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며느리 눈치를 봐야 하는 시대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아들 부부 사이가 서먹해질까 봐, 반찬 하나 챙겨줬다가 "간섭한다"는 소리 들을까 봐 걱정이 앞선다. 손주를 보고 싶어도 먼저 말하지 못하고, 명절에 며느리 얼굴빛 살핀지도 오래됐다. 존중받던 시절은 지나갔다. 이제는 조심하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시어머니가 정작 바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니다. 큰 효도도, 지극한 순종도 아니다. 그저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몇 가지 소박한 것들이다.

1. 내 아들 흉보지 않고 칭찬해 주는 며느리
아들이 완벽한 남편일 리는 없다. 게으를 때도 있고, 눈치가 없을 때도 있으며, 아내 마음을 몰라줄 때도 있다. 시어머니도 아들의 단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날 때마다 “어머니 아들은 정말 답답해요”라는 말만 들으면 마음이 편할 수 없다. 잘못을 지적하는 말이 계속되면 시어머니는 자신이 키운 시간까지 부정당하는 기분이 든다.
반대로 “아이 아빠가 정말 열심히 일해요”, “아이들과 잘 놀아줘서 고마워요”라는 한마디를 들으면 마음이 열린다. 아들을 칭찬해달라는 것은 무조건 편을 들어달라는 뜻이 아니다. 부족한 사람 안에서도 좋은 점을 발견해달라는 바람이다. 며느리가 남편의 장점을 말해줄 때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가장 크게 고마움을 느낀다.

2. 시댁을 불편한 ‘시월드’로 못 박지 않는 며느리
요즘 며느리들은 시댁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선부터 긋고 벽을 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며느리를 보면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손주도 봐주고 싶고, 힘들 때 밑반찬이라도 해주고 싶고,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며느리가 가끔 “어머니, 이럴 때 어떻게 하셨어요?”라고 물어보거나 작은 도움을 청하는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어머니가 해주신 김치가 제일 맛있어서 또 염치없이 부탁드려요"라며 영리하게 시댁을 품을 줄 아는 며느리. 시어머니는 부담감을 느끼기보다 자신이 여전히 가치 있고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에 기꺼이 구원투수가 되어준다.

3. 어른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 예의'를 지키는 며느리
시어머니들이 원하는 건 결코 과한 게 아니다. 큰절을 올리고, 존댓말을 깍듯이 쓰고, 시집살이를 견디는 그런 옛날식 예의가 아니다. 그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땅히 있어야 할 최소한의 존중이다. 인사를 제때 하는 것, 어른이 말할 때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 것, 식사 자리에서 함께 먹는 흉내라도 내주는 것.
시대가 바뀌었다고 예의 자체가 사라져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요즘 시어머니들이 정말 힘들어하는 지점은, 예의를 요구하면 "구시대적이다", "간섭이다"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는 것이다. 기본적인 예의와 부당한 간섭은 다르다. 이 둘을 구분할 줄 아는 며느리면 족하다.

4. 속으로 삭히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는 며느리
섭섭한 게 있어도 겉으로는 "괜찮아요"라고 말한 뒤, 뒤에서 시댁과의 연락을 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불편한 일을 남편에게만 전달하면 시어머니는 무엇이 문제인지 알수가 없다.
차라리 "어머니, 사실 그 말씀은 제가 조금 서운했어요", "저희는 이런 방식으로 해보고 싶어요"라며 정중하고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말해주는 며느리가 훨씬 고맙다. 오해를 쌓아두지 않고 대화로 풀어가려는 담대함이야말로 건강한 고부 관계를 만드는 열쇠가 된다.

5. 살갑게 다가와 마음의 문을 여는 며느리
시어머니도 먼저 다가가고 싶다. 하지만 지나치게 친한 척하면 부담스러워할까, 전화를 자주 하면 간섭이라 생각할까 망설인다. 그래서 때로는 말이 없고 무심해 보일 뿐, 마음속으로는 늘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 이 옷 잘 어울리시네요", "오늘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이런 말 한마디가 시어머니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큰 선물이나 거창한 효도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문을 열수 있는 작은 틈이 필요한 것이다.
참고 도서: 가족으로 만나 친구가 되었습니다, 말할 때마다 행운을 부르는 대화법

Copyright © 책책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