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루 코치 감전된 줄” 쓰러져서도 간절했던 ‘멈춤’ 사인…극한직업 정수성 코치

사진 제공 = OSEN

2점 차이, 위험한 리드

8회가 끝났다. 스코어는 5-3이다. 홈 팀은 9회 초만 막으면 된다. (4월 25일 잠실 구장, 두산 베어스 – LG 트윈스)

충분한 점수 차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전문가 눈은 다르다. 이순철 SBS 해설위원이 한마디 경고를 보낸다. “몹시 위험한 리드”라고 상황을 정리한다.

설마.

하지만 무섭게 들어맞는다. 돗자리 하나 깔아야 할 것 같다. 9회 초, 원정 팀의 반격이 거세게 몰아친다.

신들린 대타 작전이다. 연달아 작렬된다. 송찬의가 2루타, 구본혁의 안타가 터진다.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여기에 볼넷(천성호)이 추가된다. 1사 만루로 기회가 확장된다.

하필이면, 어쩌자고. 이게 3, 4, 5번 앞에 걸린다. 가장 위협적인 타자들이다. 눈빛이 달라진다.

먼저 오스틴 딘이 폭발한다. 강렬한 타구를 뿜어낸다. 투수 옆으로 빠진다. 아무도 잡을 수 없다. 외야로 빠지는 적시타다.

주자 2명이 홈을 밟는다. 2점 차이는 단번에 사라진다. 5-5 동점이 된다. 3루 쪽 관중석이 온통 노란 물결을 이룬다. 벤치도 신이 난다. (염경엽) 감독이 머리 위로 박수를 보낸다. 잠실이 뜨거워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성난 파도는 계속된다. 1사 1, 2루가 문보경 앞에 펼쳐진다. 카운트마저 3-1로 타자 편이다.

그냥 넘어갈 리 없다. 외통수에 걸린 5구째가 들어온다. 148km짜리 직구다. 이미 알고 기다린다. 깔끔한 스윙이다. 완벽한 타이밍이 만들어진다.

다이아몬드가 절반으로 갈라진다. 중견수 앞으로 빨랫줄이 널린다. 또다시 함성이 터진다. 역전에 대한 기대감이 최대치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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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루에서 급브레이크

그러나 반전이다. 주자가 3루에서 갑자기 멈춘다. 급브레이크다. 모두가 깜짝 놀란다. 타구의 주인(문보경)도 마찬가지다. 안타까움에 펄쩍 뛴다. 머리를 감싸 쥔다. ‘그걸 왜?’ 하는 표정이다.

일시정지 버튼이다. 역전이 코 앞이다. 그런데 숨 고르기를 택한 것이다.

그럴 만하다. 타구가 너무 강했다. 대응하는 중견수도 만만치 않다. 빠르게 전진한다. 최대한 앞에서 공을 자른다. 주자가 3루를 도는 시점과 막상막하다.

게다가 정수빈이다. 신속한 당일 배송은 이미 정평이 났다. 강력하고 정확한 어깨로 유명하다. 맞다. 무리할 필요는 없다. 흐름을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

그 순간이다. 갑자기 잠실 구장에 물음표가 한가득 뜬다.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린다. 3루 쪽이다. 누군가 쓰러졌다. 발목을 부여잡고 고통을 삼킨다. 트레이너가 급히 달려간다.

‘저런, 3루를 돌다가 삐끗했구나.’ 당연히 주자를 걱정한다. 하지만 웬걸. 천성호는 멀쩡하다. 옆에서 상황을 지켜볼 뿐이다.

그럼 도대체 누워 있는 사람은? 중계석에서 웃음이 터진다. 공중파 방송을 하던 이순철 위원이 실소를 금치 못한다.

“너무 좋은 타구가 나왔구요. 허허허. 정수성 코치가 지금, 넘어지면서 막았어요.” (이순철 SBS 해설위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다. 조금 통증이 가라앉는다. “정수성 코치가 일어서기는 했는데, 조금 절룩이고 있습니다. (정우영 캐스터)

SBS TV 중계화면 / TVING 캡처

정확했던 멈춤 지시

정리하면 이런 상황이다.

중견수 앞 안타다. 보통이라면 충분하다. 2루 주자가 홈으로 가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애매하다. 자칫 맥이 끊길 위험성도 있다.

도박은 필요 없다. 아직도 원 아웃이다. 만루로 이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게다가 대기 타석이 문성주다. 득점권에서 출중한 타자다. 그를 믿고 맡기는 게 낫다.

그런 판단이다. 그래서 천성호를 멈추게 했다.

하지만 너무 급박했다. 부랴부랴, 허겁지겁. 날랜 뒷걸음, 혹은 옆걸음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중심을 잃었다. 기우뚱하면서 나뒹군 것이다.

모양이 빠진다. 본의 아니게 몸개그를 펼쳐야 했다. 만원 관중 앞이다. 민망함이 몰려온다. 통증은 그다음이다.

지켜보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발목을 부여잡고 쓰러진 장면이다. 얼마나 아플까? 그것보다 안쓰러움이 먼저다. ‘피식’. 나오는 웃음을 숨기기 어렵다. (본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러나 프로의 세계다. 결과로 말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정확한 판단이었다. 무섭도록 냉정한 결정이었다. 정수빈의 송구는 정확했다. 포수에게 원 바운드 스트라이크로 꽂혔다.

만약 ‘돌렸다면’. 꽤 어려웠다. 생사를 장담 못 할 타이밍이었다. 아니, 오히려 아웃 가능성이 큰 것처럼 보였다.

이후 전개도 그렇다. 문성주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또다시 중견수 앞으로 적시타를 터트린다. 스코어는 6-5로 뒤집힌다. 기어이 역전극을 완성시킨 것이다.

이어 오지환도 힘을 보탠다. 넉넉한 희생플라이로 7점째를 불러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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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먹는 자리’ 3루 코치

흔히 ‘3루 코치’라고 불린다. 일하는 지역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정식 명칭은 다르다. ‘주루 코치’ 혹은 ‘작전 코치’라는 보직이다.

KBO 코치는 힘든 직업이다. 연봉이나, 처우에 만족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그렇다.

반면 욕먹는 일은 다반사다. 마운드가 흔들리면, 투수 코치가 욕을 먹는다. 타자들이 못 쳐도 마찬가지다. ‘타격 코치는 뭐 하는 사람이냐’. 그런 비난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런 것 같다. 은퇴 후에 ‘다른 길’을 찾는 스타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자리가 있다. 바로 ‘3루 코치’다. 그야말로 ‘극한 직업’이다.

이유는 뻔하다. ‘돌리느냐, 멈추느냐’ 하는 문제 때문이다. 아마 야구에서 가장 어려운 판단 중 하나일 것이다. 그걸 찰나의 시간에, 순간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만약 홈에서 아웃된다. 그럴 경우는 몸 둘 곳을 찾기 어렵다. “거기서 왜 돌렸냐.” “세웠어야지.” 그런 질책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졸지에 패배의 원흉이 된다.

머뭇거려도 마찬가지다. “과감하지 못하다.” “공격적으로 해야지.” 하는 원망 가득한 눈길을 견뎌야 한다.

특히 사령탑의 캐릭터에도 민감하다. 염경엽 감독 같은 스타일은 더 어렵다. 워낙 복잡하고, 다양한 작전을 구사한다. 그래서 준비할 것도 많다. 요구사항도 까다롭기 마련이다.

부임 초기의 일은 아직도 생생하다. 경기 중에 심하게 ‘버럭’한 해프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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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1승은 원태인?

게다가 며칠 전에는 구설수까지 겪었다. 난데없는 사건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본의 아니게, 여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까마득한 후배가 기자회견을 자초한다. 요구한 적 없는 사과까지 받아야 했다.

“정수성 코치님께 정말 죄송한 상황이 돼 버렸다. 너무 예민해져 그런 언행이 나온 것 같다. 직접 사과 전화를 드렸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이해한다’고 말씀해 주시더라.” (삼성 라이온즈 원태인)

그러거나 말거나. 인기 있는 에이스급 투수이거나, 자칫 욕먹을 자리의 ‘일개’ 코치이거나.

각자의 일을 해내면 된다. 그라운드는 승부하는 곳이다. 변명 따위는 필요 없다. 결과로 말하면 그만이다.

어제(25일)의 리플레이 화면이다. 넘어진 뒤의 장면이다. 2루에서 출발한 천성호가 3루를 돈다. 지시를 내려야 하는 코치는 발목이 꺾여 쓰러졌다.

그런 와중이다. 그래도 온몸으로 막는다. 누운 채로 양손을 활짝 편다. “멈춰라. 홈으로 가면 안 된다.” 하는 사인이다.

이 장면은 놀림거리가 된다. SNS나 커뮤니티에서 화제다.

“코치님 감전된 줄 알았다.”

“저러니 한 소리를 듣지.”

“의문의 1승은 원태인 몫인가.”

같은 반응들이다.

하지만 아니다. 안타깝지만, 인상적인 한 컷이다.

민망함 속이다. 고통의 와중이다. 그런 순간에도 자기 일을 해낸다. 멈추지 않는다. 간절하고, 절박한 손짓을 계속한다.

그게 어제 승리에 벽돌 한 장을 보탠 진심일 것이다.

SBS TV 중계화면 / TVING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