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당 분양가 2억원에 나왔던 청담동 오피스텔 뜻밖의 근황

부동산 시장 브릿지론 뇌관 비상

전국이 규제지역에서 해제되면서 부동산 시장이 조금씩 회복세로 돌아서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파트 신축 시장은 예외다. 무섭게 얼어붙고 있다. 최근 건설업계 동향을 알아봤다.

◇대출 갚기 어려워져 땅 공매

본문 내용과 관련 없음 /더비비드

작년 화제가 됐단 사업 현장이 줄줄이 좌초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루시아청담514 더테라스’ 사업이 대표적이다. 이 사업장은 지난해 평(3.3㎡)당 분양가 2억원대로 유명해진 프로젝트다. 그런데 최근 해당 부지가 공매로 나왔다. 사업을 포기하고 땅을 내놓은 것이다. 이 공매마저도 세 번 유찰돼 2263억원이던 최저 입찰액이 1650억원으로 낮아진 채 진행 중이다.

이 땅이 공매로 나온 것은 원래 사업의 시행사가 부지를 매입하기 위해 1520억원을 브리지론(초기 사업 대출금)으로 조달했다가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브리지론은 시행사가 토지 매입비와 초기 운영비를 조달하기 위해 빌리는 돈으로 만기는 대부분 1~2년이다. 사업 인허가를 받기 전에 투입되며, 주로 증권사·저축은행·캐피털사 등 제2금융권을 통한다. 이후 사업 인허가를 받아 본격적으로 사업이 시작되면, 은행 등에서 본PF(프로젝트 파이낸싱)를 받게 되는데, 루시아청담의 시행사는 이 돈으로 브리지론을 상환할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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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부동산 시장 불황과 건축비 급등 때문에 본사업에 들어가지 못했고, 결국 본PF 대출도 얻지 못해 땅이 공매로 나온 것이다. 공매가 한 번 더 유찰되면 최저 입찰액이 1500억원 밑으로 떨어져, 브리지론에 참여했던 금융회사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땅을 팔아도 대출금액 1520억원을 밑돌아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 사례 뿐 아니다. 업계에선 브리지론발 부동산 대출 뇌관이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본사업에 들어가지 못하고, 만기만 연장하는 브리지론들이 많다”며 “부실이 언제 터질지 몰라 조마조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급기야 외국에서도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한국의 PF 대출은 자금 구조가 취약하다”고 경고했다.

◇강남 등 요지 사업장 줄줄이 좌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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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방배동 ‘클럽54 골프연습장’ 부지는 3월 31일부터 공매가 시작돼 7번 유찰 끝에야 새로운 주인을 찾았다. 낙찰가는 1497억원으로 최초 감정평가액(2819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입지가 좋고 면적도 넓어서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시장 기대보다 훨씬 낮은 금액에 팔린 것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그만큼 부동산 시장의 공포 심리가 강하다는 뜻”이라고 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 주차장 부지도 고급 주택지 용도로 지난 2월 말부터 6차례 공매에 부쳐졌지만 아직 주인을 못 찾았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선 30가구 규모 아파트가 공사 중인 상태로 토지와 함께 공매로 나왔다.

이렇게 줄줄이 공매로 나오는 것은 부동산 사업 여건이 급속도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건축비 상승과 고금리로 인한 금융 비용 증가로 아파트·상가 등 부동산 개발 사업의 수익성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결국 땅을 사놓은 시행사들이 더 큰 손실을 피하기 위해 본사업 착수를 망설이면서 시기를 놓쳐 땅을 내놓는 일이 늘고 있다. 현재 브리지론 이자율은 10%를 넘는다. 만기 연장으로 버터기에 한계가 있다.

금융계 한 관계자는 “26개 증권사 브리지론 잔액 9조1000억원 가운데 90%가 올해 안에 만기가 돌아온다”며 “한계에 다다르면 자칫 큰 위기가 올 수 있어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부동산 업계 한 관계자는 “약 1년 전 부동산 호황 끝물에 받은 브리지론들의 만기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면서 공매로 나오는 물건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순우 객원 에디터, 박유연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