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낙인 찍힌 '경의선 키즈'에겐 길거리가 가장 안전한 공간"
서울 마포구 경의선 책거리 일대에서는 화려한 블라우스와 높은 통굽 구두 등 범상치 않은 차림을 한 10대 여성 청소년들이 무리를 지어 늦은 밤까지 수다를 떨고 춤을 춘다. '경의선 키즈'로 불리는 이들은 스스로 '멘헤라(정신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의 일본 신조어)', '지뢰계(밟으면 터지는 지뢰 같은 여자)'라 부르며 정신적 취약성을 하나의 개성 또는 패션으로 승화한 또래집단이다.
낯선 문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본 어른들은 이들에게 '성매매하는 불량집단'이란 낙인을 찍었다. 지난해 10월 경의선 키즈들이 '조건 만남'을 한다는 유튜브 영상이 화제가 된 데 이어, 같은 달 <조선일보>는 "30분 만남 15만원, 성관계 30만원"…홍대 앞 모여드는 '경의선키즈' 제하의 기사를 통해 '경의선 청소년들이 성매매 정보를 교환한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이 외에도 많은 언론이 경의선 키즈들을 비행을 저지르는 문제적 집단으로 바라보고 있다.
경의선에 모인 청소년들은 미디어가 다뤄온 것처럼 정말 문제로 점철된 집단일까. 여성 위기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서울시립 십대여성지원센터 '나무' 활동가들은 지난 달 27일 <프레시안>과 만나 "경의선 키즈들은 각자 다양한 생각과 관심사로 모여드는 청소년들이기에 백인백색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며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니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나무 활동가들은 경의선 키즈들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가 쏟아진 이후 주기적으로 경의선 일대를 찾아갔다. 관계 형성을 위해 경의선 키즈들을 따라 춤을 췄다는 목격담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러 노력을 통해 경의선 문화를 즐기기 위해 지방에서 놀러 온 청소년, 학교에서 소외돼 친구들을 사귀러 온 청소년, 가정폭력을 피해 하루만 집을 나온 청소년 등 경의선에 모인 10대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이 경의선 키즈들과 밀접한 교류를 이어가며 내린 결론은 '문제는 경의선에 모인 청소년들이 아닌 그들을 동료시민으로 여기지 않고 착취의 대상으로 보는 사회에 있다'는 것이다. 성범죄의 온상이 된 온라인은 물론이고 가정과 학교 등 오프라인에서 발생하는 폭력도 끊이지 않는 상황 속에 청소년들은 길거리에서 친구들에게 밤을 보내는 게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는 게 활동가들의 설명이다.
활동가들은 10대 여성들을 낙인 찍기보다 그들이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취약한 상황에 놓이는 구조적 원인을 짚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고, 딥페이크 등 성범죄는 가해자를 처벌하는 법만 만들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나라에서 여성 청소년들이 겪는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27일 서울 동작구 서울시립십대여성일시지원센터 나무 사무실에서 만난 활동가들과의 일문일답이다. 요청에 따라 활동가들의 이름은 '나무'로 통일했다.
프레시안 : '나무'를 소개해 달라.
나무 : 나무는 위기 상황에 놓인 여성 청소년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서울시 민간위탁기관이다. 십대 여성들을 센터 밖으로 직접 만나러 가는 '현장상담사업', 십대 여성의 위기 상황 및 일상을 지원하고 다양한 사회적 자원들에 연계하는 '일시지원사업'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센터는 열린 공간으로, 청소년들이 낮 시간 동안 식사, 휴식, 샤워 등을 할 수 있으며 센터 이용 시간이나 횟수, 방법에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아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곳이다.
프레시안 : 나무 활동가들이 경의선 청소년들과 함께 춤을 췄다는 목격담이 SNS에서 화제가 됐다.
나무 : 화제가 되기 전부터 경의선 일대 청소년들과 랜덤 플레이 댄스를 춰왔다. 경의선에 모이는 청소년들은 서로 춤을 추며 일면식 없는 사이에서도 친해진다고 한다. 나무는 청소년과 활동가들이 서로 배우는 관계라고 생각하는데, 현장에서 만난 10대 여성들이 춤을 보여주니 자연스럽게 추게 됐다. 그동안 특이한 옷을 입은 경의선 키즈들을 문제적으로 보거나 비웃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우리가 기관 이름이 달린 조끼를 입고 청소년들과 함께함으로써 경의선 청소년들의 문화를 이상한 일이 아니게 만들고 싶었다.
프레시안 : 나무가 만난 경의선 청소년들은 미디어가 비춘 대로 문제적 집단인가.
나무 : 우리가 만난 경의선 청소년들은 한 공간에 모여 다양한 문화들을 향유하며 외로움을 해소할 관계를 찾고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자신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의 수단과 방법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처음 우리는 위기 청소년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경의선을 방문했지만, 도리어 그들이 가진 에너지에 힘을 얻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경의선에 모인 청소년들은 다양한 생각과 관심사로 모여든 백인백색의 청소년들이기도 하다. 우리가 만난 청소년 모두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겪는 문제는 경의선 밖에서 만난 청소년들이 겪는 문제와 다르지 않았다. 남성 10여 명이 경의선 길거리에 앉아 있는 두 여성 청소년들을 에워싸다 우리가 다가가자 달아나더라. 진짜 문제는 위기 상황의 여성 청소년들을 '성착취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있다.
프레시안 : 위험할 수 있는데도 경의선 청소년들이 밤까지 거리에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무 : 오히려 청소년들은 경의선 일대를 안전한 공간으로 여긴다. 우리가 만난 청소년 중에는 주말 동안만이라도 자유를 느끼기 위해 지방에서 찾아온 청소년, 아버지가 골프채로 때리는 것이 두려워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청소년도 있었다. 집이나 학교를 넘어 온라인 공간마저 폭력이 일상이 된 상황에 이들은 가정이나 쉼터보다 자신과 비슷한 감수성 또는 경험을 가진 또래 친구들과 함께 거리에서 밤을 보내는 게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프레시안 : 경의선 청소년들을 비롯한 여성 위기 청소년들이 가정과 학교를 나오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나.
나무 : 학교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청소년들이 어울리고 사회를 배워나가는 학습의 장이 아닌 학업만을 위한 공간으로 변질돼 경쟁에서 탈락한 청소년들이 남아있기 어렵다. 또 예전에는 놀이터나 길거리에서도 놀 수 있었는데, 지금은 '인생네컷'을 찍거나 마라탕을 먹고 쇼핑을 하는 등 돈이 있어야만 또래 문화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현행법상 부모의 동의 없이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으니 위험한 일을 겪기도 한다. 전세사기나 대출사기 등 국가적 현상으로 번진 범죄들은 탈가정 위기청소년들이 이미 숱하게 겪어온 일들이다.
프레시안 : 여성 위기 청소년 지원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다면 무엇인가.
나무 : 근본적으로 청소년들이 왜 이렇게까지 거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써야 하는지에 대한 구조적 분석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 특히 십대 여성들의 심리적 어려움과 욕구에 대한 분석이 부족한데, 대통령이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청소년을 담당하는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공약한 나라에서는 당연히 여성 청소년들의 구조적 어려움을 알아내기 어렵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발생하기까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수많은 성범죄가 있었지만 가해자를 처벌하는 법안을 만들 뿐 범죄가 발생하는 사회적인 원인을 연구하지 않았다. 여성을 동등한 시민으로 생각하는 올바른 성인식 없이 기술만 발달한 결과 IT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는 청소년들에서 딥페이크 성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했다. 이번 사태에도 '딥페이크 처벌법' 외에 구조적 문제는 별다른 논의가 없다. 이대로라면 신기술을 매개로 한 성범죄는 앞으로도 반복되고 통제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프레시안 : 여성 위기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지원 제도는 무엇인가.
나무 : 쉼터나 피해지원센터 이외에도 청소년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대안 공간 등 다양한 선택지가 필요하다. 지금은 위기 청소년이 자해를 하거나 복용하던 약이 없으면 쉼터에 입소하기 어렵고 쉼터에 머물더라도 경찰이 아동학대를 인정하지 않으면 부모에게 위치를 알려야 한다. 또한 법률상 18세 미만 청소년은 노숙인에 포함되지 않아 거리에 내몰려도 관련 지원을 받을 수 없고 만 19세 미만 수급권 자녀에게는 독립해도 주거급여를 주지 않는 문제도 있다. 경직된 청소년 지원 체계를 벗어나 자유롭게 머물 수 있는 대안공간이 있으면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 청소년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위기 청소년들을 장기간 지켜보고 돌볼 수 있는 문턱 낮은 지원기관도 필요하다. 나무에 찾아온 한 위기 청소년은 3년 동안 신뢰감을 형성한 후에야 본인이 당하고 있던 성폭력을 고백했다. 활동가들은 부모의 부재나 폭력 등으로 돌봄을 받지 못해 일상생활이 어려운 위기 청소년의 사회적 신뢰 회복을 위한 일상적 돌봄을 제공한다. 쉼터나 자살예방센터 등 지원기관들은 실적 압박과 재정 등 현실적인 여건 문제로 이런 밀접하고 일상적인 도움을 주기 어렵다. 그럼에도 나무는 최근 서울시의회에서 재위탁이 승인되지 않아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다. 애써 제도적 한계를 보완하는 모델을 만들었으니 장기간 유지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많은 위기 십대 여성을 도울 수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줄어들고 있어 아쉽다.(끝)
[박상혁 기자(mijeong@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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