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을 착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타인을 먼저 배려하고 살아온 시니어들에게 노년의 평온함은 당연한 보상이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텅 빈 손과 마음의 상처만 남는 경우가 많다.
젊은 시절 내 욕심보다는 남의 사정을 먼저 살피며 헌신해왔으나, 막상 기력이 다한 말년에 돌아오는 것은 고마움이 아닌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 주변의 냉대뿐일 때 깊은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깨닫는 가장 아픈 진실은 나 자신을 돌보지 않은 채 베풀기만 했던 친절이 때로는 스스로를 가두는 독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자식의 앞날을 위해 내 노후 자금까지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 믿었으나, 정작 본인이 경제력을 잃자 자식들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보며 뼈아픈 후회를 한다.
모든 것을 다 주고 나면 자식이 더 잘 효도할 것이라 믿었던 순진한 기대는 현실의 무게 앞에서 무너지고, 결국 손을 벌려야 하는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내 생존을 지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임을 너무 늦게 깨달은 노인들은 끝까지 내 몫을 쥐고 있지 못한 것을 가장 먼저 후회한다.

거절하면 상대가 상처받을까 봐, 혹은 관계가 서먹해질까 봐 무리한 부탁도 묵묵히 들어주며 살았지만 정작 내가 어려울 때 곁에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허망함을 느낀다.
평생 남의 눈치를 보며 착한 사람 가면을 쓰고 사느라 정작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조차 잊어버린 채 세월을 보낸 것이 가장 큰 한으로 남는다.
타인의 기분을 맞추느라 소모했던 그 수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나 자신을 위해 썼더라면 훨씬 더 당당하고 풍요로운 노후를 보냈을 것이라는 뒤늦은 깨달음이다.

배려가 반복되면 그것을 권리로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평생 마음을 다해 베풀었으나, 작은 거절 한 번에 배신자 소리를 들으며 관계가 끊어질 때 인간에 대한 깊은 회의감을 느낀다.
나쁜 의도 없이 그저 선하게 살면 복이 올 것이라 믿었지만 현실은 오히려 착한 사람을 만만하게 보고 이용하려는 이들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임을 말년에야 알게 된다.
진정한 인간관계는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상호 존중에서 온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무조건적인 친절로 인맥을 유지하려 했던 과거의 미련함을 자책하게 된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챙기느라 정작 내 몸이 보내는 적신호를 무시하고 일만 하며 살았던 세월이 병상에 누워 생각하면 눈물 나게 억울해진다.
내가 아파서 누워보니 그토록 챙겼던 이들도 각자의 삶이 바빠 내 곁을 오래 지켜주지 못한다는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며 비로소 내 몸이 가장 소중했음을 절감한다.
젊을 때 조금 더 이기적으로 내 건강을 챙기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나를 위해 투자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노년의 고독한 통증과 겹쳐지며 가슴을 친다.

최근에는 제 2의 전성기를 누리며 과거의 배려를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시니어들도 우리 주변에 아주 많다.
다만 지나친 희생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쳐 사회적 사각지대에서 홀로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어르신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는 직시해야 한다.
스스로를 먼저 사랑하고 지키는 것이 진정한 배려의 시작임을 깨닫고 이제라도 나를 위한 삶을 시작할 때 비로소 후회 없는 당당한 노후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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