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대응 연금활성화, 세제 등 파격적 지원 필요
톤틴형 등 특정 고객니즈 관리 전문보험사 육성해야
최근 금융위가 ‘보험개혁 종합 방안’을 발표했다. 5대 전략부문(인구 기후 기술 등 3대 변화, 해외진출 및 실물투자, 부채관리) 11개 과제의 추진으로 신뢰회복과 혁신을 통해 보험산업을 국민 삶의 동반자로 재도약시킨다는 것이다. 그동안 현실적 대안을 찾지 못해 묻어둔 과제가 상당수 포함돼 기대가 크다. 보험업은 서비스 수요(소비자) 상품개발(보험사) 판매수수료(판매인) 운영제도(규제당국) 등 이해관계의 복잡성과 긴장도가 다른 어떤 비즈니스 영역보다 높고 치열하다. 그만큼 단기적으로 해결이 어려운 난제가 많지만 산업발전을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들이다.
사회변화의 가장 원초적 변수는 인구학적 변화다. 인구의 규모나 질적 특성이 변하면 사회경제구조가 바뀌고 우리의 생각과 삶의 행태도 달라진다. 한국은 2024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19.2%로 이미 ‘초고령화사회’ 진입이 확실하고 출산율은 0.75명으로 공동체 확대재생산 시스템이 붕괴된 지 오래됐다. 인구학적 변화의 부작용이 막연한 미래가 아닌 일상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현실이 됐다. 지방뿐 아니라 서울에도 학생수 감소와 폐교를 전하는 소식이 늘어나고 ‘유치원’보다 ‘노치원’ 비즈니스가 더 각광을 받는다. 늘 그렇듯이 우리는 상황이 눈앞에 닥쳐야 부산을 떤다.
금융위가 발표한 ‘인구’ 부문의 고령화 대응으로 ‘신연금보험’ 도입이 포함됐다. 사망보험금을 생전의 연금으로 전환하는 것과 함께 연금보험 활성화를 위해 ‘한국형 톤틴연금(Tontine Annuity)’을 내년부터 도입한다는 것이다. 현장과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부작용보다 긍정적 효과(연금액 38% 상승)에 방점을 둔 것이다. 한국은 사적연금 적립비율이 GDP대비 30% 이하로 100% 넘는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다. 소득대체율이 낮은 공적연금 보완을 위해 사적연금의 노후소득 보장기능을 강화할 필요성이 크다. 하지만 ‘한국형 톤틴연금’이 성공하려면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할 것 같다.
‘옛말에 죽는 사람만 서럽다’는 속담이 있다. 억울하면 오래 살라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 같은 유병장수시대에 준비 없이 노년을 맞는 은퇴자에게는 심한 저주로 들린다. 이런 절박한 현실을 반영해 ‘한국형 톤틴 저해지연금’ 도입 의견까지 나온 것이다. 톤틴연금은 죽은 사람만 서러운 대표적인 보험상품이다. 가입자가 일찍 죽으면 적립된 보험료를 사망보험금으로 지급하지 않고 생존자의 연금재원으로 충당하는 것이 기본 컵셉이다. 오래 살수록 연금액이 늘어나도록 설계된 것이다. 글로벌 영화 흥행작품인 ‘오징어게임’을 연상시킨다.
톤틴형 상품은 17세기 유럽에서 시작돼 19세기까지 미국 등에서 크게 성행했다. 1906년 뉴욕주에서 법으로 금지되면서 시장에서 잊혀진 상품이다. 망자의 돈을 생존자가 나눠서 갖는다는 윤리적 비판과 연금운영의 불투명성 등으로 시장과 금융당국의 신뢰를 잃었다. 하지만 110년만에 고령화로 난관에 빠진 일본에서 되살아났다. 2016년 일본생명이 톤틴보험 원리를 변형해 ‘일본형 톤틴연금(그랑 에이지)’을 출시한 이후 제일생명 태양생명 등 다른 회사로 확산됐다. 보험연구원(2018.6)에 따르면 판매된 일본형 톤틴연금의 가입연령은 50세~ 87세, 연금보험 개시연령은 60세~90세이며 손익분기점 연령이 88세~90세 정도로 나타난다. 100세 생존시 연금 수익율(연금수령액/납입보험료)은 152%~171% 수준이다.
한국은 2016년 연금개시 이전에도 사망보험금을 납입보험료보다 적게 설계할 수 있도록 보험업감독규정이 개정됐다. 톤틴형 보험개발이 가능한 제도적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2023년 6월 금융당국이 연금보험 활성화를 위해 해지환급율 규제도 완화했다. 보험해지 시점별로 최소해지환급율 수준을 보험계약의 최소 유지기간(7년)을 조건으로 낮췄다. 한국의 연금보험은 중도해지자 보호가 가장 중요한 정책 목표였다. 결과적으로 해지환급율을 탄력적으로 운영하지 못해 고수익형 장기 연금상품개발이 어려웠다. 고령화시대 급진전에 맞춰 노령연금 컨셉으로 연금보험의 성격을 변화시킬 필요성을 반영해 규제가 변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규제완화에 맞춰 2023년 삼성생명이 톤틴형 성격의 ‘생명보험플러스’를 출시했지만 시장의 호응을 크게 얻지 못했다. 중도해지환급율을 낮추는 대신 장기유지 연금계약에 대해 ‘장기유지보너스’ 지급으로 연금기능을 강화한 것이 핵심이었다. 보험개혁과제로 다시 톤틴형 연금보험 도입까지 고민하는 금융당국의 입장은 이해되지만 ‘톤틴형 연금’이 성공하려면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
한국형 톤틴연금이 성공하려면 상품에 내재된 윤리적 문제, 해지율 예측의 어려움, 높은 민원발생 우려, 낮은 사업비율과 판매 수수료율 등 먼저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다. 조기사망자가 많을 수록 연금액이 높아지는 톤틴형은 원초적으로 윤리논쟁에 노출돼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중도해지자는 손해를 보고 연금개시까지 유지한 부유한 가입자가 더 많은 혜택을 보는 소득분배 역진성도 불편한 지점이다. 2024년 상반기 기준으로 생보사 보유계약의 5년 유지율이 40%에 불과하다. 연금개시 전 사망할 경우 낸 보험료의 70% 수준의 환급율을 금융당국이 검토하는 것도 이러한 고민이 반영된 것이다.
톤틴형 연금보험은 해지율 예측이 중요하다. 예상보다 실제 해지율이 낮으면 당초 예상한 연금액 보장이 어려워진다. 해지율을 보수적으로 낮게 설계하면 일반연금과 연금액 차이가 크지 않아 상품성이 없다. 보험사도 해지율 예측에 실패하면 해지차 리스크에 노출된다. 무엇보다 연금보험은 낮은 사업비차 때문에 판매수수료를 높일 수 없어 모집인이 판매를 외면하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납입보험료보다 작은 사망보험금 등으로 불완전판매와 돌발적인 민원 이슈가 빈발할 수 있다.
톤틴연금은 사망이나 계약 해지시에 일반연금보다 사망보험금이나 해지환급금을 적게 받는 대신 생존집단에게 더 많은 연금을 지급하는 것이 기존구조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보험이나 연금상품과는 전략적 목표시장(Target Market)을 다르게 설계해야 한다. 단순히 노후준비가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장수 가능성이나 금융 이해도는 물론 기대수익 성향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마케팅 포인트와 리스크 관리 등 경영역량을 집중해야 성공할 수 있다. 기존 보험사와 차별화된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전통적인 기존 보험사의 접근방식으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사업비 절감이 가능한 인터넷기반의 연금전문 보험사를 다수 허용하고 상품개발과 자본관리 등 예외적 규제의 틀을 두고 전문성을 높이는 전략이 유효할 수 있다. 전통보험사는 연금보험을 판매할 의지가 없고 기존의 연금전문보험사는 상품구성이나 운영에서 전통 생보사와 큰 차이가 없다. 전문성 없는 전문보험사라는 시장의 인식을 극복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들고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국형 톤틴연금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보험시장에서 활동하는 국내 보험사는 생보사 22개 손보사 14개로 36개에 달한다. 좁은 국내시장에 보험사가 너무 많아서 출혈경쟁으로 보험시장이 혼탁해지고 발전을 가로 막는 요인이라는 주장이 많다. 하지만 국내 주요 보험사는 거의 모두 동일한 고객을 대상으로 거의 유사한 상품으로 무차별적인 영업과 경영을 펼친다. 국내 보험사 전략의 차별성은 모집인에 대한 판매수수료가 거의 유일하다. 판매수수료 재원의 확보능력이 보험사 경쟁력인 셈이다. 보험사의 수가 많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쏠림 현상으로 시장이 순식간에 초토화되고 전문성은 사라진다. 독특한 특성을 가진 ‘한국형 톤틴연금’이 성공할 수 있는 효율적이고 전문화된 특화보험사 탄생을 기대해 본다.
허정수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