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염 걸려서 응급실 다녀왔거든요?"…전국 횟집 벌벌 떨게 한 '목소리'의 정체 [사기꾼들]

서지윤 2026. 7. 16.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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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단 5일 만에 시작된 '장염 연극'
목소리 하나로 전국 횟집 사장들 농락
가지도 않은 횟집서 "배탈 났다" 사기
욕설에 위생과 신고 협박까지 '무차별'
법원 "누범기간 중 범행, 실형 불가피"
기사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한 AI 이미지
[파이낸셜뉴스] "저기요, 사장님. 저 어제 가게에서 회 먹었던 손님인데요. 여태껏 배가 너무 아파서 죽을 뻔했어요. 응급실까지 갔다 왔다고요. 병원에서는 급성 장염이라고 하고. 식중독 가능성도 있대요. 치료비가 꽤 나왔는데 어떻게 하실 거예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다급하고도 억울한 목소리. 평생 정직하게 가게를 운영해 온 횟집 사장들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돈을 주지 않으면 시청 위생과에 신고하겠다는 협박과 욕설까지 뒤섞인 전화를 받고 나면, '혹시 우리 가게 음식에 문제가 있었나' 하는 불안감과 함께 서둘러 계좌번호를 받아 적게 마련이었다. 30만원 남짓한 돈. 큰 분쟁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소상공인들의 절박하고 약한 마음을 파고든 교묘한 덫이었다. 이 모든 것은 단 한 명의 남자, A씨(41)가 홀로 기획하고 연출한 '완벽한 연극'이었다.

첫 사기의 짜릿함

그가 교도소 밖으로 나온 것은 지난 2025년 6월 17일이었다. 사기죄와 공갈죄 등으로 징역 1년을 살고 막 출소한 참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숙하며 새로운 삶을 꿈꿨겠지만, A씨에게는 다른 계획이 있었다. 자유의 몸이 된 지 불과 5일 만인 지난 2025년 6월 22일 그는 수화기를 들고 회를 먹고 배탈이 났으니, 치료비를 보상해 달라고 요구했다. 거짓말로 16만3070원을 뜯어내는 데 성공한 A씨는 짜릿함을 느꼈다. 이때부터 무차별적인 '가짜 장염' 사기 행각이 본격화됐다.

방법은 간단하면서도 집요했다. 횟집을 검색한 뒤, 무작정 전화를 걸어 "어제 회를 먹고 장염에 걸려 응급실에 다녀왔다"며 치료비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증거를 보여주겠다며 과거 다른 일로 진료받았던 오래된 병원 영수증을 전송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사실 해당 횟집들을 방문한 적도, 그곳의 음식을 먹은 적도 전혀 없었음에도 말이다. 오직 돈을 가로채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수법은 갈수록 뻔뻔해졌다. 돈을 주지 않으면 "시청 위생과에 신고해 영업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겁을 주며 소상공인의 목을 죄었다. 그가 사기를 쳐 돈을 편취한 횟수는 무려 42회에 달했다. 피해 금액은 900만원을 넘겼다. 돈을 뜯어내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도 허다했다.

평화롭게 장사하던 전국 각지의 횟집 사장들은 그의 가짜 장염 연극에 속아 피 같은 돈을 송금하거나, 영문도 모른 채 신고 협박에 시달리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연합뉴스

■전국 횟집이 먹잇감

결국 꼬리를 밟힌 A씨는 사기와 사기미수, 공갈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형사3단독(이성균 부장판사)은 지난 3일 A씨에게 징역 2년과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벌금 미납 시 10만원을 하루로 환산해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했고, 벌금 상당액의 가납도 함께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방문한 적도 없는 전국의 횟집 운영자들에게 허위로 장염 피해를 주장하며 기망과 공갈을 반복했다"며 "피해자 수와 범행 수법 등을 고려할 때 죄책이 매우 무겁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누범기간 중 자숙하지 않고 복역을 마친 후 불과 5일 만에 범행을 저질렀고 동종 전력이 다수 존재해 재범 위험성이 높으며, 아직 모든 피해 회복이 이뤄지지 않아 일정 기간 사회 격리가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다만 피고인이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있는 점, 미수에 그친 부분도 상당한 점, 일부 피해자와 합의를 마치고 형사공탁을 한 점 등은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jyseo@fnnews.com 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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