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강남에 ‘투명 현관문’ 고집한 건축가 "결국 일냈다"

14년 전 강남에 ‘투명 현관문’ 아파트 고집한 건축가…결국 일냈다

강남 보금자리 주택지구 3단지
전 세대 현관문 통유리 설계
야마모토 리켄 판교 아파트

출처 : 주택저널

지난 2013년 현관문을 통유리로 만들어 밖에서도 집안이 훤히 보이는 아파트가 등장해서 화제였다. 이는 강남 보금자리 주택지구 3단지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서울 강남구 자곡동 강남 보금자리 주택지구에 지은 임대아파트다.

처음 디자인이 공개됐을 때부터 화제를 모으고 다니던 강남 임대 아파트를 설계한 인물이 최근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일본의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이다.

야마모토 리켄이 설계한 강남 보금자리 주택 지구 3단지(이하 LH 3단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저소득층을 위해 지은 임대주택이다. LH 3단지는 영구임대주택 192세대와 국민임대주택 873세대, 총 1,065세대가 거주할 수 있는 아파트로 알려졌다.

출처 : 뉴스 1

지난 2010년 해당 아파트 국토교통부가 특별건축구역으로 선정하며 그린벨트를 해제해 임대주택으로 개발한 구역으로 확인됐다. 당시 LH3단지가 특별건축구역에 선정됐기 때문에 아름다운 디자인의 아파트로 지어져야 했다. 이를 위해 LH는 국제 현상공모를 진행해 야마모토 리켄의 설계를 당선작으로 꼽았다.

리켄은 함께 모여 사는 사람들이 공간을 공유해야 한다는 ‘지역사회권’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주장한 건축가로, LH 3단지 설계에도 그 개념을 적용했다. 이는 LH3단지의 투명 현관문을 만드는 계기가 되며 사랑방의 역할을 하는 거실과 마당의 역할을 하는 복도 사이의 문을 통유리로 만들겠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LH 3단지의 경우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이기 때문에 주민 간 소통이 더욱 필요하다는 주장을 한 야마모토 리켄은 “혼자 사는 노인이나 장애인 등의 위급상황 발생 시 이웃들이 쉽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투명 현관문으로 건축을 진행할 경우 노인 소외 현상 등의 사회 문제를 본인이 주장한 지역사회권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출처 : MBC

다만, 그의 주장은 당시 시대상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입주를 진행하며 주민들이 투명 현관문에 대한 불만을 제기한 것이다. 특히 일부 주민들은 “동물원 원숭이도 아니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집안들 다 볼 수 있게 만들면 어떡하냐?”, “임대 아파트라고 이렇게 막 지어도 되는 것이냐?” 등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입주민들뿐 아니라 온라인상에서 해당 아파트의 모습이 화제가 되며 “심하다”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LH 역시 이런 파장을 예상하고 건설 단계에서 리켄에 디자인 수정을 요구했으나, 야마모토 리켄은 뚝심 있게 기존 디자인을 밀고 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당시 해당 아파트의 설계가 공모를 통한 설계였기 때문에 LH에서 임의로 이를 수정할 수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LH는 입주가 시작된 지난 2013년 입주민들에게 현관문을 가릴 수 있는 블라인드를 무상으로 제공하면서 사생활 노출에 대한 문제를 일단락했다. 다만, 통유리로 된 현관문의 특성상 단열에 취약해 대부분의 주민이 안쪽 현관문에 에어캡(뽁뽁이)을 붙이고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출처 : 하얏트 재단

이어 그가 국내에 설계한 두 번째 건물로 알려진 판교의 타운하우스 ‘월든힐스 2단지’도 논란이 된 바 있다. 월든힐스 2단지 역시 앞서 밝힌 LH 3단지와 비슷하게 사방의 벽을 통유리로 처리한(투명 현관홀) 것이 거부감을 일으켰고 분양 초기 미분양을 기록하며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만 입주 10여 년이 지난 현재 월든힐스 2단지의 주민들이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에게 감사 인사가 담긴 이메일을 보내고 그를 초청해 작은 파티를 열어 주는 등 주거 환경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주민들이 야마모토 리켄의 설계 의도와 비슷하게 돈독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소통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자신이 설계한 두 건물에 대해 “판교의 월든힐스 2단지와 강남의 LH 3단지는 지역사회권을 염두에 두고 설계했다”라고 밝히며 “이웃과 접촉할 기회를 최대한 늘리고 사생활이 필요한 곳은 엄밀하게 구분해 놨지만, 항상 부정적인 면만 부각됐다”라고 아쉬움을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런 점을 건축계에서는 면밀하게 주목하고 있던 것으로 판단된다.

출처 : 하얏트 재단

지난 3월 미국 하얏트 재단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경계를 허물어 건축을 통해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공헌했다”며 야마모토 리켄의 프리츠커상 수상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츠커상 심사 위원장인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는 그의 건축을 두고 “미래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상호작용을 할 기회를 늘려야 한다”고 짚으며 “야마모토는 일상의 품격을 높여주는 건축가로, 그의 손을 거치면 평범함이 특별해진다”라고 평가하며 그의 건축 철학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과거 한국의 정서와 맞지 않았던 건축 설계를 보이며 많은 비판을 받았던 그는 10여 년이 지나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당당히 손에 쥐며 건축계의 명망 있는 인물로 거듭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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