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임진리

서동철 2024. 5. 14. 05:04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일 년에 한두 차례는 꼭 가는 임진강변 매운탕집이 있다.

다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면 나는 "한국 3대 매운탕집의 하나는 되지 않느냐"고 큰소리친다.

동네 이름이 임진리라니 임진강 주변을 대표하는 마을이었겠거니 했을 뿐이다.

언덕 위에선 지금도 율곡 이이 집안의 정자 화석정이 임진강을 굽어보고 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 년에 한두 차례는 꼭 가는 임진강변 매운탕집이 있다. 드라이브 삼아 친구들과 함께 찾으면 누구 하나 엄지손가락을 내밀지 않는 사람이 없다. 다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면 나는 “한국 3대 매운탕집의 하나는 되지 않느냐”고 큰소리친다.

부모님을 따라 매운탕을 먹으러 가던 아주 옛날엔 이 동네 역사를 몰랐다. 동네 이름이 임진리라니 임진강 주변을 대표하는 마을이었겠거니 했을 뿐이다. 언덕 위에선 지금도 율곡 이이 집안의 정자 화석정이 임진강을 굽어보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화석정에 불을 붙여 파천길에 오른 선조가 강을 건너는 것을 도왔다는 전설은 나중에야 들었다.

이곳에는 진서문이 6·25전쟁 때까지 남아 있었다. 단원 김홍도의 아들 김양기가 그린 ‘임진서문’을 보고 감회가 적지 않았다. 진서문을 복원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벌써 오래전이건만 며칠 전 찾았을 때도 진서문 터와 임진강은 장벽에 가려져 있었다. 아까운 관광 자원을 방치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서동철 논설위원

Copyright © 서울신문.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