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시조, 유리왕
[고구려사 명장면-157] 유리왕은 주몽왕의 혈연상 아들이 아니라 의제적인 부자(父子) 관계로 추정된다. 여기서 의제적인 부자 관계라는 게 유리왕이 주몽왕의 양자쯤 된다는 뜻이 아니다. 전혀 무관한, 아마도 서로 만난 적도 없고, 상대방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했을 두 왕을 혈연적인 부자 관계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두 왕의 계보를 다시 만든 시기는 주몽왕이나 유리왕 당시가 아니라 그 뒤 시기일 터인데, 구체적으로 언제라고 답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렇게 왕계를 구성한 데에는 아마도 시조로서 주몽왕의 정통성을 유리왕에게 계승시키려는 지극히 정치적인 의도가 깔려 있을 것이다. 물론 이때 왕 계보에 걸맞게 유리왕 전승도 다시 재구성했을 것이다.
이렇게 주몽왕과 유리왕 왕계를 서로 다른 계통으로 보는 견해는 필자만이 아니라 진즉에 있어 왔다. 이른바 유리왕을 또 다른 왕실의 시조로 보는 견해다. 고구려에서 첫 왕실이 바뀌고 새 왕실이 등장했다는 기록은 중국 역사서 '삼국지' 고구려전에 보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본디 다섯 족이 있으니, 소노부(消奴部), 절노부(絶奴部), 순노부(順奴部), 관노부(灌奴部), 계루부(桂婁部)가 그것이다. 본래는 소노부에서 왕(王)이 되었으나 점점 미약해져서 지금은 계루부가 왕이 되었다.
즉, 고구려 왕은 본래 소노부에서 배출했는데, 어느 시기엔가 계루부가 왕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 '삼국지' 고구려전 기록은 동천왕대 조위(曹魏) 유주자사 관구검(?丘儉)이 고구려를 원정할 때에 얻은 정보를 기초로 작성해 대략 3세기 중엽의 사정을 전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3세기 중엽 이전 어느 시기엔가 소노부에서 계루부로 왕실이 바뀌었던 것이다.
그러면 그 왕실 교대의 시기는 언제였을까? 여러 견해가 있지만 대체로 두 견해로 모이고 있다. 첫째는 주몽왕의 등장으로 소노부에서 계루부로 왕실이 바뀌었다고 보는 견해이며, 둘째는 태조왕의 등장을 계루부로의 왕실 교체로 보는 견해이다.
그런데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기록만으로는 주몽 이후 왕실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는 왕계상의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지 않다. '고구려본기' 기록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면, 소노부에서 계루부로 왕실이 교대된 때는 주몽왕이 등장하기 이전으로 볼 수밖에 없다. 즉, 주몽왕은 계루부 왕실의 시조이며 그 이후의 왕계는 모두 계루부 왕계이다. 앞서 언급한 첫 번째 견해이다.
다만 '고구려본기'에 보이는 계보상에서 모본왕에서 태조대왕으로 이어지는 왕위 계승 과정에 미심쩍은 면이 많다. 하지만 첫 번째 견해에서는 이를 계루부 왕실 내부에서 방계(傍系)로 왕위가 이어지는 상황으로 파악한다. 그런데 두 번째 견해에서는 이 계보상의 단절에 초점을 두어 이때 왕실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태조대왕이란 왕호의 '태조(太祖)'가 시조적 성격을 갖는 시호라는 점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게다가 이 견해 중에는 왕실교대만이 아니라 국내성(國內城)으로 천도하는 문제를 함께 연관시키는 주장도 있다. 국내 천도 문제는 복잡하기 때문에 나중에 따로 살펴본다.
이외에도 주몽왕 혹은 태조대왕대가 아닌 다른 시기에 왕실이 교대됐다는 일부 견해도 있다. 필자 역시 왕실 교대의 시점으로 태조왕 뒤인 신대왕을 주목하고 있지만, 이 글에서는 학계의 주류 견해를 우선 소개하고자 한다. 태조대왕대에 왕실이 교대됐다고 보는 견해의 다수는 유리왕을 소노부 왕실의 시조로 본다. 그 주요 논거의 하나는 삼국유사 '왕력편'에 보이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다
제1대 동명왕(東明王). 갑신년에 즉위하여 18년을 다스렸고, 성은 고(高)씨이고, 이름은 주몽(朱蒙)이다. 추몽(鄒蒙)라고도 한다. 단군(壇君)의 아들이다. 제2대 유리왕(瑠璃王). 누리(累利)라고도 하고 또는 □류(□留)라고도 한다. 동명의 아들로 임인년에 즉위하여, 36년간 다스렸다. 성은 해(解)씨이다. 제3대 대호신왕(大虎神王). 이름은 무휼(無恤)이고, 미류(味留)라고도 한다. 성은 해(解)씨이고, 유리왕(瑠璃王)의 셋째이다. 무인년에 즉위하여 26년간 다스렸다. 제4대 민중왕(閔中王). 이름은 색주(色朱)이고, 성은 해(解)씨이다. 대무신왕의 아들로, 갑진년에 즉위하여 4년간 다스렸다. 5대 모본왕(慕本王). 민중왕의 형이고, 이름은 애류(愛留)인데, 우(憂)라고도 한다. 무신년에 즉위하여 5년간 다스렸다.
위 기록에는 유리왕, 대호신왕(대무신왕), 민중왕의 성씨를 모두 해(解)씨라고 하였다. 다만 모본왕의 경우 성씨를 기록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서는 '고구려본기'에서 모본왕의 이름을 "해우(解憂) 또는 해애루(解愛婁)"라고 한 기록이 참고된다. 이것만이 아니라 '고구려본기'에는 대무신왕의 또 다른 왕호로서 '대해주류왕(大解朱留王)'이란 이름을 전하고 있고, 민중왕의 이름도 '해색주(解色朱)'라고 전한다. 즉 '고구려본기' 기록에서도 대무신왕, 민중왕, 모본왕의 왕호나 이름 중에는 '해(解)'가 들어가 있는 특징이 있다.
여기에 주목해 유리왕~모본왕의 4왕을 해씨 성을 갖는 왕계로 보고, 고(高)씨 성을 갖는 주몽 및 태조대왕 이후의 왕계와 구분하는 견해가 앞서 언급한 두 번째 견해이다. 그리고 이 해씨 왕계를 '삼국지' 고구려전에 전하는 이전 왕실 즉, 소노부 왕실로 본다. 이 견해에 따르면 유리왕은 소노부 왕계의 시조쯤에 해당하게 된다. 그리고 주몽을 시조로 하는 태조대왕 이후의 왕계가 계루부 왕실이 된다.

그리고 위 왕력편에서는 민중왕이 대무신왕의 아들, 모본왕이 대무신왕의 동생으로 되어 있는데, '고구려본기'에는 이와 반대로 민중왕이 동생, 모본왕이 아들로 기록돼 있다. 또 왕호라든가 이름에 있어서 '고구려본기'와 다소 차이가 있는 점을 보건데, 일연이 또 다른 전거 자료에 의거해 작성했다고 보인다. 고려 말까지도 고구려 역사 관련 전승 기록이 여러 계통 남아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일연이 동명왕을 고씨, 그의 아들인 유리왕과 이후의 왕들을 해씨라고 기록하면서도 이 점에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은 태도가 다소 의아하다. 그런데 삼국유사 '고구려조'에는 주몽의 성씨가 "본래 해(解)씨인데, 스스로 천제의 아들로서 햇빛을 받아 태어났다고 해서 스스로 고(高)씨로 성씨로 삼았다"는 주석을 기록하고 있다. 전승상에서 주몽의 아버지가 해모수이기에 아마도 일연은 해씨와 고씨를 서로 다른 혈통으로 보지 않았던 듯하다. 그래도 유리왕 등 4왕만을 굳이 해씨로 특기하고 있다는 점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주몽의 성씨가 해씨라는 이 기록 외에도 '고구려본기'에 주몽의 또 다른 이름으로 '중해(衆解)'라는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주몽도 해씨 성일 가능성이 있다면, 왕력편의 해씨 성을 논거로 하여 유리왕 등 4왕을 주몽과는 또 다른 왕계로 보는 견해가 충분하지는 않게 된다.
그리고 유리왕 이후의 4왕을 또 다른 왕계로 본다면, 이들 4왕은 '고구려본기'와 '삼국유사' 왕력의 기록대로 부자 관계나 형제 관계를 맺고 있을까. 사실 유리왕과 대무신왕의 부자 관계를 보여주는 '고구려본기' 기록에도 의심스러운 면이 있다. 유리왕은 즉위 2년 7월에 다물후(多勿侯) 송양의 딸을 맞이하여 왕비로 삼았는데, 왕비 송씨는 이듬해 10월에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런데 유리왕의 셋째 아들인 대무신왕은 어머니가 왕비 송씨로 기록돼 있다. 대무신왕은 유리왕 33년에 11세의 나이로 태자로 책봉되었기에 동왕 23년에 태어났다고 보아야 하는데, 이때는 그의 어머니로 기록된 송씨가 사망한 지 20년이 지난 뒤이다. 실제로는 대무신왕이 결코 왕비 송씨의 아들일 수 없는 이런 모순된 기록은 아마도 유리왕과 대무신왕을 의제적인 부자 관계로 만들면서 생긴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대무신왕과 민중왕, 모본왕의 관계를 '고구려본기'와 왕력편이 서로 다르게 기록하는 혼란스러운 점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이런 기록상의 모순과 의문들을 보면 주몽왕부터 모본왕까지의 관계가 실제적인 혈연 관계가 아니고 의제적으로 만들어진 관계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주몽에서 유리왕, 유리왕에서 대무신왕으로 이어지는 관계를 의제적 부자 관계로 인정한다고 해서 유리왕을 또 다른 시조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주몽왕 이후를 동일한 계루부 왕계로 보는 견해 중에는 초기 왕위 계승을 영웅적 왕자(王者)관에 입각한 비혈연적 계승 원리가 작동하는 시기라고 파악하는 주장도 있으며, 충분히 귀를 기울여 볼만한 견해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전히 주몽왕계와 유리왕계가 다르고 유리왕이 또 다른 왕계의 시조가 되는 인물이라는 견해를 지니고 있다. 전회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몽왕(추모왕, 고구려후 추)은 기원전후 시기에 실재했던 인물이었다. 주몽왕의 즉위가 소노부에서 계루부로의 교체라고 한다면, '삼국지' 고구려전은 거의 250년 전 과거를 새삼스럽게 기록하고 있고, 또 소노부는 250년쯤 지난 뒤에도 여전히 전왕족으로 행세하고 있는 셈이 된다. 이는 납득하기 어렵다. 그래서 필자는 3세기 중엽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소노부에서 계루부로 교체됐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견해는 나중에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주몽왕과 유리왕, 유리왕과 대무신왕은 혈연적인 부자 관계가 아니라 의제적인 부자 관계이며, 여기서 주몽왕을 시조로 하는 왕계와 유리왕을 시조로 하는 왕계로 구분하는 견해도 등장하고 있음을 소개하였다. '광개토왕비문'에서 추모왕-유류왕-대주류왕 세 왕의 왕계를 정연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이 고구려 왕계를 온통 뒤흔들어 놓은 셈이 되었다.
고구려본기 및 관련 여러 기록에 나타나고 있는 여러 의문이나 모순점들이 사실은 고구려본기의 내러티브 안에 숨어 있는 역사의 실상을 드러내는 단서가 된다. 독자 여러분을 역사 내러티브의 세계가 아니라 사료 비판을 통해 의문을 던지는 과정으로 안내하려는 게 근래 제 글의 목적임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임기환 서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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