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들어간 대기업 관두고 인천 남동공단으로 간 이유"
구독형 공장 관리 서비스 '공장장닷컴'
인천 남동공단, 안산 반월공단 등 우리나라 주요 산업단지들엔 곳곳에 공장 전문 공인중개사 사무소들이 있다. 공장 매매나 임대 중개가 이뤄진다. 오래된 산업단지일수록 임대 공장 비율이 높다. 공장 내 잉여공간에 대한 쪼개기 임대도 있다. 한 공장에 4~5개 기업이 입주해 있는 경우도 있다.
리얼라이저블 원동명(39) 대표는 임대 공장 관리를 위한 웹서비스를 개발했다. 원 대표를 만나 공장이라는 공간에 주목한 계기를 들었다.
◇관리비 자동으로 산출하는 온라인 공장 관리사무소
공장 관리비는 보통 임대인이 직접 계산하거나 직원을 고용해 수기로 관리한다. 수도나 전기 요금의 경우 한 공장 안에서 어떤 기업이 얼마나 사용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 임대인과 임차인 간 갈등이 벌어지는 경우도 많다.
리얼라이저블은 임대 공장 관리 플랫폼 ‘공장장닷컴’을 개발했다. 임대 공장의 관리를 대행하는 서비스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비슷하다. 단순한 개념이지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던 임대 공장 관리비 계산의 허점을 제대로 공략했다. 전기요금 정산·미납 임대료 관리 등 번거로운 공장관리 업무를 자동화했다.
임대 장부 관리·전력 관리·시설 관리가 주요 기능이다. 임차인별 임대료와 관리비를 자동 프로그램으로 계산해 그 청구서를 문자나 카카오톡으로 전송한다. 임대인에게는 임대관리 현황과 미납 내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임대 보고서를 제공한다.
제조 공장 관리비 내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기요금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다. 한국전력공사의 개방 데이터(API)와 연계해 입주 기업별 실시간 전기 사용량 및 전기요금 확인이 가능하다. 이밖에 청소, 경비, 승강기 등 공장 운영에 필요한 시설 관리 용역 업체를 중개하는 기능도 있다.
공장장닷컴은 아파트 관리 사무소처럼 평당 관리비를 받아 수익을 낸다. 우리나라에서 공장장닷컴과 같은 서비스를 하는 기업은 리얼라이저블이 유일하다. 창의성을 인정받아 법인 설립 7개월 만에 스타트업 투자사 프라이머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했다. 관리비를 투명하게 계산할 수 있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임대 기업·임차 기업 모두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직장생활 중 우연히 발견한 시장
원동명 대표는 2011년 인천대학교 동북아통상학과를 졸업하고 KCC건설 공사관리부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2017년 프랑스계 자동차 부품 제조 회사로 이직해 개발 원가 계산, 부품 구매 등 업무를 했다. “제조사에 다닌 덕에 공장에 방문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특히 두번째 회사는 자동차 시트, 수소전지, 배기가스 제어 부품 등을 제조하는 회사였는데요. 우리나라 부품 제조 공장에 일감을 맡기면서 국내 여러 산업단지와 제조공장을 다녔어요. 이때 공장 사장님들 많이 만났죠.”
중소형 공장들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산업단지 내 구성원의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업무 방식이 90년대에 멈춰 있더라고요. 예컨대 디지털 뱅킹이 보편화됐지만 공단 내 은행 지점에선 서류와 팩스로 공장과 소통하고 있었어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거의 안 된 거죠. 비즈니스 모델을 잘 구축하면 공장 프롭테크 시장을 선점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2021년 초, 갑자기 부모님의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휴직했다. 같은 해 8월 사표를 썼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니까지 건강이 안 좋아진 상황이었습니다. 어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휴직했어요.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 심경 변화가 생겼습니다. ‘젊을 때 하고 싶은 일은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퇴사 후 사업을 시작해 보기로 했어요.”
◇10번 중 8번 문전박대 겪어도 남동공단 출근 도장
사업 아이템을 정하지 않은 채 퇴사했지만 ‘공장’이라는 키워드는 갖고 있었다. 2021년 겨울부터 6개월간 인천 남동공단에 출근 도장을 찍으면서 사업 아이템을 구상했다. “남동공단 내 공인중개사를 무작정 들러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처음엔 퇴짜맞는 게 일상이었죠. 공장 내 중개업은 인맥이나 정보력, 속도가 중요한데 젊은 청년이 무작정을 들어와 시간 뺏으며 질문을 퍼부어 대니 경계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2022년 공단 내 공인중개사 사무실 안에 책상을 빌려 간이 사무실을 차렸다. “젊은 청년이 할 일 없이 공단을 기웃대니 어르신들이 관심을 가지시더군요. ‘공단 내 공장들의 고충을 듣고, 디지털 서비스로 풀어보고 싶다’는 포부를 듣고 좋게 보신 한 공인중개사님이 책상을 내주셨어요. 행운이었습니다. 공단 내 공인중개사 사무소는 여러 공장주가 오가는 ‘사랑방’으로 통하거든요. 공장주의 현실적인 고충을 들을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죠.”
사업을 결심하고 6개월 만인 2022년 3월 ‘임대공장 관리’로 사업 아이템을 정하고 법인을 설립했다. “디지털화가 되지 않은 모든 부분을 검토해 봤어요. 은행 업무, 공단 내 전문 인력 알선 등이요. 의외의 영역에서 공통적인 고충이 들리더군요. ‘임차인 관리’였죠. 전기요금 분할이 대표적입니다. 공장을 통틀어 요금이 나오니 공장주가 나름의 기준으로 입주 공장에 부과해야 하는 상황인데요. 공장마다 전기요금을 나누는 기준이 평수·근무 시간·매출 등 제각각입니다. 이렇게 기준이 다르니 임대인, 임차인 간 잡음이 많습니다.”
◇주먹구구식 공장 관리비, 기술로 해결
최근 2년 간 산업용 전기 요금이 10%씩 3번이나 오르면서 투명한 관리비 배분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다. “산업용 전기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관리비의 수준을 뛰어넘어요. 공장 별로 수천만원에 이르죠.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가 객관적인 관리비 산출 기준을 원하는 상황인데, 갈등이 생기면 공인중개사가 중간에서 중재하는 정도에요. 기술이나 데이터를 활용해 관리비를 산정하려는 움직임은 없었죠. 제가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공장별 전기 사용량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부터 찾았다. 한국전력공사에서 제공하는 ‘개방 데이터’에 접근했다. “국가에서 앱이나 웹서비스 개발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한 데이터입니다. 공장별 전력 소비량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죠. 단순하지만 정확한 방법으로 접근하기로 했습니다. 각 공장 기계마다 전력량 계량기를 부착하는 거죠. 계량기에서 나오는 전력량과 한전의 데이터를 비교하면 기업별로 소비한 전력량을 측정할 수 있습니다. 실제 전력 소비량을 기반으로 하니 그 어떤 기준보다 정확하죠. 임대인, 임차인 모두 납득할 수밖에 없는 관리비 부과 기준이 생긴 겁니다.”
2022년 3월 법인 설립 후 1년 넘게 남동공단 내에서 시범 사업을 펼쳤다. 전력 소비량을 정확하게 측정해 주고, 측정 결과를 기반으로 관리비 부과 업무까지 대행해 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인기를 끌었다. 시범 사업 기간에만 8개 공장의 55개 기업이 전력 소비량 측정을 의뢰해 왔다. “데이터를 분석한 뒤 전기 요금과 임대 비용 등의 항목을 만들어 관리비 청구서를 만들었습니다. 임대인에게는 미납 현황을 정리해 보고서를 제공했고요.”
어느 정도 시장성이 검증되자 CTO(최고기술경영자)를 영입해 정식 서비스 개발에 돌입했다. ‘친절한 디지털 서비스’를 표방했다. “한전의 데이터를 자동으로 가져와서 계량기 측정 데이터와 자동으로 비교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해 일손을 줄였습니다. 고객사를 많이 유치해도 업무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공단 구성원들의 연령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서 서비스를 기획했어요. 관리비 청구서는 카카오톡이나 문자처럼 중장년층에게도 익숙한 디지털 창구로 전송되게끔 설계했습니다.”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공장 관리’의 업무 영역을 정립했다. “처음에는 공장 관리의 범위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요구 사항을 다 들어드렸죠. 화장실에 막힌 변기를 뚫거나 벌집 떼는 일까지 했어요. 이후 저희가 해결할 수 있는 일과 능력치를 벗어난 일을 구분하기 시작했고, 대응이 어려운 일들은 전문 인력을 연결하는 식으로 변화했습니다.”
◇산업 데이터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 목표
평당 관리비로 수익을 낸다. 평당 1000원 수준으로 책정했다. ‘서비스가 비싸서 못 쓰겠다’는 공장주와 기업은 없었다. “공장주 입장에서는 경리 직원을 쓰지 않아도 돼서 좋고, 임차인은 관리 요금이 정확해서 만족한다는 반응이었습니다.”
2023년 4월까지 8개 공장, 55개 기업을 고객사로 유치했다. 대외적으로도 아이디어를 인정받았다. 지난 3월 중소벤처진흥공단의 청년창업사관학교 13기에 선정됐다. 현재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스타트업 육성 공간인 ‘프론트원’에 입주해있다.
수집한 공장의 전력 데이터를 활용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목표다. “데이터를 활용한 부가 수익 모델을 만들어 공장 관리 비용은 점점 줄여가고 싶어요. 그래야 더 많은 영세한 제조 기업이 공장 관리를 경험할 수 있을 테니까요. 기업을 대상으로 한 전기요금 절감 컨설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산업용 전기는 시간대별로 요금이 달라요. 전기 사용이 몰리는 시간대에 요금이 더 높죠. 전기 사용 흐름을 분석해서 전기요금을 줄일 수 있는 시간대를 추천하거나, 낭비되는 전력을 절약하는 방법을 소개해 중소형 공장을 돕고 싶습니다. 추후 공장 가동률을 분석해 잉여 공간을 중개하는 업무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사업 아이템을 제대로 검증하는 방법은 직접 발로 뛰어보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가만히 앉아서 공부만 하는 것으로는 성과를 내기 힘든 영역이 있어요. 그게 사업이더군요. 사업을 펼치고자 하는 분야에 직접 찾아가 궁금증을 해결할 때까지 부딪쳐 보고, 퇴짜도 맞아보면서 좀 뻔뻔하게 살아야 합니다."
/김영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