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애매했던 차" 르노삼성의 첫번째 SUV QM5
그랜저를 살까, 산타페를 살까? K5를 사야 되나, 스포티지를 사야 되나? 언제부터인가 물과 기름처럼 나름 명확히 구분되던 차종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변화를 이끈 건 바로 SUV였는데요. 과거 험로 주파를 목적으로 만든 '보디 온 프레임 방식'의 정통 SUV에서 '모노코크', '유니바디'를 적용해 몸을 유연하게 만들더니, 결국 산에서 내려와 도시로 향하면서 이제는 세단의 고유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죠.
오늘 소개할 이 차량도 SUV의 세단 침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델 중 하나입니다. 줄곧 세단만 만들어오던 르노 삼성이 선보인 '첫 번째 SUV 라인업'이자, 일본이 아닌 프랑스의 감성을 담은 첫 번째 차. 이번 시간에는 르노삼성의 도심형 크로스오버 'QM5'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미 다른 영상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듯 SUV 열풍은 최근에 불어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90년대 중반 스포티지가 불을 지핀 '도심형 컴팩트 SUV' 시장이 해가 갈수록 눈에 띄게 커져 왔고, 적당한 가격과 넉넉한 공간을 갖춘 SUV들이 연이어 등장. 소비자들이 세단과 SUV를 동일 선상에 놓고 고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미 SUV 바람은 시작됐죠.
기업 입장에서도 SUV 인기는 반갑기 그지없었어요. 동급의 세단이나 해치백보다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었기 때문에 보다 많은 이익을 가져다줬기 때문이죠. 소형차와 상용차에는 강세였지만 SUV와 중형차 라인업이 빈약한 프랑스 '르노' 역시 이 노다지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라인업을 확장해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유럽과 아시아 시장 판매량을 늘리려는 목적 외에도, 어차피 생산도 할 겸 시장 규모에 비해 은근히 쏠쏠한 수익을 가져다주는 르노 삼성의 제품 라인업에 SUV를 추가해 마찬가지로 이익을 높이려는 계획도 있었죠.
다만 모기업 르노는 중형차 이상의 큰 차나 SUV를 만드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아예 만든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내놓는 것마다 특유의 프렌치 감성이 너무 듬뿍 들어간 나머지,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죠. 고심 끝에 르노 자동차의 동아시아 전략 기지로서 제품 개발 능력을 평가한다는 명목하에 '르노 삼성'에게게 이 작업을 맡겨보기로 합니다. 물론 든든한 파트너 '닛산' 역시 함께 참여하기로 했죠. 이렇게 시작된 '프로젝트 H45'는 '르노와 르노 삼성이 디자인과 상품 기획, 생산을 담당'하고 '닛산은 설계'를 맡은 그야말로 '글로벌 프로젝트'였습니다.
이후 2006년 '파리 모터쇼'에서 양산형에 가까운 쇼카를 선보인 이후, 2007년 '서울 모터쇼'에서는 르노 삼성 로고를 단 'QMX'로 등장했습니다. 이윽고 그해 12월 'QM5'라는 이름으로 국내 시장에 데뷔했죠. 차명은 알파벳과 숫자를 조합해 왔던 르노삼성의 작명법에 따라 같은 형태로 쓰여졌습니다. 단순히 삼성의 자동차임을 뜻했던 세단 'SM 시리즈'와 달리 '퀘스트 모터링', 드라이빙을 추구한다는 뜻을 담았구요. 뒤에는 차급을 의미하는 5를 붙였죠.이로써 르노 삼성 역시 국내 5개 완성차 회사 중 마지막으로 SUV 시장에 참전한 브랜드가 됐습니다.
외관은 색다름 그 자체였습니다. 그동안 르노삼성의 로고를 단 승용차는 세단 뿐이었기에 SUV라는 차종 자체만으로도 신선했지만, 기존의 닛산 베이스가 아닌 르노 계열의 차량이었기 때문에 그 독특함이 배가됐죠. 대형 라디에이터 그릴과 큰 헤드램프가 시선을 사로잡는 전면부는 에서 출시된 '신형 SM3' 이후 등장한 'SM7 뉴아트'와 궤를 같이했고, 스티어링힐 방향에 따라 추가로 빛을 조사해 주는 '코너링 램프' 기능을 더한 바이제논 헤드램프를 동급 최초로 탑재해 편의성을 높였습니다. 또 투톤 컬러와 스피드 플레이트 등을 옵션으로 마련해 외관을 좀 더 터프하게 꾸밀 수도 있었죠.
D필러를 과감하게 눕혀 쿠페 스타일로 마무리한 후면부는 차를 한층 날렵해 보이게 했고, 후면 유리에 검은 플라스틱 패널을 연결해 로고를 배치한 것도 세련미가 돋보이는 부분이었습니다. 다만 지나치게 큰 헤드램프와 상대적으로 옹졸해 보이는 뒷모습 때문에 출시 당시의 외관에 대한 반응은 좋지 않았습니다. 마치 괴물 같다며 '퀘물5' 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고 저도 개인적으로 안 좋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왠지 모르게 이질감이 드는 모습이랄까요.
특히 저 머플러 팁... 이 디자인이 콧대 높은 파리지앵들을 설득해서 그나마 보편적인 정서로 나온 결과물이었을 텐데... 전반적으로 거친 비포장길을 터프하게 질주하는 모습보다는 르노삼성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 이미지처럼 빌딩 숲과 잘 닦인 아스팔트 길이 더 어울리는 외관이었습니다.
실제로 르노삼성에서도 QM5의 'SUV'라는 용어 자체를 배제하고 완전한 '도심형 크로스오버'로서 세단 같은 편안함과 매끈한 주행 감각에 초점을 맞추되 약간의 실용성을 더한 모델임을 강조했죠. 이름에서 짐작되듯 르노 삼성은 이 차를 중형 SUV로 포지셔닝했습니다. 전장 4,520mm, 폭은 1,855mm로 당시 준중형 SUV인 투싼과 스포티지보다는 확실히 컸죠. 다만 중형 SUV라기에는 '3열 시트'까지 갖춘 '산타페'나 '윈스톤'보다는 작은 애매한 크기였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셀토스'를 '스포티지 같은 준중형 SUV'로 분류할 것이냐, '스토닉 같은 소형 SUV'로 분류할 것이냐 같은 문제였죠. 산타페보다는 반 체급 작았지만 디자인 때문에, 수치에 비해 시각적으로 더 작아보였습니다. 아직도 투싼, 스포티지와 크기가 비슷한 줄 아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크기와 성격으로 놓고 보면 당시 GM 대우의 유럽 전략 차종인 윈스톤 맥스 본명 '오펠 안타라'와 비교하는 게 맞았지만 이쪽도 크기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 이름처럼 안 타버리는 바람에 이런 차가 있었는지조차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요.
실내 역시 기존 르노삼성 세단의 색채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지금에야 모든 라인업이 르노 계열로 완전히 전환되어 이 느낌이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유럽 감각의 인테리어가 좀 낯설게 느껴졌죠. 차분한 그레이 컬러와 금속 느낌의 내장재로 꾸며진 실내는 외관의 도시적인 느낌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트림에 따라 부분적으로 사용된 우드그레인 역시 흔히 떠올리는 고리타분한 색상이 아닌 채도가 낮은 색상을 사용해 지금 봐도 컬러 매치가 상당히 세련됐죠. 동굴형으로 깊게 배치한 인포테인먼트 모니터와 원형의 송풍구가 시선을 사로잡는데 중앙에 자리 잡은 비상등 버튼과 묘하게 어우러지면서 마치 부엉이를 떠올리게 만든다는 이야기도...
그 아래로 각종 버튼을 깔끔하게 배치하고 트림에 따라 카본 장식이나 우드그레인을 적용해 고급감을 더했죠. 매끈한 디자인의 스티어링 휠은 한편으로는 밋밋해 보이기도 했는데, 으레 있어야 할 버튼들은 다 어디로 도망가고 없고 대신 곰 발바닥 같은 오디오 리모컨이 뒤쪽에 자리했죠. 보기에는 불편해 보이지만 써보신 분들 아실 거예요. 생각보다 되게 편합니다. 이밖에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EPB)', 'BMW i-Drive' 시스템을 연상케 하는 인포테인먼트 조그셔틀, 국산차량 최초로 적용된 '스마트키 버튼 시동'과 서브 우퍼를 더한 8개 스피커의 'BOSE 사운드 시스템' 등 각종 최신 편의사양을 적용한 것도 프리미엄 마케팅을 이끌던 르노삼성다운 구성이었습니다.
특히 국산차 최초로 개방이 가능한 '파노라마 선루프'를 선보인 것은 '신세계.'. 넉넉한 크기의 글로브 박스와 조수석, 뒷좌석 하단 서랍장 같은 깨알 같은 수납공간을 더해 실용성을 챙긴 부분은 지극히 르노스러운 디테일이었습니다. 뒷좌석도 '리클라이닝 기능'과 'B필러 에어 벤트', '측면 커튼'을 장비해 중형 SUV라는 차급에 걸맞게 꾸몄죠. 다만 겉에서 드러났던 애매한 크기는 곧 애매한 공간으로 이어졌습니다.
중형 SUV를 표방했지만, 준중형 SUV와 비교해 넉넉했을 뿐 3열까지 갖춘 경쟁 차와 비교하면 초라한 공간이었죠. 경사진 D필러는 날렵한 외관을 만들어 냈지만 적재 공간에서는 고스란히 단점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래도 다양한 설계를 통해 이를 만회하고자 노력했는데 2열 시트는 '더블 폴딩'을 지원해 완전히 평평한 적재공간을 만들 수 있었고 특히 조개껍데기처럼 위아래로 열린다는 데서 그의 이름이 붙은 '클램쉘 테일게이트'는 이 QM5만의 독보적인 구성이었습니다. 트렁크 하단이 연장되어 평상시 무거운 짐을 싣거나 내릴 때 편리할 뿐만 아니라 도킹 텐트를 연결할 경우 짧은 전장을 보완할 수도 있었습니다.
성인 2명이 벤치처럼 걸터앉아도 전혀 문제가 없죠. 파워트레인은 르노-닛산이 공용하는 2.0L 디젤과 6단 수동 및 6단 자동 변속기를 주력으로 후에 'X-Tronic 무단 변속기(CVT)'를 결합한 4기통 2.5L 가솔린 사양이 추가됐습니다. 닛산은 준중형 SUV '로그'와 동일한 파워트레인이었죠. 르노삼성 최초로 디젤 파워트레인을 얹은 모델로 르노삼성이 주구장창 어필하던 도심형 크로스오버 모델답게 차량의 성향은 '컴포트'에 치중되어 있었습니다. 높은 시트 포지션, 부드럽고 편안한 주행 질감이 돋보여 운전이 편리했고 가족과 함께 타기에도 좋았죠.
핸들링만큼은 세계 최정상급인 프랑스 브랜드의 손길이 닿은 모델답게 좌우로 출렁이는 경쟁차와 비교하면 코너링 실력은 동급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여기에 적당히 높은 지상고와 주행 환경에 따라 구동력을 조절할 수 있는 4륜 구동 장치까지 더해 약간의 험로에서도 무리 없는 주행이 가능했습니다. 또 후기형에는 4륜 구동 모델에 6단 수동변속기를 매칭하고 출력을 높인 디젤엔진을 탑재한 '스포티' 트림을 신설하기도 했죠. 차량의 성격과 세팅을 감안하면 여러모로 디젤보다는 가격과 정숙성이 우세한 가솔린이 어울리는 듯하지만 'SUV는 무조건 디젤'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던 당시 분위기 때문에 지금처럼 가솔린을 주력으로 내세우긴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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