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기재부의 자의적인 개념마저 받아들인 언론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2024. 2. 24.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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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지난 2월8일 기획재정부는 2023년 총세입 총세출 마감 결과를 발표했다. 작년 얼마를 벌고 얼마를 썼는지를 집계해서 발표했다는 의미다. 뉴스를 보면 작년 우리나라 정부가 애초 쓰기로 했던 예산을 쓰지 못한 불용액은 45.7조 원으로 역대 최대라고 한다.

▲ 예산 불용액 추이. ⓒ 연합뉴스
▲ 포털사이트 '2023년 예산 불용액' 기사 검색 갈무리.

연합뉴스가 그린 그래프를 보면 2023년도 역대 최대 불용액의 규모는 그야말로 극단적으로 이례적인 규모다. 불용액 규모는 2023년 정부가 얼마나 일을 잘했는지를 평가하는 주요한 정량 지표다.

2023년 대한민국 총지출액은 639조 원이다. 나는 2023년 대한민국의 본질은 639조 원을 쓰는 정치집단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애론 윌다브스키는 “예산은 정치 투쟁의 결과이자 기록”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고 어떤 정당이 여당이 되는지에 따라 예산 편성금액과 예산의 배분금액이 달라진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에 취임하고, 2023년 첫 번째 본예산안을 편성했다. 정부가 작성한 본예산안은 국회 논의 과정을 거쳐, 639조 원의 총지출 규모를 확정했다. 2023년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국회의 승인을 얻은 639조 원을 충실히 집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2023년 불용 규모는 2023년 정부의 성적표다.

그런데 2023년 불용규모 45.7조 원은 최근 5년간 불용규모를 모두 합친 액수보다도 더 큰 액수다. 2023년 정부의 성적표가 극단적으로 나쁘게 나왔다는 사실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정부의 본질적 역할은 정부가 계획하고 국회가 승인한 예산을 충실히 잘 집행하는 것인데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방기했다는 의미다. 정부가 지출하기로 계획한 행정서비스를 45.7조 원만큼 제공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 2011년 이후 연도별 불용액 및 불용률 규모 변화. 그래프=이상민(2024), 2023년 총수입, 총지출 마감 결과 분석

작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1.4%에 불과했다. 대표적인 저성장 국가인 일본 경제성장률은 물론 OECD 국가 평균 경제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한 결과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일본 경제성장률보다도 낮게 나온 것은 1980년, 1998년에 이어 2023년이 역대 세 번째였다. 1980년에는 '서울의 봄'으로 상징되는 쿠데타가 일어난 직후다. 1998년은 외환위기로 우리나라 경제권력조차 없었던 경제 위기다. 즉, 국가가 흔들리는 상황이 아니라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일본과 선진국 평균보다도 낮은 일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2023년에는 어떤 위기였을까? 한국은행 국민계정을 보면 2023년 경제 위기의 진원지는 정부 재정지출 감소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수출도 3분기부터는 살아났다. 수출이 아니라 내수가 2023년 경제위기의 근원이다. 그리고 내수도 민간소비 감소보다는 정부지출 감소가 내수악화의 근원이었다. 즉, 2023년 경제위기의 핵심은 정부가 지출을 줄여 내수가 안 좋아지고 내수가 악화해 세수입이 줄어들고, 세수입이 줄어드니 정부가 지출을 더 줄이는 악순환 고리다. 이러한 악순환 고리의 시작은 45.7조 원의 정부지출 감소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작년 불용액은 45.7조 원이 아니라 불과 11조 원이라고 설명하는 언론도 무척 많다. 어떤 언론은 작년 불용액을 45.7조 원이라고 설명해서 역대 극단적인 최고 수준이라고 하고 어떤 언론은 작년 불용액은 11조 원으로 그냥 정상적 범위 내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45.7조 원이 맞을까? 11조 원이 맞을까?

▲ 포털사이트 '2023년 예산 불용액' 기사 검색 갈무리.

기재부는 2023년 총세입 총세출 마감결과를 발표하는 보도자료에서 2023년 불용액은 45.7조 원이라고 하면서도 '사실상 불용'액은 11조 원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기획재정부 출입 기자들에게 부디 제목만이라도 '사실상 불용'액 11조 원이라고 언급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 결과 일부 언론에서는 불용액 45.7조 원을 제목에 쓰지 않고 '사실상 불용액' 11조 원을 쓰는 기사가 나왔다.

'사실상 불용액'이라는 개념은 이전에 존재하던 개념은 아니다. 기획재정부가 45.7조 원 불용액 중에서 자의적으로 일부 불용액을 삭제하고 만든 개념이다. 그런데 기재부가 자의적으로 삭제해서 만든 불용액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월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있다. ⓒ 연합뉴스

기재부는 지방정부에 교부세·교부금을 지급하지 않아 발생한 불용액 18.6조 원과 내부거래 16.4조 원을 제거한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내부거래는 경제적 실질측면을 제대로 반영하고자 삭제하는 것도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다. 다만, 전년도와 다른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서 전년도와 비교가능성이 떨어지는 문제는 있다. 다만 지방정부에 주어야 할 교부세·교부금을 지급하지 않고 불용을 발생시킨 것은 중앙정부의 불용보다 심각한 문제다. 중앙정부의 세수부족을 지방정부에 떠넘기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용이기 때문이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기재부의 자의적인 '사실상 불용'이라는 개념을 언론이 수용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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