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드는 마음으로 나에게 다정하기 - 죽공예와 목공 작업자 '밤구름' 인터뷰

양평에 거주하며 대나무 공예와 목공을 하는 작업자 밤구름. 그는 아름다우면서도 쓰임이 있는 물건을 직접 만들고, 오랫동안 텃밭을 가꾸며 거기서 난 작물로 요리를 합니다. 자급자족하는 삶, 그것이 스스로를 다정하게 대하는 일이라면서요.

그런 작업자 밤구름 님이 서촌 ‘무서록’에서 자신의 작업과 일상을 전시라는 매개를 통해 선보이고 있습니다. 브릭스 매거진은 〈밤구름 죽물展 : 만드는 마음〉에서 그를 만나 만드는 삶, 만드는 마음에 관해 들어보았습니다.
무서록에서 만난 작업자 밤구름

Q. 대나무라는 건 어떤 성격의 소재인가요?

대나무는 나무와 참 많이 닮았지만 풀인 식물이에요. 한 달여 만에 평생 자랄 키와 굵기를 다 키워내는 놀라운 식물이지요. 하루에 20cm씩 크고, 3년 정도면 아주 단단하고 억센 성질을 갖게 돼요. 대나무밭에서 막 베어온 대나무는 생명력이 넘쳐요. 억세고 거칠고, 또 아주 푸릇하고. 기름을 빼거나 막을 벗기고, 자르고 쪼개는 과정을 통해 유연한 재료가 되는데 이 댓살들이 엮이면 또 단단한 바구니가 되어요.

저는 이 과정이 정말 흥미로웠어요. 손에 익으면서부터 약간 편안한 작업이 되기도 했고, 가만 작업을 하다 보면 명상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대나무를 짜고 엮으면서 만들어지는 형태가 실생활에서 무언가를 담거나 간직하는 쓰임이 된다는 것도 저한테는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밤구름 죽물展 : 만드는 마음〉에서

Q. 처음 대나무로 무언가를 만들 때의 용도와 생각하셨던 형태는 무엇인가요?

제가 양평에 살면서 텃밭을 오랫동안 했는데, 텃밭에서 키운 작물들을 수확해서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아두는 게 늘 너무 아쉬웠어요. 작물을 잘 담고 소중하게 보관하고 싶었고, 바구니라는 물건에 대한 호감이 있어서 직접 만들어 보게 된 거예요.

처음 만든 건 싸리바구니였어요. 동네에 싸리바구니를 만드는 할아버지가 계셔서 찾아가서 배웠어요. 그분이 말을 못 듣고 못 하시는 분이라 손동작을 보면서 따라 했어요. 안타깝게 할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셔서 더 배우지 못했는데, 제가 목공 수업을 하는 기관에 대나무 공예 수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강을 하게 됐어요.

기본 수업을 듣고 대나무라는 물성이 가진 힘과 빛깔이 너무 좋아서 몰입하게 되었어요. 이후 독학으로 쪼개고 엮고, 자료도 찾아 공부하고 그랬지요. 처음 만든 바구니도 여기 전시되어 있어요.

〈밤구름 죽물展 : 만드는 마음〉에서

Q. 대나무는 어디서 구해 오시나요?

대나무는 담양에 있는 대밭에서 구해와요. 몇만 평 되는 아주 커다란 대밭인데, 주인 분께 허락을 받고 제가 직접 대나무를 고르고 벤 다음 제가 고른 만큼 값을 치르고 차에 싣고 와요. 작업실에 도착하면 댓살을 가공하는 시간이 대나무 바구니를 만드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이 걸려요. 그게 더 중요한 작업이기도 하고요.

밤구름 제공

Q. 주로 어떤 작품을 만드시나요?

실용성을 기반으로 하는 바구니를 주로 만들어요. 잘 쓰일 수 있는 튼튼함에 아름다움을 더하자고 항상 생각해요.

밤구름 제공

Q. ‘만드는 마음’이라는 이번 전시 주제에 맞춰 따로 만드신 작품도 있나요?

전시를 위해 거의 뭘 하지는 않았어요. 계속해 왔던 것들이 제가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바구니이고, 만들다 보면 늘 여기서 조금 더 크기를 바꿔볼까 아니면 소재를 좀 더 추가해 볼까, 그런 식으로 새롭게 도전하기도 해요. 그렇게 새로 만들게 된 게 전시에도 가져온 함과 양손바구니들이에요. 전시 주제는 제가 이전에 글로 썼던 이야기에서 가져왔고요.

이곳 공간 무서록의 대표님이 제가 만드는 것과 제 이야기를 발견해 주셨어요. 이 공간도 쓰던 작업대를 가져와서 평소 모습대로 채우면 좋겠다고 하셨고요. 저희 집을 통째로 옮겨오고 싶어 하실 정도로, 바구니를 전시하기 위한 전시가 아니라 그냥 구름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살고 있다는 걸 전해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런 제안과 마음에 저도 동하게 된 거지요.

〈밤구름 죽물展 : 만드는 마음〉에서

Q. 대나무 공예 외에 목공 일도 하시지요?

네, 대나무를 접하기 전에 목공을 먼저 해 왔고, 지금도 목공을 하고는 있지만 대나무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어요. 창고나 구조물, 비 가림 시설, 생활 가구를 만들기도 하고 인테리어도 하는데 주로 제 주변 분들이 필요하다고 요청해 오는 것들이에요.

발달장애인 친구들이 다니는 대안학교에서 깎는 작업으로 수업도 하고 있어요. 저 작업실 벽에 세워둔 깎아 만든 의자가 아이들과 함께한 작업이에요.

작업자 밤구름의 실제 작업실 | 밤구름 제공

Q. 그런데 농사도 지으시고, 그 작물로 먹을거리를 만들고 계시네요.

양평으로 이사를 한 후 농부분들이랑 이웃이 되면서 배웠어요. 모종 남았는데 심어볼래, 이거 씨 좀 뿌려봐라, 그렇게 직접 심기도 하고 그분들이 뭔가 할 때 옆에서 거들기도 하고. 그래도 제가 지은 것보다 그분들에게 얻어먹는 게 더 많지요.

그래도 작게나마 농사를 짓다 보니 수확한 것들을 먹어야 하는데, 이걸 가장 잘 먹을 방법을 계속 고민하다 보니 요리도 연구하게 됐어요.

밤구름 제공

Q. 자급하는 삶에 가까운 것 같아요.

몇 가지 공산품을 제외하고는 그런 것 같아요. 난방 에너지와 먹을거리를 구하고 가꾸는 것이 중요한 일이고 좋아하는 일상입니다. 처음부터 자급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거나 선언을 한 건 아니었고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어요. 4대강 개발 반대 투쟁에 참여하며 두물머리와 인연을 맺었는데요, 투쟁이 끝나고 농부들이 농장에 필요한 시설물들을 같이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해서 목공 일을 하는 친구들을 모아 평상, 생태 화장실, 체험관 같은 것들을 만들었어요.

그러면서 몇 달 간 머무르는 동안 여기에서 이분들과 이웃으로 사는 것도 좋겠다 싶었어요. 마침 서울에서 살던 집도 계약 기간이 끝날 때여서 진짜 큰 계획 없이 이주를 하게 됐던 거예요.

밤구름 제공

Q. 어른이 되고 난 이후의 삶은 항상 이렇게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이었나요?

아마도 그랬던 것 같아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공연, 축제 기획 일을 했었는데, 뭔가 물성으로 만드는 걸 경험하고 나서 스스로 그런 걸 만드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하지만 그 역시 큰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에요. 그냥 저의 성향이 그런 걸 되게 좋아하는 거지요. 유치원 때는 종이접기 선생님이 꿈이었어요. 초등학교 때는 만들기 선생님이 꿈이었고요. 뭔가 손으로 만드는 걸 되게 좋아하던 어린이였어요.

밤구름 제공

Q. 만드는 삶 안에서 용도와 아름다움은 어떻게 조화되어야 하나요?

공예라는 게 예술과 제품의 경계에 있는 분야여서 가격을 정하는 게 너무 어려워요. 다만 저는 쓰임이 있는 물건을 만드는 걸 좋아해요. 아직은 어떤 오브제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지 않았고, 이후에는 바뀔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지금 내가 살면서 필요한 것들을 만들고 있어요. 시작부터 지금까지 실용성을 생각해 왔던 거예요. 실용성을 가지려면 일단은 튼튼해야 하고, 쓰임이 있어야 하고, 그걸 또 아름답게 만들어야 하는 목표도 있지요.

〈밤구름 죽물展 : 만드는 마음〉에서

어떤 걸 어떻게 만들고 싶냐 할 때는 단단함과 아름다움 두 가지를 생각해요. 얼마 전에 목공 작업하는 분이 쓰신 책에서 ‘내가 만들고 표현하고 싶은 방향이 사실은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인 것 같다’는 구절을 봤어요. 거기에 울림을 받았어요. 그게 내가 살고 싶은 방향이고 내가 가꾸고 싶은 나의 모양이기도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직접 만든다는 것, 짓고, 키운다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싶어요.

거창하지 않게 오늘의 나와 다정하게 지내는 마음. 무언가를 만들고 짓고 함께 살아간다는 건 나의 일상을 단단하게 가꾸는 일 같아요. 그러려면 사실 되게 부지런해야 하거든요. 화목난로가 주 난방이라 2주에 한 번 나무하러 가서 도끼와 체인톱으로 자르고 쪼개고 말려서 땔감을 만들어요. 텃밭을 가꾸고 그걸로 밥을 해 먹는 모습도 사진에 담으면 정말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손이 많이 가고 바빠요. 하루 종일 움직여야 해요.

저는 그런 일상이 너무 좋아요. 텃밭에서 땀 흘리면서 뭔가를 심고 풀을 뽑고 하는 시간도 좋고, 산에서 나무를 하면서 움직이는 시간도 좋고, 나무가 주는 온기로 채우는 공간도 너무 좋아요. 나의 공간과 일상을 가꾸는 게 저한테는 살아가는 방법이자 제가 좋아하는 모습, 제가 행복해하는 모습인 것이지요.

물론 모두가 그렇게 살 수는 없겠지요. 다양한 삶의 모습 중에 이렇게 사는 모습도 있다, 그냥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그런 일상을 보내는 게 저를 아끼고 저와 다정하게 지내는 방법이라고요.

Q. 전시를 마치고 나면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나요?

일단은 대나무 벌채를 하러 가야 해요. 이즈음 벌채를 해야 하는데 전시 때문에 못 가고 있어요. 저에게 대나무는 빠져들수록 깊고 넓어지는 세계예요. 대나무를 더 많이 좋아하고, 대나무와 더 많이 함께하고 싶어요.

그러고는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일상을 꾸준히 살아가겠지요. 제가 늘 계획을 세우기는 하지만 1년 치 계획을 해본 적은 없어요. 오늘을 되게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 큰 계획이나 바라는 미래의 모습이 없어요.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 열심히 하고, 밤에 푹 잘 자고, 그렇게 살아가겠지요.


〈밤구름 죽물展 : 만드는 마음〉

2024. 12. 3 - 12. 22 13:00~19:00
(월 휴관 / 전시 마지막일은 18:00 마감)
장소 : 종로구 자하문로 6길 12-16 2F, 공간 무서록

인터뷰·사진 | 이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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