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전기차 여행, 마음 편하게 다녀올 수 있을까?(with BMW)

전기차와 여행. 설레면서도 막막한 조합의 단어들이다. 자동차는 어디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이동수단. 하지만 동력원이 오직 ‘전기’라면 충전 시간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반대로 생각해봤다. 충전소를 따라서 여행해보자고. 마침 BMW 코리아가 유명 관광지에 전기차 충전소를 지었다. 서울에서 출발해 주문진과 경주를 경유한 약 840㎞의 여정을 소개한다.

글|사진 서동현 기자(dhseo1208@gmail.com)
BMW가 직접 만든 충전소로 향하는 만큼, 시승차 역시 BMW의 전기차 두 대로 준비했다. 하나는 i5 eDrive40이다. 8세대 5시리즈 기반 전기차로, 최고출력 340마력 전기 모터가 뒷바퀴를 굴린다. 최대토크는 40.8㎏·m. 배터리 용량은 81.2㎾h며, 1회 충전 주행거리는 441㎞다. 올해 1~10월 누적 판매량은 1,066대로 수입 전기차 판매 10위권 내에도 자주 드나들었다.

두 번째 차는 iX xDrive50. 2021년 말 국내에 처음 들어온 순수 전기 SUV다. 배터리 용량에 따라 트림명이 나뉘는데, ‘50’ 모델은 111.5㎾h 크기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지녔다. 덕분에 주행거리는 iX xDrive40(313㎞) 모델보다 긴 447㎞다. 최고출력과 최대토크 역시 523마력 및 78.0㎏·m으로 출중하다. 배터리 제조사는 모두 삼성 SDI.
우리의 출발지는 BMW 코리아가 가장 최근에 문을 연 충전소인 ‘BMW 차징 허브 라운지’다. 위치는 서울 중구 회현동. BMW 그룹이 만든 전 세계 최초의 ‘라운지형’ 급속충전소다. 여기선 충전기 물린 후 비좁은 차 안에서 기다릴 필요 없다. 바로 옆 카페에서 커피 한 잔과 안마의자를 즐기면 된다. 시기에 따라 바뀌는 BMW의 다양한 전시차도 이곳만의 볼거리.
충전할 수 있는 자리는 총 6개. 최대 200㎾의 급속 충전을 지원한다. 12월부터는 플러그 앤 차지(Plug & Charge, PnC) 서비스를 지원해 충전부터 결제까지의 과정을 단축할 계획이다. 최신 전기차 충전소인 만큼 화재 등 사고 예방 시스템도 철저하다. 3중 스프링클러와 열화상 CCTV, 소화기를 배치해 전기차 오너들이 안심하고 충전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1차 주행: 서울 → 주문진 213㎞
iX와 i5 모두 배터리 잔량 100%로 출발. 각각의 잔여 주행거리는 513㎞ 및 512㎞였다. 모두 국내 인증 수치보다 훨씬 넉넉한 거리. 같은 조건으로 달리기 위해 실내 온도는 22℃ 자동, 주행 모드는 이피션트(Efficient)로 맞췄다. 서울 도심을 벗어난 뒤부터는 고속도로 제한속도를 따라 달렸다. 이번 시승의 핵심은 차의 운동성능보다 주행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계기판에는 순간 전비와 주행거리 등을 띄워놓고 강원도 주문진으로 이동했다.
첫째 날은 iX의 운전대를 잡았다. 오랜만에 만난 iX에서는 플래그십 전기 SUV다운 아늑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고급 소파처럼 포근한 시트와 큼직한 곡면으로 이룬 대시보드 및 도어트림, 탁 트인 시야 덕분이다. 가죽과 크리스탈, 나무 등으로 꾸민 디테일도 여전히 우아하다. 벌써 우리나라에 출시된지 만 3년이 되어가지만 세월의 흔적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가장 마음에 드는 옵션은 ‘바워스 앤 윌킨스 다이아몬드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 헤드레스트를 포함해 실내 곳곳에 30개의 스피커를 심었다. 입체감을 강조하는 3D 기능은 기본. 4D 베이스 모드로 음악에 따라 1열 시트에 진동까지 전달한다. 그야말로 움직이는 청음실이다. 매일 듣던 음악도 iX에선 새롭다. 시승 전 정성들여 플레이리스트를 짜둘 가치가 있다.

스피커 성능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주행거리는 쭉쭉 늘어난다. 고속 안정성이 워낙 좋아서다. 넋 놓고 운전하면 휴게소와 졸음쉼터들이 오른쪽으로 ‘슥슥’ 지나간다. 화장실만 급하지 않다면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논스톱으로 달려도 괜찮을 듯하다. BMW 치고 여유로운 운전대 감각은 약간 아쉽다. 그러나 ‘편안함’에 초점을 둔다면 이렇다 할 불만거리도 아니다.
오디오를 즐기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계기판 위 숫자들도 만족스러움을 더했다. 이동거리와 잔여 주행가능거리를 더한 ‘총 주행거리’가 점점 늘어났다. 가평휴게소까지 72㎞를 달린 시점에서 남은 주행거리는 494㎞. i5 역시 467㎞를 표시했다. 적당한 날씨와 일정한 운전 패턴이 만난 결과다. 그렇게 약 3시간을 달려, 해돋이 명소 주문진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표1. 서울 → 주문진 이동 결과
첫 번째 목적지까지의 주행거리는 약 210㎞. 두 차 모두 40% 내외의 배터리를 소모했다. 역시나 총 주행가능거리 수치가 인상적이었는데, iX는 무려 600㎞를 돌파했다. i5도 예상을 훨씬 웃도는 567.3㎞를 기록했다.
곧바로 주문진해수욕장 주차장에 마련된 BMW 차징 스테이션에서 급속 충전을 시작했다. 이곳은 올해 3월에 문을 열었다. 완속(14㎾)과 급속(100㎾) 충전기를 각각 2대씩 설치해, 총 8대를 한 번에 충전할 수 있다. 한국적인 기와지붕과 BMW 고유의 삼각형 패턴, 소나무 형상의 배경이 어우러진 충전소 디자인에선 BMW의 세심함이 드러난다.

충전은 차지비 회원 카드 또는 차지비 어플을 통해 간편하게 진행할 수 있다. 어플의 경우 회원가입 후 결제 카드 정보를 입력하고, 사용할 충전기를 선택한 뒤 케이블을 연결하면 끝이다. 서울에 위치한 충전소처럼 라운지는 없지만, 바로 뒤편에 해수욕장이 펼쳐져 있어 바닷바람 쐬고 오기에 좋다. iX는 94%, i5는 95%까지 배터리를 채운 뒤 다음 장소로 출발했다.
2차 주행: 주문진 → 경주 280㎞
두 번째 목적지는 경주다. 불국사와 석굴암, 첨성대, 각종 왕릉 등 굵직한 문화유산이 모여있는 수학여행의 성지다. 첨성대에서 동쪽으로 약 15분 거리의 힐튼호텔 경주 야외주차장에 또 다른 BMW 차징 스테이션이 있다. 지난해 6월 오픈해 급속(100㎾) 충전기 1대와 완속(14㎾) 충전기 3대를 구비하고 있다. 다만 도착 시간이 너무 늦어, 충전은 다음날 하기로 했다.

주문진에서 경주 숙소까지의 거리는 약 280㎞.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머지않아 7번 국도로 이어진다. 동해안과 가장 가까운 국도면서, 아시안 하이웨이 6호선의 일부다. 드라이브와 동시에 바닷가 풍경을 즐길 수 있어 자동차나 모터사이클로 전국 일주를 꿈꾸는 사람들이 꼭 찾는 도로다. 짙은 밤을 뚫고 숙소에 도착. 다시 한번 전비와 주행거리를 체크했다.
표2. 주문진 → 경주 이동 결과
iX는 49%, i5는 52%의 배터리를 소모했다. 평균 전비는 5.3㎞/㎾h 및 6.7㎞/㎾h. 총 주행가능거리는 두 차 모두 줄었지만, 여전히 인증거리보다 월등히 높은 결과를 나타냈다.
이튿날, 숙소 근처에서 사진 촬영을 마치고 충전소를 찾았다. 배터리 잔량은 조금씩 더 줄어 iX 37%, i5 33%까지 내려왔다. 서울로 향하는 350㎞의 여정을 앞두고 급속 충전 시작. 위 사진처럼 BMW 차징스테이션은 모든 브랜드의 전기차 및 PHEV 차종들이 이용할 수 있다. BMW를 타지 않더라도 지붕에 기와 얹은 충전소를 발견한다면 고민 없이 이용해도 된다.
3차 주행: 경주 → 서울 345㎞
모두 배터리를 93%로 채웠다. 이제 출발지였던 BMW 차징 허브 라운지로 돌아갈 차례. 둘째 날은 i5를 타고 이동했다. 몰입감 넘치는 오디오를 양보한 대신, 보다 포근한 승차감을 얻었다. 잔요철 충격은 오히려 iX보다도 매끈히 처리한다. 감쇠력을 조절할 수 있는 댐퍼와 뒷바퀴를 책임지는 에어 서스펜션의 시너지가 5시간에 달하는 장거리 주행을 든든히 지원했다.

두 번째 장점은 정숙성. 플래그십 레벨의 iX도 시속 100㎞ 넘는 고속에서 상당이 조용했는데, i5도 방음 실력이 만만치 않다. 비결 중 하나는 공기저항계수다. Cd 0.23으로, 구형 5시리즈 세단보다 0.01 줄었다. 각지고 날선 외모와는 달리 마주 오는 공기를 유연하게 처리한다. 고요한 실내와 따스한 햇빛에 잠이 몰려올 때쯤, 무사 복귀를 위해 후배에게 운전대를 넘겼다.
자리를 옮겨 2열 시트에 몸을 기댔다. 여전히 바짝 선 등받이 각도는 마음에 안들었지만, 그 외의 편의성은 흠잡을 데 없었다. 나른한 햇빛은 쪽창까지 마감한 도어 커튼과 전동식 뒷유리 블라인드로 막을 수 있다. 좌우를 분리한 2열 공조장치는 센터콘솔과 B 필러에 나눠 바람을 보낸다. 열선은 당연히 기본. 부모님을 모시기에도 섭섭하지 않은 알찬 구성이다.
표3. 경주→서울 이동 결과

내륙을 가로질러 도착한 서울. 총 345㎞를 달려 저녁 8시쯤, 드디어 BMW 차징 허브 라운지로 돌아왔다. 이틀 중 가장 긴 경로였던 탓에 배터리 소모량도 가장 많았다. iX와 i5의 배터리 잔량은 각각 45%와 29%. iX는 넉넉한 배터리 크기만큼이나 긴 주행거리를 뽐냈으며, i5는 두 번째 주행에 이어 이번에도 6.7㎞/㎾h의 높은 전비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비용은 얼마나 들었을까. 추가 충전을 진행했던 주문진과 경주 차징 스테이션의 충전요금은 1kW당 345원이다(회원가 기준). 이틀간 834㎞를 움직인 i5 기준 결제 금액은 총 3만653원. 다시 100%로 충전한다고 가정하면 약 ‘5만543원’이 든다. 같은 거리를 고속도로 연비 13.7㎞/L의 520i로 이동한다면 약 ‘9만9,471원’의 유류비를 예상할 수 있다(11월 20일 전국 평균 휘발유값 1,636원/L 기준). 당연히 ‘전기차가 더 경제적이다’같은 단편적인 결론을 내려는 건 아니다.
충전소를 기점으로 무작정 떠났던 전기차 시승. 이번 여행으로 깨달은 사실은, 생각보다 전기차를 타고 멀리 이동하기가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휴게소는 명절 등 시기에 따라 붐비기도 하겠지만, 고속도로에서 벗어나면 의외로 충전할 곳이 많다. 앱을 통해 충전소 위치와 충전 가능한 자리 수까지 확인할 수 있으니 변수에 대응하기도 쉬웠다.

충전 인프라 확장에는 BMW 그룹 코리아도 꽤나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른바 ‘차징 넥스트(Charging Next)’ 전략 아래, 올해 9월 기준 이미 충전기 1,600대를 전국에 설치했다. 올해 말까지는 누적 2,100대를 채울 예정이다. LG전자 및 GS에너지와 협력해 200㎾ 급속을 넘어선 350㎾ 초급속 충전기도 준비 중이다. 당연히 제조사를 가리지 않고 충전 가능하다. 이렇게 BMW를 비롯한 제조사들과 국가가 충전시설 보급에 앞장선다면, 전기차를 마음 놓고 구매할 수 있는 날이 보다 빠르게 다가올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