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요리하며 중장년 외로움 달래고 마음 나눠요”

김보경 기자 2024. 10. 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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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층 ‘마음건강 프로그램’ 확산
인생 대소사 겪으며 정서적 위기 경험
사회적 고립감·우울감 해소 어려워
휴식·운동·대화 나누기 효과적
지자체, 소통·교류 기회 제공
경북 포항 북구에서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정신건강 증진 프로그램 ‘맛있는 담소’ 모습. 제철 자연 식재료로 함께 음식을 만들어 식사하는 시간을 갖는다. 포항=김도웅 프리랜서 기자

은퇴, 신체적 노화, 어려운 가족관계 등의 이유로 고립감·허탈감·무기력감을 느끼는 중장년층이 늘고 있다. 50대 이상 우울 현상은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사회문제로 대두된다. 우울과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선 개인의 의지와 노력이 가장 중요하지만 혼자 힘으로 부족하다면 정신건강 증진 프로그램에 참여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23일 경북 포항시북구보건소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진행하는 마음건강 프로그램 ‘맛있는 담소’ 현장을 찾았다.

“한주는 어떻게 보내셨어요? 지난주보다 표정이 훨씬 좋으신데요? 오늘은 말린 돼지감자 볶음, 배추말이 완자찜, 수삼냉채를 만들어볼 거예요.”

앞치마를 두른 참여자 15명이 식재료를 다듬으며 대화를 주고받는다. 참여자는 지역에서 우울감을 느끼는 40∼60대로 10월 한달간 매주 수요일마다 채우 자연음식연구소에서 제철 농산물을 활용한 음식을 직접 만들어 나눠 먹는다. 긴장과 불안을 완화하는 가벼운 스트레칭, 마음건강 관련 수업도 함께한다. 이는 음식을 매개로 소통과 교류를 끌어내 중장년층의 사회적 고립을 해소하고 정신건강을 증진하려는 목적이다. 허미경 채식요리전문가의 설명에 따라 한쪽에선 당근을 썰고 다른 한쪽은 양념을 만들며 함께 요리한다. 우울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밝은 에너지로 가득하다. 이들은 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을까. 참여자 김금옥씨(59)는 젊은 시절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고 말한다.

“자식들을 다 키우고 다니던 일도 그만두고 나니 허무감이 들더라고요. 오후 5시쯤 어둠이 내리면 그때부터 시간이 정말 느리게 가요. 특히 가을이 되고 동지가 가까워지면서 밤이 길어지니 더 힘들어요. 이 우울감을 극복해보려고 참여 신청을 했는데 저한텐 큰 행운이죠. 음식을 나눠 먹는 옛 정서가 익숙한 세대라 또래 주민과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고 이야기하는 이 시간이 힐링을 주는 것 같아요.”

중장년층의 우울감은 사회생활을 활발히 하는 젊은 세대가 겪는 우울감과 원인·증상이 달라 제때 대처하기 어렵다. 이유림 포항시북구보건소정신건강복지센터 전문상담사는 “중장년층은 외모·신체 노화, 사회 지위 변화, 자녀의 출가, 부모 사망으로 인한 상실감 등 인생의 대소사를 많이 겪는 시기”라며 “이런 변화에 잘 적응하기 어렵거나 질병, 경제적 어려움과 같은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 더욱 정서적 위기를 경험하기 쉽다”고 설명한다. 중장년층은 정신상담이나 치료에 익숙한 2030세대와 달리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어렵다. 심지어 코로나19로 사회 교류가 단절되며 사회적 고립과 우울을 해소할 탈출구가 거의 없다.

전문가들은 우울과 같은 감정이 느껴지면 그 감정을 알아차리고 휴식을 취하거나 가벼운 운동,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기 같은 활동으로 부정적인 정서를 환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참여자 김영자씨(65)는 “60세가 넘어가니 몸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고 이유 없이 외로움을 느끼곤 한다”며 “그때마다 우울감에 빠지지 않도록 움직이며 그동안 살아온 세월을 긍정적으로 다독이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항시북구보건소에 따르면 지난해 진행한 ‘맛있는 담소’ 프로그램 운영 결과 참여자의 우울 척도가 사전검사 36.1점에서 종료 후 25.8점으로 10.3점이나 감소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15명 모두 우울증 고위험군으로 분류됐으나 프로그램 종료 후 4명은 보통, 3명은 경도 우울군으로 우울감이 낮아진 것을 확인했다.

전국 여러 지방자치단체 등에서도 중장년층의 정신건강을 예방·치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제주시정신건강복지센터에선 9월말부터 매주 금요일 ‘중장년 마음힐링 생활건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수면장애·우울·불안에 대해 알아보고 전신 운동을 통해 몸을 이완한다. 부산 진구 가족센터에선 11월16일 여성 중장년 1인가구를 대상으로 ‘가을빛 동행’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자연 속을 거닐며 내면을 치유하고 사회적 교류를 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중장년심리지원특강을 비롯해 원예치료전문가가 진행하는 꽃꽂이 수업, 중장년 남성을 위한 소셜다이닝(밥상모임) 등 다양한 활동으로 마음건강을 챙길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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