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벙커 법정’에서 마피아 재판…200여명에게 2200년형 선고
‘뒷배’ 봐준 의원·시장·기업인도 유죄 선고
벙커 법정서 열려...판결문 낭독에만 1시간
이탈리아 법원이 이탈리아 최대 마피아 조직원과 이들을 도운 정부 관리 등 200여명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이번 재판은 이탈리아에서 30여년만에 진행된 대규모 ‘마피아 재판’으로, 전 총리 법률고문을 지낸 잔카를로 피텔리 의원 등 정부 고위급 관계자들에게도 중형이 선고됐다.
20일(현지시간) 안사통신 등에 따르면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주 비보 발렌티아 법원은 이날 이탈리아 최대 마피아 조직 ‘은드랑게타’ 조직원과 정부 조력자 등 피고인 338명에 대한 1심 판결을 내렸다.
피고인 대부분은 2019년 12월 이뤄진 대대적 마피아 소탕 작전 때 체포된 이들로, 당시 경찰은 3년간 2500명가량의 인력을 투입해 비보 발렌티아 지역에서 활동하는 은드랑게타 조직원들을 대거 잡아들였다.
은드랑게타는 유럽에 유통되는 코카인의 80% 이상을 통제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범죄 조직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한때 칼라브리아 지역의 시골 갱단이었으나 서아프리카와 남미까지 세를 확장해 현재는 세계 곳곳에 2만명의 조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거대 조직으로 몸집을 키웠다. 이들이 마약 밀매와 고리대금업 등 불법행위을 통해 벌어들이는 액수는 연간 500억유로(약 67조원) 이상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날 재판에선 살인과 강탈, 돈세탁, 부패, 고리대금, 범죄조직 연루 등 수많은 범죄 혐의가 다뤄졌는데, 주요 조직원을 비롯해 이들의 ‘뒷배’를 봐준 이탈리아 고위급 정치인들과 경찰 공무원, 시장, 기업인에게도 유죄가 선고됐다.
은드랑게타의 지도부 중 한명인 사베리오 라치오날레와 도메니코 보나보타에게 각각 징역 30년형이 내려졌고 주요 조직원들에게도 17~28년형의 중형이 선고됐다. ‘삼촌’으로 불리는 은드랑게타의 최고 보스 루이지 만쿠소는 별도의 재판을 받고 있어 이번 재판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 6월 세상을 떠난 피텔리 전 상원의원은 은드랑게타와 결탁해 각종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11년형을 선고받았다. ‘마피아의 해결사’라고도 불리는 피텔리 전 의원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의 법률고문을 지낸 인물이다. 이탈리아 군사경찰대 중령을 지낸 조르조 나셀리는 2년 6개월, 전직 경찰관 미켈레 마리나로는 10년 6개월의 징역형이 선고됐다. 전 지방의회 의원인 피에트로 잠보리노는 18개월형을 선고받았다.
은드랑게타 조직원들은 공공 경쟁 입찰 과정을 조작하거나, 지역 관료들에게 뇌물을 건네는 등 지역 경제, 공공기관, 심지어 보건 시스템에도 잠입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타임스는 이 사건으로 범죄 조직과 이탈리아 정치인, 공무원, 사업가 등의 깊은 유착 관계가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이번 재판은 지난 1986년부터 1992년까지 6년간 치러진 ‘막시 재판’ 이후 이탈리아에서 열린 최대 규모의 마피아 재판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이들의 형량을 모두 더하면 2200년형에 이른다. 이날 재판은 범죄 조직의 공격에 대비해 특수 제작된 벙커 형태의 법정에서 열렸으며, 피고인 수가 많아 판사가 판결문을 낭독하는데만 1시간이 넘게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정부는 1990년대 ‘마피아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대규모 소탕 작전을 펼쳐왔지만 마피아는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오랜 퇴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피아를 뿌리뽑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탈리아 정재계와 마피아가 끈끈하게 유착돼 있기 때문이다.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마피아는 기업들을 상대로 대부업을 하거나 부패 정치인들의 돈줄 역할을 하며 이탈리아 정재계에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캐나다 퀸스대학의 조직범죄 사회사 교수인 안토니오 니카소는 “은드랑게타는 서비스 기관이자 글로벌 자본주의의 구조적 구성요소가 됐다”며 “‘수갑’만으로는 뿌리 뽑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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