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 안의 대치동" 전국 학부모님들 감탄시킨 두 고대생의 아이디어

학생부 관리 솔루션 ‘학쫑프로’ 만든 한국교육파트너스 권기원·권재우 대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한국교육파트너스 (왼쪽부터) 권재우·권기원 대표. /더비비드

학창 시절의 풍경은 시대 흐름과 함께 변화하고 있다. ‘학력고사’는 1994년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바뀌었고, 일제의 잔재였던 ‘국민학교’는 1995년 ‘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지금은 익숙해진 주 5일제가 생기던 무렵, 2005년부터 격주로 토요일마다 쉬면서 ‘놀토(노는 토요일)’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다.

2025년부터는 ‘고교학점제’가 시행되고 있다. 학생 개개인의 진로·적성에 따라 교과목을 스스로 선택해 이수하고, 누적 학점이 일정 기준에 도달하면 졸업하는 제도다. 학생들은 개별 시간표에 따라 교실을 이동한다. 고교학점제를 두고 저마다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AI(인공지능) 기반의 개인화 교육 솔루션을 개발·운영하고 있는 한국교육파트너스 권기원(32)·권재우(34) 대표는 ‘지금이 중요한 과도기’라고 말한다. 두 사람을 만나 한국 교육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들었다.

◇학원에 찾아든 AI 바람

학쫑프로 사용 예시 화면. 과목을 선택하면 자율탐구보고서의 주제 선정과 작성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학쫑프로

한국교육파트너스의 '학쫑프로'는 실제 입학 사정관들의 평가기준을 학습한 AI로 학원생의 생활기록부를 관리할 수 있는 구독형 소프트웨어(SaaS) 서비스다. 학쫑프로를 처음 만나는 학생들은 '계열 선택 검사'를 먼저 하게 된다. 심리테스트를 하듯 10~15분간 양자택일하는 검사를 하고 나면 적성에 맞는 학과를 1순위부터 3순위까지 추천받을 수 있다. 해당 학과에 맞춰 다음 학기에 어떤 과목을 수강 신청해야할 지를 정하면 된다. 현재 내신 성적을 기반으로 어느 대학까지 갈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수시배치표'와 수행평가의 일종인 '자율 탐구 보고서 작성'도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학원으로서는 학생을 유치할 수 있는 경쟁력이 된다. 진로 담당 컨설턴트를 고용한다고 해도 컨설턴트 1인이 담당할 수 있는 학생 수는 제한적이다. 원생 약 200명 규모의 학원의 경우 적어도 10명 이상의 진로 담당 컨설턴트가 필요하다. 학쫑프로를 이용하면 관리자 1명이 수백명의 학생을 지도할 수 있다. AI가 먼저 학생의 자료를 분석하고 진로를 탐색해 주기 때문에 소수의 관리자가 최종 점검만 하면 된다.

◇대학 입시, 나 때는 말이야

(왼쪽부터) 권기원·권재우 대표는 고려대학교 동문이다. /더비비드

두 사람은 고려대학교 동문이다. 권기원 대표는 경영학과 14학번, 권재우 대표는 경제학과 12학번이다. 2017년 말 소프트웨어벤처 융합전공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 둘 다 삼수생인데다 사업·창업에 관심이 있다는 공통점 덕분에 빠르게 가까워졌다. 언젠가 함께 사업을 하자며 후일을 기약하기도 했다.

입시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왼쪽부터) 권기원 대표와 권재우 대표. /더비비드

- 각자의 대입 과정이 궁금합니다.

(기원) “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체대 준비생이었습니다. 2학년에 올라가서 방정식 하나도 제대로 못 푸는 상태로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어요. 혼자 진로 고민을 하다가 우리나라 유명 기업 CEO들에게 무작정 연락했습니다. 손 편지, 메일, SNS 등 가리지 않고 연락해 만나달라고 했죠. 이런 학생은 처음 본다며 호텔로 초대해 밥을 사주시고 이메일로 장문의 상담을 해주셨어요. 이런 활동들 덕분에 1학년 내신이 한참 부족한데도 입학사정관제 전형으로 서울대 서류 전형을 통과했습니다. 결국 삼수 끝에 고려대로 진학했죠.”

(재우) “어릴 때부터 사업가란 꿈이 있었지만 학생의 본분은 ‘공부’뿐이었죠. 그나마 나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전형이 ‘논술’이었습니다. 글을 쓸 때도 자꾸만 나만의 색깔을 넣으려 한다며 선생님에게 많이 혼났던 기억이 나네요. 재수학원을 다닐 때는 후배들의 글을 첨삭해 주기도 했죠. 논술로 대학을 입학했고 졸업 후에도 6년간 논술 학원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강남 유명 입시학원에서 중간 관리자로 일하면서 첨삭 선생님들을 가르쳤어요. 당시 담당한 학생 수가 1000명이 넘습니다.”

2018년 SK플래닛 101 스타트업 데모데이에서 권기원 대표가 발표하는 모습. /권기원 대표 제공

- 언제부터 사업의 길에 뛰어들었나요.

(재우) “식품 제조업으로 사업에 발을 들였습니다.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봤던 인퓨즈드 보드카(보드카에 과일·허브·향신료 등을 첨가해 만든 음료)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한국으로 돌아와 ‘담금주 키트’를 만들었죠. 행사용 상품으로 나름 인기를 끌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매출이 곤두박질쳤습니다. 꼭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길게 가기는 힘들었을 거예요. 시장이 워낙 작았거든요.”

(기원) “대학 입학과 동시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연달아 창업을 했습니다. 화장품을 잘 쓰지도 않으면서 시장성·사업성만 보고 관련 사업에 뛰어드는 식이었죠. 이후에도 패션·관광·출판 등 7번의 실패를 경험했어요. 그제야 ‘내가 가진, 나만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게 ‘교육’이었습니다. 진로교육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잡쇼퍼’라는 에듀테크 스타트업을 창업했습니다.”

잡쇼퍼 시절 권재우 대표가 제주도 진로박람회 부스에서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모습. /권재우 대표 제공

- 교육에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나요.

(기원)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게 ‘공정성’인데요. 시험이 공정성 측면에선 최고죠. 하지만 교육에 있어서는 그보다 스스로 탐구해 보고 어떤 주제에 몰입하면서 깨달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더 중요합니다. 잡쇼퍼를 준비·운영하며 만난 교육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우리나라 교육 제도 아래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주어진 시간에 많은 문제를 맞혀야 하는 ‘시험’은 ‘교육’이 아니라 ‘트레이닝’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문제의식에서 온라인으로 진로 탐색 활동을 할 수 있는 솔루션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학생부는 그저 그런 서류가 아니다

학쫑프로 설명회 모습. 당초 예상보다 신청자가 많아 영화관을 빌려 설명회를 진행했다. /권재우 대표 제공

2017년 5월 출범한 잡쇼퍼는 무료 웹서비스·진로정보 플랫폼 ‘메이저 맵’으로 20만명의 이용자를 모았다. AI를 이용해 학생부를 진단하고 맞춤형 진로 탐구 주제를 추천해 주는 서비스인 ‘학쫑’도 개발했다. 전국 600개 중고교가 ‘학쫑’을 도입했고,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잡쇼퍼는 교육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2021년부터는 권재우 대표도 합류해 힘을 보탰다. 학생용 프로그램이었던 학쫑을 학원용으로 업그레이드하면서 2025년 4월 ‘한국교육파트너스’로 스핀오프했다.

- 학생용 프로그램을 학원용으로 전환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기원) “잡쇼퍼의 학쫑은 전국 고등학교 80%에서 사용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어요. 하지만 제대로 활용하는 학생은 최상위권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대부분의 학생은 다시 학원으로 가더군요. 경쟁심리 때문에 좋은 서비스라도 주변에 알리지 않는다는 한계도 있었죠. 학생에게 직접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징검다리가 하나 필요했어요. 그게 ‘학원’이었습니다.”

학쫑프로를 이용해 진로 상담을 하는 교사와 학생들의 모습. /권기원 대표 제공

- 학쫑을 개발한 경험이 있으니 학쫑프로 개발은 수월했겠네요.

(재우) “저도 그럴 줄 알았는데요. 학생 중심으로 만들었던 학쫑을 그대로 가져왔더니 선생님들의 냉정한 피드백이 빗발쳤습니다. 학생들은 새로운 프로그램이라도 금방 사용법을 익히고 능숙하게 썼기 때문에 간단한 매뉴얼밖에 없었어요. 비슷한 프로그램인데도 선생님들은 낯설게 느끼고 기능을 100% 활용하지 못하더군요. 전 5분 대기조였어요. 학원에서 연락이 오면 어디든 달려가서 직접 설명해 드렸습니다. 선생님들에게 받는 피드백은 개발팀에 공유해 바로 반영되도록 했죠. 학쫑프로는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다듬어진 조각품입니다.”

- 학쫑프로 도입 전후로 어떤 차이가 있나요.

(기원) “학쫑프로 안에서 학생들은 계열 선택 검사를 통해 진로를 직접 찾고, AI의 도움을 받아 자율 탐구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어요. 교사는 AI가 1차로 첨삭한 보고서를 최종 검토만 하면 됩니다. 이건 일부 기능에 불과해요. 대학, 학과별 입시전략 설계, 세특(세부능력·특기사항) 관리, 면접 대비 등 1:1 프리미엄 컨설팅으로만 받을 수 있던 서비스를 10% 수준의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학원 입장에서는 학생을 유치할 수 있는 경쟁력이 됩니다. 대치동 수준의 입시 컨설팅을 전국 어디에서나 구현할 수 있어요.”

학쫑프로를 사용하는 학생들의 모습. /권기원 대표 제공

- 비슷한 서비스를 하는 곳도 많던데요.

(재우) “경쟁사의 서비스를 보면 ‘기능’ 단위로 운영됩니다. 생기부(생활기록부) AI 진단, 자율탐구보고서 작성 등으로 서비스하는 곳이 나눠져 있죠. 우린 자체 개발 인력을 통해 학생부 관리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한꺼번에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AI 기반의 학업 탐구 주제 데이터베이스 생성방법이나 목표 학과·교과 성취기준 기반의 탐구활동 컨설팅 방법에 대한 내용으로 특허도 2건 등록했어요. 다른 서비스를 쓰다가 학쫑프로로 넘어오는 학원도 많아요. 이젠 학쫑프로 설명회를 하면 기존에 도입했던 학원 원장님들이 달려 나와 간증하듯 마이크를 잡을 정도입니다.”

◇’올바른 교육’ 하나만 보고 달린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앞에 서서 활짝 웃고 있는 (왼쪽부터) 권기원·권재우 대표. /더비비드

2025년 5월을 기준으로 한국교육파트너스의 학쫑프로를 도입한 교육기관은 1400여 개에 달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2025년 AI 바우처 지원사업’에도 선정됐다. 이번 지원사업을 통해 동아사이언스와 손을 잡고 동아사이언스가 운영하는 과학 지식 플랫폼 ‘d라이브러리’를 AI 기반의 맞춤형 학습 도구로 고도화할 계획이다. 2025년 6월에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주관하는 스타트업 투자·육성 프로그램 ‘디캠프 배치 3기’에 선정되기도 했다.

-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서 교육업계에도 큰 변화가 있겠네요.

(재우) “정부 차원에서도 대학 입시의 무게중심을 ‘시험’에서 ‘진로와 적성’으로 옮기려는 추세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제도가 정착하기까지 앞으로 여러 시행착오가 있겠죠. 저희의 할 일은, 그 과정에서 올바른 방향성을 잃지 않도록 선생님과 학교·학생·학부모를 돕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겁니다. 저희 둘 뿐만 아니라 모든 팀원이 이런 사명감을 갖고 개발도 하고, 영업도 하고 있어요.”

학생들의 파트너이자 올바른 교육으로 이끄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다는 두 대표. /더비비드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기원) “2024년 11월 제게도 2세가 생겼는데요. 제가 겪은 교육과정대로 가르쳐야 한다면, 차라리 홈스쿨링을 하는 게 낫겠다는 얘길 종종 합니다. 목표는 변함없어요. ‘시험 중심의 교육에서 과정 중심의 교육으로’란 방향성을 갖고, 우리나라 교육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옆 친구보다 한 문제 더 맞히기 위한 ‘트레이닝’이 아니라, 학생별 잠재력과 관심사를 키워줄 수 있는 ‘교육’을 지향합니다. 우리 아이가 배우길 바라는 세상을 ‘학쫑프로’에 그대로 담을 거예요.”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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