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 게 일상”…철도 기관사 ‘화장실 없는 운전실’ 근무 환경 논란

서의수 기자 2026. 1. 2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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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운전·촘촘한 회차에 생리권 사각지대…건강·안전 문제로 확산
노조 “복지 아닌 안전 문제”…제도 공백 속 개선 책임 떠넘기기 우려
▲ 서대구역으로 들어서는 KTX 모습. 경북일보DB

철도 기관사들이 근무 중 화장실을 이용하기 어려운 구조적 환경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다수의 도시철도·광역철도 차량 운전실에 화장실이 설치돼 있지 않은 데다, 단독 운전과 촉박한 회차 일정이 겹치면서 생리 현상 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한 근무 여건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철도 업계와 노동계에 따르면 국내 도시철도와 광역철도 상당수 차량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운전실 화장실을 두지 않는 구조로 제작됐다. 운전 집중도 저하 우려와 공간·중량·유지관리 효율을 이유로 화장실을 배제해 온 관행이 지금까지 유지돼 왔다.

이 같은 구조는 단독 운전 노선에서 더욱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교대 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기관사는 운전 중 운전실을 비울 수 없고, 종착역에 도착한 이후에도 회차 시간이 수 분 단위로 짧게 설정돼 있어 화장실 이용 자체가 쉽지 않다. 열차 지연이 발생할 경우 정시성 유지 압박까지 더해지면서 "참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는 현장 증언이 반복돼 왔다.

전국철도노동조합 자료를 보면 일부 기관사들은 근무 전 수분 섭취를 의도적으로 줄이거나, 장시간 생리 현상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근무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기관사의 경우 방광염 등 요로계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일부 현장에서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간이 배변 키트가 비치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제한적·예외적 조치에 그치고 있다.

운전실 안전 장치 역시 문제를 복합적으로 만든다. 열차 운전실에는 기관사가 일정 시간 이상 조작 장치에서 손을 떼면 의식 상실 등 비상 상황으로 판단해 열차를 자동 감속 또는 정지시키는 안전 장치가 설치돼 있다. 이로 인해 운전 중 임의로 자세를 바꾸거나 운전실을 벗어나는 것은 안전 규정상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문제는 단순한 근무 불편을 넘어 열차 운행 시스템 전반과도 연결된다. 실제로 서울 지하철에서는 승무원이 역사 도착 후 화장실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열차 지연이 발생한 사례도 있었다. 당시 운영기관은 한 번의 운행에 2~3시간이 소요되고 중간 화장실 이용이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며, 회차 시간 조정과 대체 시설 운영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철도노동조합은 이 사안을 '복지'가 아닌 '안전'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리 현상을 장시간 억제하거나 탈수 상태에서 근무할 경우 집중력 저하와 스트레스 증가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열차 운행 안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사업장 화장실 설치·운영 가이드에서도 화장실 부족이 노동자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문제로 지적된 바 있다.

현재 철도차량 관련 기술기준에는 운전실 화장실 설치를 의무화하는 조항이 없고, 기관사 생리권 역시 산업안전 기준에 명확히 포함돼 있지 않다. 이로 인해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 간 제도 개선 책임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교통부의 관계자는 "철도 차량 구조와 운전 인력 운영 방식은 안전 기준과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기관사 근무 실태와 현행 제도의 한계를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관계 부처 및 운영기관과 함께 개선 가능성을 살펴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