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센추리' 최상위 브랜드로 격상
'럭셔리 제국'의 완성 정조준
이제 '2인자' 된 렉서스?

지난 30여 년간 ‘프리미엄 자동차’의신분당선 대명사이자 ‘일본식 완벽주의’의 상징으로 군림하며 도요타그룹의 자부심이었던 렉서스. 하지만 이제 렉서스 오너들은 자신의 차보다 더 높은 곳에 존재하는 새로운 황제의 등장을 지켜봐야 할 처지에 놓였다. 도요타그룹이 럭셔리 브랜드 전략을 전면 재편하며, 일본 내수 시장의 최고급 플래그십 모델이었던 ‘센추리(Century)’를 렉서스를 뛰어넘는 독립된 최상위 브랜드로 공식 격상시켰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라인업 하나가 추가된 것이 아니라, 그룹의 럭셔리 피라미드 구조가 통째로 바뀌는 지각변동이다. 이로 인해 기존 렉서스 최상위 모델 오너들은 졸지에 ‘2인자’ 브랜드의 오너가 되는 미묘한 상황에 놓였다. 도요타는 왜 이처럼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으며, 앞으로 센추리와 렉서스는 각각 어떤 길을 걷게 될까. 이는 도요타의 명예회장이자 ‘마스터 드라이버’인 아키오 토요다의 원대한 야망과 맞닿아 있다.
'렉서스 위'를 원했던 아키오 토요다의 야망

이번 브랜드 전략 재편의 중심에는 도요타그룹의 ‘살아있는 전설’, 아키오 토요다 회장이 있다. 그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렉서스보다 위에 있는 브랜드의 공간이 존재한다”고 역설하며, 그 역할을 센추리가 맡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렉서스가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와 경쟁하는 대중적인 럭셔리 시장에 머무르는 동안, 센추리는 롤스로이스, 벤틀리, 마이바흐와 같은 초호화 시장을 직접 공략하겠다는 야망의 표현이다.
센추리는 단순한 고급차가 아니다. 1967년 도요타 창업주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탄생한 이래, 일본 왕실과 총리, 최고위급 경영인들만이 타는 ‘쇼퍼 드리븐’의 상징으로 군림해왔다. 수십 년 경력의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완성하는 도장과 실내 마감, 봉황 엠블럼 등은 센추리가 단순한 공산품이 아닌 ‘예술품’의 경지에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센추리는 이러한 전통적인 장인정신과 고객 한 사람만을 위한 맞춤형 제작을 중심으로 ‘최고 중의 최고’를 상징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다. 이미 존재하는 전통적인 세단과 2023년 출시된 SUV 라인업에 더해, 최근에는 ‘원 오브 원(One of One)’이라는 이름의 파격적인 2도어 쿠페 콘셉트카까지 공개하며 라인업 확장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는 센추리가 더 이상 일본 내수용 쇼퍼 드리븐 세단에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초호화 시장을 공략하는 독립 브랜드로서의 대관식을 치렀음을 의미한다.
왕관을 내려놓은 렉서스, ‘혁신’의 날개를 달다

그렇다면 ‘왕좌’를 센추리에게 물려준 렉서스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도요타는 렉서스가 ‘2인자’로 격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룹 내 최고’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더 자유롭게 혁신과 도전을 추구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키오 토요다 회장은 “렉서스는 계속해서 개척자로서 도전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변화의 신호탄은 파격적이다. 렉서스는 이달 말 열리는 ‘2025 재팬 모빌리티쇼’에서 6개의 바퀴를 가진 3열 미니밴 형태의 ‘럭셔리 스페이스(Luxury Space) 콘셉트’를 공개하며 새로운 브랜드 방향성을 제시할 계획이다. 아키오 토요다 회장은 기존 플래그십 세단 LS의 약자인 ‘Luxury Sedan’을 ‘Luxury Space(호화로운 공간)’로 재정의하며, 전동화 시대에 맞는 공간 중심의 새로운 럭셔리 비전을 주문했다. 이는 렉서스가 전통적인 세단과 SUV의 형태에 얽매이지 않고, 미니밴, 크로스오버, 심지어 수소 버기카(ROV 콘셉트) 등 더욱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모델들을 선보이는 ‘혁신의 선봉장’이 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도요타-렉서스-센추리, 3단계 럭셔리 제국의 완성

이번 전략 재편을 통해 도요타그룹은 대중 브랜드 도요타,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 렉서스, 그리고 일본의 전통과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한 초호화 럭셔리 브랜드 센추리로 이어지는 명확하고 체계적인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게 되었다. 마치 시계 업계의 세이코, 그랜드 세이코, 크레도르처럼 각자의 역할과 목표를 명확히 나눈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전략이 성공할지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렉서스라는 강력한 브랜드를 스스로 팀킬할 수 있다는 위험성과, 센추리라는 이름이 일본 외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할지에 대한 의문이다. 하지만 이는 1989년, 모두의 우려 속에서 ‘렉서스’라는 브랜드를 성공시켰던 도요타의 자신감과 야망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전략적인 움직임이다. 앞으로 센추리가 보여줄 일본식 럭셔리의 정수와, 렉서스가 그려나갈 파격적인 미래 모빌리티의 모습이 기대를 모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