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관칼럼] ‘경험의 멸종’을 넘어

차종관 2026. 2. 3.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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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켤 때마다 화면 가득 펼쳐지는 4K 화질의 풍경은 경이롭다. 윈도우 배경화면에 뜬 동유럽의 고성(古城)이나 남태평양의 에메랄드빛 바다는 클릭 몇 번이면 그 장소의 역사와 맛집 정보, 심지어 다녀온 사람들의 생생한 후기까지 내 눈앞에 내놓는다. 우리는 이것을 '정보'라 부르고, 때로는 이것을 '경험했다'고 착각한다.

흥미롭게도 시대를 달리한 두 명의 저자가 '경험의 멸종(The Extinction of Experience)'이라는 똑같은 제목의 책을 통해 우리에게 서늘한 경고장을 던졌다. 생태학자(lepidopterist) 로버트 파일(Robert Michael Pyle)은 우리가 자연과 맺는 직접적인 접촉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의 멸종'이라 불렀고, 최근의 크리스틴 로젠(Christine Rosen)은 디지털 기술이 매개하는 편리한 삶이 어떻게 우리의 인간성을 위축시키는지 파헤치며 다시금 이 단어를 소환했다. 파일이 흙과 바람을 잃어버린 인간을 걱정했다면, 로젠은 스크린 속에 갇혀 타인과의 진짜 얼굴을 잃어버린 인간을 우려한다. 이 두 가지 '멸종'은 결국 하나의 지점에서 만난다. 바로 육체적 감각과 불편함이 거세된 삶이다.

현대 사회는 가성비와 효율을 신으로 모시는 거대한 시스템이다. SNS는 타인의 편집된 일상을 통해 대리 만족을 권하고, 알고리즘은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만 큐레이션 하여 실패 없는 선택을 유도한다. 크리스틴 로젠은 이러한 삶을 "매개된 삶(Mediated Life)"이라 칭하며, 우리가 기술이 제공하는 마찰 없는(frictionless) 편안함에 중독되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묻고 싶다. 튀르키예의 카파도키아를 모니터로 감상하는 것과 수십 시간을 비행하고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실어 도착한 괴레메 골짜기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그 기괴한 암석들을 마주하는 것이 과연 같은 무게의 경험인가? 전자가 시각적 정보의 습득이라면, 후자는 내 존재가 세계와 충돌하며 빚어내는 사건이다. 로버트 파일이 말한 것처럼, 후자에는 피로가 있고, 낯선 두려움이 있으며, 압도적인 자연 앞에 선 인간의 겸허함이 있다. 이 비효율적인 과정, 즉 육체가 개입된 직접 경험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철학과 예술의 역사는 책상 앞이 아니라 길 위에서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진정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는 도중에 잉태된다"라고 했다. 장 자크 루소 역시 걷기를 통해 비로소 사유가 흐른다고 고백했다. 그들이 숲속의 오솔길을 걸으며 느낀 바람의 온도와 불규칙한 지면의 감각은 뇌를 자극하고, 고여 있던 생각의 둑을 터뜨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는 단순히 걷는 행위가 아니라, 자연이라는 거대한 타자와 직접 대면하는 과정에서 오는 지적, 정서적 고양(Emotional Elevation)이다.

현대의 지성 알랭 드 보통이 히드로 공항에 상주하며 쓴 '공항에서 일주일을' 또한 경험의 중요성을 웅변한다. 그는 화려한 여행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공항'이라는 공간에 머물며 이별의 눈물과 재회의 포옹, 지루함과 설렘을 직접 목격하고 기록했다. 그가 만약 공항 통계 자료나 CCTV 화면만 보았다면 결코 포착할 수 없었던 인간 군상의 진실이다. 직접 보고, 듣고, 그 공간의 공기를 마시는 행위는 우리에게 타인의 삶을 상상하게 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본질을 통찰하게 하는 힘을 준다.

이러한 직접 경험의 상실은 다니엘 골먼이 주창한 '정서 지능(EQ)'의 위기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골먼은 EQ의 핵심 요소로 자기 인식, 자기 조절, 동기 부여, 감정이입, 사회적 기술을 꼽는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능력이 스마트폰 화면 속 텍스트가 아니라, 실제 사람과 부대끼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길러진다는 점이다. 크리스틴 로젠 역시 효율적인 디지털 소통이 타인의 표정을 읽고, 어색한 침묵을 견디며, 갈등을 조율하는 우리의 '사회적 근육'을 퇴화시킨다고 경고한다.

우리가 SNS를 통해 맺는 관계는 '좋아요'라는 긍정의 신호만 오가는, 소독된 관계일 경우가 많다. 갈등은 차단으로 해결되고, 불편한 감정은 스크롤로 회피된다. 그러나 진짜 경험은 불편하다. 낯선 여행지에서 길을 잃었을 때의 당혹감,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손짓 발짓으로 소통했을 때의 안도감, 거친 자연 속에서 느끼는 무력감과 경외감. 이러한 '날것의 감정'들을 직접 겪어내고 소화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내 감정의 밑바닥을 들여다보고(자기 인식), 타인의 곤경에 깊이 공감하는 능력(감정이입)을 키우게 된다. 경험이 멸종된 사회에서 자란 세대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거나, 작은 실패에도 쉽게 좌절하는 유리 멘탈을 갖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서적 근육은 현실의 마찰(friction)을 통해서만 단련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적응'이 아니라 '느린 숙고'다. 검색 한 번이면 답이 나오는 세상에서,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 헤매는 과정은 멍청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효율성이 배제해버린 그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 인간의 사유와 성장이 숨어 있다.

경험의 멸종을 막는 길은 단순하다. 기계가 매개하지 않은 날것의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다. 로버트 파일의 조언처럼 내비게이션 없이 낯선 숲길을 걸어보고, 크리스틴 로젠의 제안처럼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타인의 눈을 바라보며 대화하는 것이다. 요약본 대신 두꺼운 책의 질감을 느끼며 읽고, 모니터 속 풍경 대신 내 피부로 바람을 맞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시간 낭비처럼 보일지라도, 그 비효율적인 시간이 쌓여 우리의 영혼을 살찌운다.

우리는 데이터가 아니라, 이야기로 이루어진 존재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오직 내가 직접 겪은 땀과 눈물, 그리고 먼지의 냄새로만 쓰인다. 이제 화면을 끄고, 신발 끈을 묶고, 진짜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갈 시간이다. 거기서 만나는 불편함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가장 선명한 증거가 될 테니까.

차종관 세움교회 목사, 전 성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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