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탁 “록 트로트, EDM 트로트… 일단 저스트 두 잇! 죽어라 연습했어요”
16일 월요일 밤 10시 방송
가수 영탁(본명 박영탁)의 뒷모습엔 웃음이 걸려있다. 언제라도 고개를 돌리면, 반달 같은 입매가 준비된 듯 상대를 맞는다. 극적인 행복도, 터질듯한 분노도, 가슴 저민 슬픔도, 환희에 찬 기쁨도, 그 앞에선 그다지 맥을 못춘다. 수만 가지 감정의 파고가 밀려들어도 그저 환하게 웃으면서 나직이 내뱉는 한마디. “별 희한한 일도 다 있네.”
2005년 영화 ‘가문의 위기’ OST로 가요계에 들어선 뒤 줄곧 한길을 내달렸다. 올해로 20년 차. 단 한 번도 쉰 적이 없지만, 대중의 입 한가득 오르내린 건 지난 2020년 TV조선 ‘미스터트롯’ 경연을 통해서다. 속이 뻥 뚫리는 ‘초음속 로켓 발성’ 가창력은 영탁을 대중에 각인시킨 전매특허 기본기. 가만히 있어도 살랑이는 듯한 리듬감, 살짝 주름진 눈매로 찡긋거리며 ‘박폭스(박영탁+폭스·여우처럼 매혹적이라는 뜻)’라는 애칭을 부른 특유의 표정, 복식호흡 필요없는 호탕한 웃음 등으로 ‘트롯쾌남’ 장르를 개척했다.
지치지 않는 ‘에너자이저’처럼 쉼 없이 노래해왔던 그가 데뷔 20년을 앞두고 TV조선을 통해 ‘단독 쇼’를 선보인다. 추석 연휴인 오는 16일 월요일 밤 10시 공개되는 ‘영탁쇼’다. 미스터트롯 선(善)에 오른 뒤 4년 만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단독 쇼를 열게 된 것이다. 얼마 전 경기도 파주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녹화 현장에서 영탁은 자신의 히트곡인 ‘폼 미쳤다’ ‘신사답게’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등을 비롯해 ‘미스터트롯’을 통해 많은 인기를 누린 ‘막걸리 한잔’ ‘찐이야’와 최근 발매한 미니 앨범 속 신곡 ‘사랑옥’ 등 4시간 넘게 26곡을 쉬지 않고 내달리며 600여 방청객을 들썩였다.
“TV조선에 오면, 늘 곁에 있던 곳에 다시 온 느낌이에요. 다만 TV에서 선보이는 단독 쇼라는 점에서 부담도 되고 설레기도 하면서 기쁜 마음도 공존하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저 자신을 보여드리는 것도 있지만, 추석 연휴를 맞아 안방 시청자분이 더 좋아하실 내용들로 구성했습니다.” 영탁은 이번 ‘영탁쇼’ 출연료 전액을 ‘사랑의 밥차’에 기부키로 했다. 연휴에 외로움을 느낄 소외된 이웃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어서다. ‘영탁쇼’ 녹화 현장에서 영탁과 나눈 대화를 그와 관련된 3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폼 미쳤다
“단독 무대를 꾸미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이라면, 예전에 비해 제 노래가 많이 생겼다는 점? 그를 바탕으로 꾸밀 수 있는 무대가 더 많아져 뿌듯합니다. 거의 16년 무명이었잖아요. 유명 가수분들 보컬 가이드도 오래 해봤고, 동료 선후배 가수들 노래도 여럿 만들었지만 역시 가수의 생명은 자기 노래더군요.”
지난 2022년 선보인 첫 정규 앨범 ‘MMM’과 지난해 발매한 정규 앨범 ‘FORM(폼)’, 최근 미니 앨범 ‘슈퍼슈퍼’까지 영탁의 노래엔 그 시대의 풍경이 담겨있다. ‘폼 미쳤다’(멋지다는 뜻)라는 Z세대 유행어를 과감히 제목으로 차용한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2018)’로 조금씩 사랑받기 시작하면서 저만의 캐릭터를 구축해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일상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이나 사회에서 발생하는 각종 아이러니 등을 유쾌하게 풀어내고자 했습니다. ‘찐이야’도 그런 관점에서 고른 노래죠. 경연 당시 제가 세 번째로 고를 수 있었는데, 그 곡이 살아남아있더라고요. 정말 ‘찐’으로 좋았지요(웃음).”
20년 가까이 음악인으로 살면서 단련한 그의 신조. 잘 만든 노래는 언젠간 불린다는 것이다. “대중 가요는 특히 시대를 대변하는 메시지를 담아내는 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유행어라는 것도 결국 그 당시에 가장 많이 쓰인 말이잖아요. 남녀노소 어느 세대든 큰 거부감이나 장벽 없이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 음악적인 방향성을 담아 완성도를 높이다 보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들어주시는 분들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영탁만의 장르를 세워나갔다. 포인트 안무를 짦은 영상이나 밈(온라인 유행 콘텐츠)으로 만드는 각종 ‘챌린지’에도 적극적이다. 최근 발매한 미니 앨범 ‘슈퍼슈퍼’ 역시 아이돌 그룹 영파씨를 비롯해 제로베이스원의 성한빈, 르세라핌 사쿠라, 오마이걸 효정, 유아에 이어 정동원도 영탁과 함께 댄스를 하며 ‘슈퍼슈퍼 챌린지’에 동참했다. “유쾌함의 비결이요? 책임감이라 생각해요. 저도 물론 힘든 부분도 있고, 지칠 때도 있지요. 하지만 그분들 에너지를 담아 사랑을 주셨고, 거의 온 대한민국이 알게끔 해주셨으니 다시 돌려드려야지요. 여러분들이 즐거우시면 ‘저스트 두 잇(just do it!)’이에요.” 16년을 기다렸다.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죽어라 최선을 다했다. 영탁의 ‘폼’이자 영탁의 ‘품’이었다.
♦언모만(언젠가 모두 만나게 됩니다)
언모만은 영탁이 팬들과 함께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언젠가 모두 만나게 된다’는 문장의 줄임말로, 영탁의 사진이나 영상 등엔 어김없이 해시태그(#)로 따라붙는다. “팬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좋은 곡, 좋은 노래로 보답하자는 다짐도 있지요.” 방송에서든 콘서트에서든 다시 만나자는 의미와, 잠깐의 공백기가 있더라도 곧 돌아온다는 등의 뜻을 지닌다. “인생 전반에 걸쳐 ‘잘살자’는 뜻이기도 해요. 스치는 만남 같더라도, 한 번의 인연도 소중하게 생각하자는 것이지요. 조심하려고 노력해도, 저도 사람인지라 실수를 할 수 있잖아요. 살다 보니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것 같은 사람과 말 그대로 언젠간 만나게 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더라고요.”
높아진 인기는 톡톡히 대가를 치르는 ‘유명세’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도 각종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다. (영탁은 지난 6월 막걸리 제조사 예천양조를 상대로 진행한 상품표지 사용금지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최종 승소한 바 있다.) 남들이 자신에게 상처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 스스로 먼저 자신을 낮추려 한다. 그를 단단히 하는 건 언제나 강조하는 ‘내 사람들’. 이 역시 해시태그로 자주 붙는 말이다. “나만의 사람이 아니라, 그 울타리 안에서 서로의 사람이 되어준다는 의미에요. 그들이 저를 필요로 할 때 제가 달려나갈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겁니다. 내가 팬을 필요로 할 때 그분들이 저한테 살아가는 에너지를 주시고, 또 저는 그분들께 제 무대로 보답을 드리는 것이지요.”
♦비상
영탁은 스물둘에 출전한 영남가요제에서 임재범의 ‘비상’을 불러 우승했다. 그때 받은 상금으로 가수가 되겠다고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다. 그 길로 가요계에 파란을 일으키며 ‘비상’할 줄 알았지만, 언제 벗어날지 모르는 무명의 늪은 길고도 깊었다. 그야말로 ‘인생이 비상’이었다. 버티는 게 살아남는 것이었고, 살기 위해 노래했다.
트로트 가수 이전에 R&B, 록, 발라드, 랩,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한 그였기에 EDM(전자음악), 국악, 브릿팝 등 앨범마다 여러 스타일을 녹여낸다. 새로운 분야에 과감히 뛰어드는 영탁에겐 자연스레 ‘도전’이란 글자가 따라다녔다. 연기자로도 변신해 ‘힘쎈 여자 강남순’에서 형사 역할을 맡기도 했다. ‘눈물의 여왕’ 오디션도 봤다.
“음악적인 면에서, 전 도전이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아요. 발라드로 데뷔했고, 만화영화 주제가까지 안 해본 장르 없이 늘 해오던 것이거든요. 연기는,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어요. ‘고생했어 영탁아’라고 스스로 등을 두드려 줄 수 있다면, 그걸로 다 이뤘다고 생각해요. 전 무엇을 끝내면 항상 그렇게 말하거든요. ‘됐고, 그다음!’이라고요. 힘든 기억을 오래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요.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이 되지요.”
그가 지금 꿈꾸는 ‘비상’은 어떨까. “더 올라가고 싶지 않은데…. 꼭 올라가야 되나요?(웃음)” 미스터트롯 시즌 1에 출연한 톱6 동료들과 자주 만날 때마다 다들 “우린 진짜 천운이다”라고 이야기한단다. “얼마 전 (장)민호 형이랑도 한참 이야기했어요. 마음껏 하고 싶은 음악 할 수 있다는 게, 통장 잔고 따져가며 끼니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냐고요.”
낮은 데시벨로 속삭이듯 말하던 그가 마이크를 잡으니 앰프가 터질 듯한 소리를 뽑아낸다. “팬분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주셨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많이 보여드리고, 더 열심히 뛰어야 하는 거예요. ‘노력이란 걸 하는구나, 기특하다’라고만 봐주셔도 충분해요. 젖은 날개로는 멀리 날 수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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