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레바논 국경 지역에서 포착된 파괴와 공포

파괴된 건물 옆을 지나는 어린아이와 여성

BBC가 분석을 통해 레바논의 무장 단체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 벌어진 9개월간의 분쟁으로 인한 피해 규모를 밝혀냈다.

위성 사진, 레이더 영상, 군사 활동 기록을 조사한 결과, 이스라엘-레바논 국경 지역에선 건물 수천 채와 넓은 범위의 토지가 피해를 보았으며, 지역 주민 거의 전체가 피난길에 올랐다.

전면전까지 치닫진 않았으나, 거의 매일 이어진 공세로 인해 이스라엘과 레바논 양측 모두 큰 피해를 입었다.

이번 분쟁은 이스라엘-가자 전쟁 발발 1일 뒤 헤즈볼라가 팔레스타인과 연대한다며 이스라엘 쪽으로 로켓포를 발사하며 시작됐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전례 없는 공격 이후 가자 지구에서 군사적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불이 난 나무에 물을 뿌리는 소방차와 군인들

무력 분쟁 지역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미국 소재 ‘ACLED’가 수집하고 BBC가 분석한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8일~올해 7월 5일까지 양측의 국경을 넘나드는 공격은 총 7491건 발생했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보다 약 5배 더 많이 공격했다.

UN은 이번 분쟁으로 레바논에서만 주민 약 9만 명이 실향민이 됐으며,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민간인 약 100명과 헤즈볼라 전투원 366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또한 UN은 이스라엘에선 헤즈볼라의 공격으로 민간인 6만 명이 피난길에 올라야 했으며, 민간임 10명을 포함해 총 33명이 숨졌다고 덧붙였다.

레바논 남부의 건물 피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세 지역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

데이터 분석 결과 레바논의 국경 지역 마을 60% 이상이 이스라엘의 공습 및 포격으로 피해를 입었다. 7월 10일 기준으로, 파손된 건물은 3200채 이상이다.

미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의 코리 쉐어 연구원이 각기 다른 날짜에 촬영된 이미지 2개를 비교해 건물의 높이, 구조 등이 변한 부분을 살펴 피해 정도를 분석한 결과다.

특히 아이타 엘 샤브, 크파르 킬라, 블리다 지역의 피해가 가장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나며 아이타 엘 샤브에서 어떤 건물이 피해를 입었는지 보여주는 지도

ACLED는 아이타 엘 샤브 지역이 지난해 10월 이후 이어진 최소 299건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식당, 상점 등 시내의 주요 도로를 따라 자리한 건물들은 피해 정도가 특히 컸다.

지난해 12월 5일과 올해 6월 5일 아이타 엘 샤브의 건물 피해 비교

BBC가 만나 본 아이타 엘 샤브의 마제드 테히니 시장은 이곳은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하다”고 묘사했다.

그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 지역에서만 17명이 숨졌으며, 이 중 2명은 민간인이다.

테히니 시장은 지난해 10월 교전이 시작된 이후 가족들을 데리고 아이타 엘 샤브를 떠났으나, 2주마다 한 번씩 돌아온다고 했다. 주로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테히니 시장은 “이 지역을 다시 찾을 때마다 변화를 느낀다. 눈앞에 보이는 파괴된 풍경이 정말 끔찍하다”고 말했다.

“아이타 엘 샤브의 집들은 거의 뼈대만 남아 있다”는 테히니 시장은 “아예 잔해만 남은 집도 있다. 내려앉지 않은 집도 사람이 살 수 없는 상태이긴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테히니 시장은 이 지역의 전력망, 수도 시스템 등 모든 인프라도 파괴됐다면서 “내가 살던 집은 아직 주저앉지 않았으나, 겉모습만 그렇다. 모든 게 망가졌다”고 토로했다.

시내 지역의 피해

크파르 킬라에서 피해를 본 건물의 위치를 보여주는 지도

ACLED에 따르면 크파르 킬라 지역을 강타한 200여 건의 공격으로 도심 지역에 자리한 슈퍼마켓과 서비스 상점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25일 대비 올해 7월 10일 크파르 킬라의 주거 지역 피해

또한 블리다 지역도 지난해 10월 이후 최소 130번의 공격이 이어져 약국은 물론 여러 건물이 파손됐다는 설명이다.

블리다의 건물 피해 위치를 나타낸 지도

주요 서비스 시설, 상점 등이 자리한 도심에서 특히 피해가 두드러진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의 중동 안보 담당 선임 연구원인 버쿠 오즈첼릭 박사는 이스라엘이 국경 지역의 시내를 겨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지역에 헤즈볼라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당국은 이러한 시내 주거지 근처에 (헤즈볼라의) 요새와 땅굴 네트워크가 있음을 증명할 문서화된 증거가 충분하다고 믿습니다.”

오즈첼릭 박사는 이스라엘이 이 지역을 공격하며 헤즈볼라에게 “그곳에 있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면서, 그러나 헤즈볼라가 이 지역을 떠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지금껏 미국이 나서 헤즈볼라가 국경에서 약 4마일(약 6.4km) 정도 떨어진 곳까지 철수하는 등 중간 지점을 찾고자 노력했으나, 헤즈볼라는 이를 거부했죠.”

한편 이스라엘방위군(IDF)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시민들, 이들의 집에 가하는 위협을 제거”하고자 군사적 목표물을 타격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의 화재 피해

한편 이스라엘 북부 지역도 국경 반대편에서 날아든 포탄으로 피해를 보긴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언론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이후 이스라엘에선 건물 1000채 이상이 손상됐다고 한다.

BBC는 IDF와 이스라엘 국방부에 이에 대한 의견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건 토지 파괴다.

BBC는 미국 켄트 주립대학의 헤 인 박사가 제공한 데이터를 통해 국경 지역 공격으로 인한 대형 산불로 피해를 본 토지 규모를 살펴봤다.

인 박사는 공개적으로 사용 가능한 근적외선 및 단파장적외선(가시광선 밖 영역이다) 위성 이미지를 분석해 불에 탄 것으로 의심되는 구역을 식별했다.

이후 위성 사진 및 현지 뉴스 보도와 대조하며 확인 절차를 거쳤다.

이스라엘, 레바논, 이스라엘이 점령한 골란고원의 화재 피해 지역을 표시한 지도

이스라엘과 레바논 모두 엄청난 토지 화재 피해를 입었으나, BBC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골란고원이야말로 가장 큰 화재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했다. 이스라엘의 화재 피해 토지 면적은 55㎢로, 레바논 측은 40㎢로 추산된다.

심지어 ‘이스라엘 자연 공원 관리국’은 최근 그 면적이 87㎢에 달한다고 추산하기도 했다.

피해 패턴을 보면 화재 피해를 본 대부분 지역은 국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 이는 헤즈볼라가 엄청난 양의 비유도 무기를 사용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무기를 국경 바로 근처도 아닌 민간 지역이나 군사 지역을 향해 발사했다.

이스라엘의 미사일 요격용 방어체계 ‘아이언 돔’은 이러한 미사일을 탐지해도 인구가 밀집한 지역에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가 아니면 그냥 그대로 미사일이 날아오도록 놔둔다.

이로 인해 농경지와 산림 지역의 피해가 극심한데, 오즈첼릭 박사는 이 또한 헤즈볼라의 의도라고 설명했다.

“화재에 대해 저들이 사용하는 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혼란과 불안감을 조성해 이스라엘 정부를 압박하려고 하는 헤즈볼라의 의도도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즈첼릭 박사는 현재 민간인 대피 규모는 “이스라엘 입장에선 전례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골란고원의 카츠린 정착촌 사진을 보면 그 피해 규모를 파악할 수 있다. 지난달 초 로켓포 공격 이후 정착촌 자체보다 더 큰 규모의 토지가 불에 탔다.

올해 5월 29일 대비 6월 3일 카츠린의 화재 피해를 보여주는 위성 지도

한편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약 30km 떨어진 크파르 유발 지역엔 현지 위기 대응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농부인 차히 가베이가 살고 있다. 국경 지역에서 피난길에 오르지 않은 몇 안 되는 이스라엘인 중 하나다.

아내와 걱걱 5살, 7살 난 자녀들은 국경에서 불과 몇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이곳을 떠나 벌써 9개월 동안 작은 호텔방에서 지내고 있으며, 가베이는 일주일에 한번 이들을 만난다.

불이 난 나무에 물을 뿌리는 소방차와 군인들

가베이는 이스라엘 북부 지역에서 큰 피해로 이어진 화재를 두 눈으로 목격했다.

“로켓포가 두려워 주민들이 자라나는 초목을 그대로 방치했는데, 봄이 되면서 풀이 모두 말랐다”는 가베이는 “이곳으로 날아오는 모든 무인기, 로켓포, 미사일이 즉시 갈릴래아 지역에서 엄청난 화재를 일으켰다. 이 지역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우리는 불길을 잡고, 화재를 진압하고, 우리의 땅과 생계에 더 큰 피해를 입히지 못하도록 싸워야만 했다”고 덧붙였다.

파편에 맞아 망가진 승용차

사실 이곳에서 위험한 건 화재뿐만이 아니다.

가베이의 이웃이었던 바락, 미라 아얄론은 올해 1월 목숨을 잃었다. 부엌에서 점심을 먹던 중 거실 벽을 뚫고 미사일이 날아든 것이다.

아얄론 부부와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는 가베이는 “같이 자란 사이였다. 그 상태의 시신을 수습하는데 … 내 지인인데 … 정말 쉽지 않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베이 외에도 과일나무를 지키고자 떠나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 다시는 수확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알기에 전체 주민의 약 90%는 이미 피난길에 올랐다.

한편 헤즈볼라는 의견을 묻는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지난 17일 하산 나스랄라 헤즈볼라 지도자는 이스라엘이 “집요하게 민간인을 겨냥하기에” 전투원들이 미사일로 새로운 “정착촌”을 겨냥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스라엘을 향해 만약 탱크가 국경을 넘어 레바논으로 넘어올 경우 파괴해 버리겠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지난 10일 TV 연설을 통해선 만약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협정이 체결될 경우 이스라엘을 향한 공격을 중단하겠다는 기존 약속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다 타버린 잔디밭

백린

한편 BBC가 레바논 내 화재 피해 지역으로 추정하는 토지 40㎢는 대부분 양국 사이의 보안 철책과 그리 멀지 않다.

올해 5월 9일 대비 6월 8일의 레바논 내 국경 근처 화재 피해 지역 위성 사진

레바논의 압바스 하지 하산 농업부 장관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국경선 근처 55개 지역이 이스라엘이 일으킨 화재로 피해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스라엘이 사용한 탄약 중엔 백린도 있으며, 이는 이 지역을 불모지로 만들려는 계획이라고 비난했다. 백린은 산소와 접촉 시 즉시 발화하는 화학 물질로, 피부와 옷에 달라붙으며 심지어 뼈까지 태울 수 있다.

국제 비영리 기구인 ‘휴먼라이츠워치’는 알-부스탄 등 레바논 남부의 여러 인구 밀집 지역에서 백린이 사용됐다고 확인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이스라엘이 “인구 밀집 지역에서 불법적이며 무차별적인 방식으로” 백린을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IDF는 연막을 위한 백린 사용은 “국제 법상 합법적”이라고 반박하는 한편, 인구 밀집 지역에선 “특정 예외를 제외하면” 백린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분쟁 확산 우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월별 공격 횟수를 나타낸 차트

ACLED 데이터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적대 행위는 지난해 10월 8일 이후 그 강도가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최근 몇 달 동안엔 심지어 양측이 주고받는 공격 횟수가 약간 증가하기도 했다.

오즈첼릭 박사는 향후 상황이 더 악화돼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며, 이렇게 되면 헤즈볼라를 방어하고자 이란이 뛰어들어 이스라엘과 직접 맞설 수도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도 낙관적인 어조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모두 이러한 상황만은 피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 모두 의도하지 않은 포격이나 인적 오류, 계산 착오 등을 피하고자 국경 지역에 대해 상당히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파괴된 지역을 담은 위성 사진

추가 보도: 카린 토비, 마이클 슈발, 조야 베르베리, 다니엘 팔룸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