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감정을 분석한 커피는 어떤 맛일까?

인터뷰_이승정 미디어 아티스트

Q. 먼저 소속한 미디어 아트 랩 ‘얼스(3ARTH)’는 어떤 곳인가요?

얼스는 공학도 3명이 감정과 감각이라는 공통된 관심사 아래 뜻을 모아 결성해 공학과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 인간과 컴퓨터 간의 상호작용)를 기반으로 미디어 아트 작품을 만드는 팀입니다. 한마디로 ‘예술을 사랑하는 공학도의 모임’이죠.

Q. 공학도 출신 3명이 어떻게 만났나요?

3명 모두 학부는 다른 학교 출신입니다. 신기하게도 모두 공학 전공자임에도 평소 예술에 관심이 많아 대학원에 입학해서 예술을 공부하고 싶어했죠. 마침 한양대 대학원에 ‘아트’ 테크놀로지(현 인텔리전스 컴퓨팅) 학과가 있기에 입학했는데, 거기서 셋이 만나게 됐어요.

Q. 미디어 아트 작품을 만드는 팀은 어떤 계기로 결성하게 됐나요?

막상 수업을 들어보니 지도교수님은 HCI 전공이었어요. 예술과는 거리가 좀 있었던 거죠. 셋이서 공대 대학원 과제는 하긴 했지만, ‘예술 작업은 뭘 해볼까’라며 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서 마음 한편에는 예술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었어요.

졸업하기 전에 뭐라도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졸업을 한 학기 앞둔 2019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 콘텐츠 임팩트 교육지원 사업에 미디어 아트 작품을 함께 만들게 됐죠. 그것이 바로 얼스의 대표작 ‘탠저블 이모션(Tangible Emotion)’의 태동으로, 일종의 프로토타입에 해당하는 작품인 셈이죠.

얼스의 대표작 <탠저블 이모션>의 프로토타입

Q. 팀명 얼스(3ARTH)에 숫자 3이 의미하는 게 작가 3명을 뜻하는군요.

맞습니다. 콘진원 지원사업에 제출할 작품을 고민하면서 매일 셋이서 밤샘을 하곤 했거든요. 그때 저희 셋을 지켜보던 지도교수님이 ‘얼간이들’ 같다고 놀려대셨어요. 거기서 힌트를 얻어서 ‘얼’간이에 ‘들’에 해당하는 복수형 접미사(s)를 붙여 발음해보니 지구(Earth)를 뜻하는 발음과 비슷해서 ‘얼스(3ARTH)’라는 팀명을 정하게 됐죠.

Q. 팀이 해체될 뻔한 위기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2020년, 넥슨 컴퓨터박물관에서 개최하는 가상현실(VR) 콘텐츠 공모전에서 <탠저블 이모션> 버전 1로 대상을 받았어요. 뭔가 예술 작가로서 한줄기 희망이 보였었죠. 하지만 코로나19 시국이 길어지면서 생계가 걸려 있다 보니 셋이 각자 밥벌이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는 뉴미디어 콘텐츠 제작사 아토드(ATOD)에 들어가 인터랙티브 콘텐츠 제작과 하드웨어 설계 일을 했어요. 이때 여러 현장에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쌓은 노하우를 되살려 얼스 작품에 응용한 것이 큰 힘이 됐죠.

Q. 어떻게 다시 재결성하게 됐나요?

대학원에서 우연히 연극영화과 수업을 듣다가 담당 교수님과 친해졌어요. 그 교수님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 아트테크놀로지 융복합지원사업을 맡고 계셨고, 거기에 기술 프로젝트 매니저로 합류해 여러 작가와 만날 기회가 생긴 거죠. 그 경험을 토대로 이후 여러 사업에 관여해서 수혜도 받고, 관리자 역할도 하면서 예술계 인사들과 교류하다 보니 예술지원사업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죠. 예술에 뜻만 있다면 창작 활동을 지원받을 수 있겠다는 새로운 희망을 보면서 ‘다시 해보자’라는 다짐을 하게 됐죠.

Q. 얼스의 대표작 <탠저블 이모션> 작품을 이해하기 쉽게 소개한다면.

말 그대로 ‘만질 수 있는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참여 관람객이 VR 기기와 헤드폰을 끼고 영상을 보며 느끼는 감정을 VR 기기에 뇌파를 파악하는 장치가 이를 감지해 감정 데이터로 변환해요. 다시 말해 참여 관람객의 생체 데이터를 분석해 감정을 실시간으로 도출, 기록해요. 이후 감정은 이를 감각으로 변환해주는 알고리즘에 따라 ‘빛’과 ‘소리’ 그리고 ‘미각’으로 변환되죠.

미각(gustatory)을 추가한 탠저블 이모션 시리즈의 최종 버전인 <탠저블 이모션: Visual, Auditory, and Gustatory> 작품을 지난해 말 전시했어요. 시각과 청각은 키네틱 LED 바 6개와 앰비언트 사운드로 구성했고, 미각은 4개의 커피 원두를 조합하는 커피 블렌딩 머신으로 표현했어요.

특히 미각을 표현하고자 맛이 다른 4가지 원두를 설정했고, 감정을 변환한 값에 맞게 블렌딩을 해요. 블렌딩한 원두는 참여 관람객의 감정을 담아 쓴맛, 단맛, 신맛, 균형 잡힌 맛을 통해 구성되죠.

<탠저블 이모션: Visual, Auditory, and Gustatory> 작품

Q. ‘감정 분석과 맞춤형 커피 블렌딩’이라는 발상 자체가 굉장히 독특한데요.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나요.

운 좋게도 2020년 말,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프랑스 낭트대학교에 연구장학생으로 가서 경도인지장애 관련 가상현실 콘텐츠를 공부하고 왔어요. 피실험자가 일상생활 환경을 적용한 가상현실 장치를 착용하고 생활하면 이를 지속적으로 측정해 생리학적 데이터를 뽑아내고 인공지능으로 분석하게 되는 거죠.

이 과정에서 여러 감각적 요소들이 더해져야 더욱 정확한 정량적 데이터가 나오겠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뇌파, 심박수, 땀 분비량, 동공의 움직임 등 센서들을 연구하면서 자연스럽게 감정과 감각의 연결 고리에 관심이 갔죠. 측정된 감정과 다양한 감각들 사이에 분명히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고 이를 정량적으로 측정해 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다시 말해 일반인의 감정을 어떻게 수치화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죠. 그 결과물로 감각과 감정 사이의 상관관계를 문헌연구를 통해서 표로 정리해 놓을 수 있었죠.

대학원 과정에서는 HCI를 주로 배웠는데, 새로운 기술들을 사용자한테 얼마나 적합한지 실험하는 분야죠. 이를테면 정량적 데이터를 측정해 사용자의 상태를 점검하는 겁니다. 원래 배우고 싶었던 예술 분야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HCI가 작품에 중요한 기술로써 활용된 셈이죠.

Q. <탠저블 이모션>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예술적 본질이 어디에 있느냐? 심지어 왜 이런 작업을 하느냐 등 예술 관련 질문을 주위로부터 많이 받았어요. 작품 활동이 던지는 예술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서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관련 영상을 올렸어요.

예술을 통해 동시대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다들 유튜브나 SNS 등 타인의 삶을 엿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요. 저는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많은 이들이 자신이 어딘가에 투영되는 것을 좋아해요. 예컨대 MBTI(성격유형검사)가 유행하는 것처럼요. 현대사회의 아픔이 아닐까 싶어요.

2023년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탠저블 이모션: Reflection>이라는 작품으로 단체전에 참가했어요. 기존 작품에서 뇌파와 가상현실이라는 딱딱하고 어려운 매체(기술)를 아예 빼고 전시를 했어요. 관람객들이 반응이 정말 뜨거웠어요. 자신의 감정을 반영한 커피를 맛보면서 관람객끼리 서로 맛에 대해 얘기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어요. 위로받았다는 피드백도 SNS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많이 받았고요.

DDP에서 전시한 <탠저블 이모션: Reflection> 작품

Q. ‘감정 분석과 맞춤형 커피 블렌딩’이라는 콘셉트를 담은 작품이 과연 사업화나 상품화가 가능할지 의구심이 드는데요. 이를 바라보는 외부 전문가들의 평가는 어떤가요.

정말 원했지만 전문가들의 평가는 없었어요. 다만, DDP에서 한 달간 전시를 운영했는데, 누적 관객이 1만 명이 좀 넘었어요. 제 작품이 외국인 커뮤니티에도 올라갔더라고요. 그때 사업 제안도 많이 들어왔어요. 카페에 도입하면 충분히 사업성이 있어 보인다는 반응이었죠. 하지만 비용 부문이 맞지 않아서 제안은 거절했어요.

Q. 한국에서 미디어 아트가 과연 지속 가능한 사업모델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제일 고민이 많은 부분입니다. 사업모델을 논하기 앞서서 한국에서 미디어아트라는 장르에 대한 정의조차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고 있어요. 융복합 예술과 다원예술, 그리고 미디어 아트 세 가지를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고 있죠. 실제로 각종 지원사업도 마찬가지이고요. 미디어 아트는 매체(기술) 자체를 활용하는 예술 작품을 뜻한다는 측면에서 다른 장르와 차별되죠.

미디어 아트는 구매보다는 사람들이 작품을 향유하는 게 중요해요. 직접 보고 즐기는 영역이죠. 그런 측면에서 미디어 아트라는 장르는 전시장이나 공연장에서 일반인에게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최근 들어 많은 젊은이들이 영화관에서 전시장이나 팝업스토어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어요. 그런 환경이 유지된다면, 미디어 아트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죠. 그뿐만 아니라 요새 매체를 활용한 다양한 기술 용역을 요청하는 기업들의 사례가 쏟아지고 있는데요. 결국 이런 쪽으로 사업모델을 가져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어요.

Q. 지난 10월 말,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센터)에서 예술인과 예술기업들을 위한 예술 종합지원플랫폼 ‘아트코리아랩(Arts Korea Lab)’을 개관했고, 이곳의 공유오피스 프로젝트팀에 선정, 입주했는데요. 신청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DDP 전시가 아트코리아랩 지원의 중요한 계기가 됐죠. 감정을 측정, 분석하는 기술을 토대로 이를 예술 작품으로 표현한다면, 충분히 사업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됐죠. 굳이 작품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공간 내에 키오스크 등을 통해서라도 상품화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도 엿볼 수 있었고요. 아트코리아랩 입주 6개월 동안에 작품 완성도도 높이고, 사업모델을 구체화하는 데 주력할 생각입니다.

Q. 센터 선정 과정에서 “예술성과 상업성, 그리고 MZ 세대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평가가 있었는데요. 상업성 측면에서 주된 타깃 고객은 누구인가요.

작품의 타깃층을 깊이 고민해보진 않았지만 DDP 전시 관람객을 통해서 가늠해 보자면, 먼저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이 떠오르네요. 그다음으로는 많은 MZ 세대들이 자신을 특정화, 규정화하는 것을 좋아하므로 충분히 잠재 고객이 될 것 같아요. ‘소확행’이라는 말처럼, 작은 행복을 느끼고 싶어하는 일반 직장인도 염두에 두고 있고요.

Q. 실제 아트코리아랩에 입주해 보니 어떤가요.

일단 체계를 갖춘 전문 컨설팅을 제공한다는 점이 제일 좋았어요. 예술 작가나 예술기업에게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었어요. 그 부분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변리사도 만나서 논의도 하고 사업의 방향성을 잡아주는 컨설팅을 받았는데, 얼스에게는 딱 필요한 시점이었죠.

Q. 얼스의 중장기 계획이나 비전이 궁금합니다.

탠저블 이모션 최종 버전의 작품을 선보였을 때부터 작품의 예술적 본질과 작업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얼스 구성원 모두의 예술적 담론을 작품에 오롯이 담아내는 게 목표입니다. 3명의 예술적 담론을 결합해 작품 <탠저블 이모션> 시리즈를 업데이트할 수도 있고,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내놓을 수도 있죠.

얼스는 매체를 통해서 상업화를 진행할 때 기존에 선보인 개인 맞춤형 커피뿐만 아니라 조금 더 확장된 버전을 궁리하고 있어요. 여러 매체를 결합해서 얼스만의 색깔을 담은 상업적 작품들을 내놓고 싶어요. 그와 동시에 예술적 본질을 담은 작품 또한 잘 만들어내고 싶은 열망도 있습니다.

Q. 어찌 보면 짧은 기간 동안 작가로서 승승장구한 것처럼 보이는데요. 요즘 작가님의 머릿속을 맴도는 가장 큰 고민은.

가장 큰 고민은 예술적 담론, 예술의 본질에 대한 것입니다. 마치 모래성 위에 성을 짓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어요. 올해 초부터 미술사를 제대로 공부하면서 예술의 본질과 방향성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고민 중입니다. 작가로서 예술적 본질을 먼저 정립하고 작품을 만들어야 했지만, 부끄럽게도 작품을 만들고 발표하는 데만 매진하면서 정신없이 흘러가다 보니 이제야 못했던 부분들을 하나씩 채워나가려고 해요.

예술 교육을 받지 않은 공대 출신이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어요. 쉽지는 않지만, 예술 작가로서 성장하려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봐요. 그런 시간을 통해서 나 자신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고요.

Q. 미디어아트를 포함해 예술 프로젝트 팀을 시작하려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매체(기술)의 신구(新舊)를 따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유행하는 매체를 무작정 좇아가면 안 된다고 봐요. 그보다는 본인의 생각이나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먼저 찾고, 이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매체를 찾으면 좋겠어요. 그런 면에서 저는 반대로 했기에 후배들은 더더욱 저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랍니다.

실제로 강연을 다녀보면 무슨 기술이나 도구를 썼냐고 대뜸 물어보는 후배들이 있어요. 이는 위험한 접근 방식입니다. 기술은 계속 바뀌기 마련이니까요. 사고의 확장이나 예술의 본질, 메시지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먼저 했으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커리어’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매 순간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