된다. 유네스코는 아라비아 커피를 건네는 행위를 ‘너그러움의 의식적 행위’로 정의하고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가장 연장자인 손님부터 먼저 대접하는 의례적 순서와 함께 세대에서 세대로 전수된다. 이 커피 한 잔은 “당신을 환영한다”는 말 대신 건네는,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이다.
이 의식을 카람(Karam)이라 부른다. 아랍어로 너그러움과 고귀함을 동시에 뜻하는 아름다운 단어다. 두바이 환대 문화의 가장 오래된 뿌리이기도 하다. 아랍 문화에서 손님은 신이 보낸 선물이다. 기도는 게을리하더라도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사람에게 ‘환대가 그의 종교다’라고 말하는 것이 최고의 칭찬으로 통할 정도다.
카람의 뿌리는 베두인(Bedouin), 즉 아라비아 사막을 떠돌던 유목민의 삶에 있다. 수백 년 전 사막에서 환대는 친절의 문제가 아니었다. 극한의 더위와 끝없는 모래밭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는 타인의 도움 없이 살아남을 수 없었다. 베두인 사회에는 ‘3일 규칙’이 있었다. 낯선 이가 찾아오면 그 목적을 묻기 전 3일 동안 음식과 잠자리, 안전을 아무 조건 없이 제공해야 하였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한 환대였다. 그 철학이 오늘날 두바이의 5성급 호텔 서비스에도, 데이라의 낡은 상점 주인이 건네는 차 한 잔에도 그대로 흐른다.


두바이 크릭, 그 물길이 기억하는 것
두바이의 진짜 얼굴을 보려면 화려한 마천루보다 두바이 크릭(Dubai Creek)을 먼저 찾아야 한다. 크릭은 도심을 가로지르는 좁은 수로로, 이 물길을 따라 이 도시의 역사가 모두 흐른다.
아브라(Abra)라는 낡은 나무 동력선을 타고 크릭을 건너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분, 요금은 1디르함, 한화로 370원 남짓이다. 강 이쪽 바르 두바이(Bur Dubai)에서 저쪽 데이라(Deira)로, 다시 바르 두바이로. 수십 년째 같은 항로를 오가는 이 배는 두바이에서 가장 소박하고 민주적인 교통수단이다. 여행자도, 상인도, 출근길 이주 노동자도 같은 자리에 앉아 강바람을 맞는다. 아무도 서로에게 이름을 묻지 않지만, 아무도 서로를 경계하지 않는다.

크릭 북쪽 데이라에는 두바이의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들이 모여 있다. 스파이스 수크(Spice Souk, 향신료 시장)에 들어서면 사프란, 카다몸(Cardamom, 생강과의 향신료로 아라비아 커피의 주재료), 우드(Oud, 침향이라고도 불리는 아라비아 전통 향) 냄새가 골목을 꽉 채운다. 상인은 손님이 관심을 보이면 한 줌을 덜어 코 앞에 내밀고 냄새를 맡아보게 한다. 사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냄새 맡고, 느끼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이 시장의 본질이다.
조금 더 걸으면 골드 수크(Gold Souk, 금 시장)가 나온다. 1930년대에 조성된 이 시장은 1950년대 인도와 이란 상인들이 몰려들면서 규모가 커졌고, 1970년대 이후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800개가 넘는 보석상이 빼곡한 골목 안, 진열장마다 순도 21K, 22K짜리 금붙이들이 불빛을 받아 눈이 부시다. 예로부터 두바이는 세계 금 교역의 중심지였다. 그 역사의 무게가 유리 진열장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늘 열어두는 방, 마즐리스
두바이의 전통 가옥이나 문화 공간에는 반드시 마즐리스(Majlis)라는 방이 있다. 아랍어로 ‘앉는 장소’라는 뜻인데, 기능은 그보다 훨씬 크다. 마즐리스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일상의 일을 논의하고, 소식을 나누며,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다. 신분과 국적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바닥에 카펫을 깔고 벽을 따라 쿠션을 놓은 넓은 방에는 언제든 커피를 끓일 수 있는 화로가 놓인다.
족장과 어른들은 마즐리스에서 마을의 분쟁을 해결하였다. 상인들은 이곳에서 거래를 논하고, 먼 길을 온 나그네는 신분을 묻기 전에 먼저 자리를 받았다. 이 소박한 공간이 너무나 소중하여 2015년 UAE, 오만,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는 마즐리스를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하였다. 그냥 방 하나가 인류의 유산이 된 것이다.
오늘날 두바이의 고급 호텔들은 로비 한켠에 마즐리스 스타일의 공간을 반드시 만든다. 낮은 소파, 전통 문양의 쿠션, 그리고 달라에서 따라지는 가와. 체크인을 막 마친 여행자가 그 공간에서 처음 받는 커피 한 잔이, 두바이가 수천 년째 낯선 이에게 건네는 가장 오래된 환영 인사이다.



위기를 딛고 늘 힘차게 돌아온 도시
이번 위기가 처음은 아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중동 전체에 드리운 공포, 2008년 금융위기로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던 날들, 2020년 코로나19로 공항이 텅 비던 시절. 매번 두바이는 끝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매번 당당히 돌아왔다.
코로나19가 정점이던 2020년, 두바이를 찾은 여행자는 551만 명으로 뚝 떨어졌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회복이 시작되어 2021년 728만 명, 2022년 1,436만 명, 2023년 1,715만 명, 2024년 1,872만 명으로 해마다 사상 최다 기록을 갈아치웠다. 마케팅의 힘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다시 찾고 싶게 만드는 무언가가 이 도시 안에 실제로 있다는 뜻이다. 그 무언가의 이름이 바로 ‘카람’이다.
척박한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환대의 윤리는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이 도시 곳곳에서 작동한다. 위기가 올 때마다 더 굳게 문을 여는 것이 아라비아의 방식이었고, 그 방식은 분쟁 기간에도, 분쟁 이후에도 바뀌지 않는다. UAE에서 환대는 서비스업 종사자의 형식적인 미소가 아니다. 이슬람의 가르침과 베두인 유산이 합쳐져 만들어진 윤리적 의무이며, 지금도 정부의 문화 프로그램과 학교 교육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적극적으로 전수된다.

항공기가 다시 뜰 날을 위해
잠시 두바이행 항공기가 멈췄다. 그러나 두바이 크릭 위로 수상택시 아브라는 오늘도 같은 항로를 오가고 있을 것이다. 스파이스 수크의 향신료 냄새는 골목을 가득 채우고, 마즐리스의 화로는 언제든 커피를 끓일 준비가 되어 있다.
지금 당장 그곳에 갈 수 없다면, 마음으로 나마 미리 여행해 두어도 좋겠다. 골목 어귀에서 건네는 커피 한 잔의 의미와 낯선 이에게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를 이해하고 나면, 하늘길이 다시 열리는 날 그 도시가 전혀 다르게 보일 것이다.
커피는 식지 않는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한.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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