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부적으로 진화한 한국 공포, 〈기리고〉 [콘텐츠의 순간들]

김봉석 2026. 6. 4.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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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고〉의 뼈대는 전형적인 원혼 서사다. 억울하게 죽은 자의 원한이 산 자의 세계를 침범하는 설정은 한국 공포물의 원형이다. 원한은 ‘앱’이라는 형태를 빌려 발현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기리고>의 포스터.ⓒ넷플릭스 제공

4월24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기리고〉는 공개 3일째 글로벌 비영어 시리즈 부문 4위에 진입했고, 2주 차에는 1위에 올랐다. 이후 4개국 1위, 64개국 톱 10 진입, 4480만 시청 시간을 기록했다. 〈기리고〉는 한국 호러의 전통적 문법을 해체하거나 버리지 않고 동시대적 형식으로 정확히 이식하며 글로벌 대중을 사로잡았다. 범죄, 멜로, 좀비에 이어 호러 장르에서도 K콘텐츠가 유효함을 증명한 것이다.

‘기리고’ 앱에 소원을 빌고 이루어지면, 24시간 후 그는 죽는다. 다른 사람이 앱에 새 소원을 빌고 이루어지면 저주가 넘어간다. 장난으로 생각하며 소원을 빌었던 형욱이 끔찍하게 죽자, 친구인 세아와 건우, 하준, 나리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저주를 받은 건우를 살리기 위해 세아와 하준은 처음 ‘기리고’ 앱을 만든 사람을 추적한다.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해 죽은 도혜령, 그녀의 유일한 친구이자 무당의 딸 권시원. 둘의 죽음과 원한이 저주의 기원이다. 이야기의 뼈대는 전형적인 원혼 서사다. 억울하게 죽은 자의 원한이 산 자의 세계를 침범하는 설정은 한국 공포물의 원형이다.

원한은 신체도, 구전도, 종이도 아닌 ‘앱’이라는 형태를 빌려 발현된다. 저주가 디지털 플랫폼을 숙주로 삼게 되면, 공포는 특정 장소나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하루 종일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에 잠복한다. 한국의 〈폰〉과 일본의 〈착신아리〉 등도 핸드폰을 공포의 매체로 활용했지만, 주로 ‘통화’ 기능을 이용한 공포였다. 〈기리고〉는 다르다. 알림, 소원 입력, 카운트다운, SNS 공유 등 스마트폰이 일상에 관여하는 방식 그대로 우리의 삶에 저주가 침투한다. 저주는 더 이상 어두운 학교 복도 끝에 있지 않다. 환한 대낮, 교실 안, 친구와의 대화 도중에도 화면 속 숫자는 줄어든다. 디지털 부적은 그렇게 완성된다.

장르 공간의 진화도 주목할 만하다. 〈여고괴담〉 등 한국 호러영화에서, 학교는 핵심적인 공간이었다. 입시 경쟁, 서열 다툼, 배제와 소외. 학교는 10대가 매일 통과하는 지옥의 다른 이름이다. 〈기리고〉는 호러의 무대로 친숙한 ‘학교’ 공간을 유지하면서, 저주의 이공간(異空間)이라는 다른 층위의 무대를 추가한다. 무속의 세계관이 투영된 이공간은 단순한 어둠이나 지옥이 아니라, 무속적 기하학과 디지털 아키텍처가 뒤섞인 초현실적 공간으로 창조된다.

〈주술회전〉 〈단다단〉 등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익숙한 ‘이공간’의 문법을 〈기리고〉는 꽤 능숙하게 구현한다. 젊은 시청자에게 이공간은 낯선 공포가 아니라 이미 익숙한 장르적 쾌감이다. 거기에 〈기리고〉는 한국 무속의 질감을 더한다. 하준의 누나 하늘은 멀쩡히 회사를 다니다가 갑자기 무당이 되었다. 하준에게 위험이 닥쳤음을 감지한 하늘은 하준을 자신의 영역, 결계로 데리고 온다. 그리고 세아에게 내린 저주를 풀기 위해 함께 이공간으로 들어간다.

현실 공간인 학교가 억압과 폭력의 장이라면, 이공간은 학교는 물론 사회의 억압이 응축되어 폭발하는 장이다. 두 공간은 대립하지 않고 서로를 반영하며, 드라마는 그 사이를 오가는 인물들을 통해 공포의 질감을 겹겹이 쌓아 올린다. 호러영화 태반이 깜짝 효과로 시청자를 놀라게 하는 데 집중했다면, 〈기리고〉는 공간 자체가 내뿜는 기괴한 분위기로 서서히 잠식한다.

실제로 출시된 저주 앱

〈기리고〉는 ‘저주의 전이’를 통해 인간의 민낯을 드러낸다. 살기 위해 저주를 떠넘겨야 한다는 설정은 극한까지 도덕적 선택을 밀어붙인다. 나리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친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혜령과 시원의 관계는 더 복잡하다. 시원은 무당의 딸이라는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 절친 혜령을 배신하고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저주 앱을 만든 것은 기술이 아니라 배신이 가져온 원한과 욕망이다.

<기리고>는 젊은 시청자에게 익숙한 스마트폰 앱을 소재로 인간의 민낯을 드러낸다.ⓒ넷플릭스 제공

〈기리고〉는 단지 10대의 잔혹함만을 그리지 않는다. 질투, 배신, 생존 본능 등은 나이와 무관하게 우리 모두의 내부에 언제나 웅크리고 있다. 〈기리고〉는 원형의 감정을 날것 형태로 꺼내 보이면서 관객이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스마트폰은 단순한 공포의 통로가 아니라, 타인을 파괴하는 폭력의 도구로 이미 우리 곁에 있다는 현실을 폭로한다. 전소영, 강미나 등 젊은 배우들은 처절한 생존 연기를 통해 일본 청춘물의 낭만적 질감과 한국 호러 특유의 잔혹함을 동시에 담아낸다.

마케팅 전략도 작품의 세계관과 맞물렸다. 저주 앱 ‘기리고’를 실제로 출시하여 누구나 앱스토어에서 내려받아 소원을 빌 수 있게 했다. 팬들은 소원을 적고 카운트다운 인증 샷을 SNS에 올리며 마케팅을 하나의 놀이 문화로 만들었다.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모큐멘터리 영화 〈블레어 위치〉가 허구의 마녀 전설이 실재한다는 홍보용 홈페이지를 만들어 대중을 서사 안으로 끌어들인 것처럼, 〈기리고〉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흐리며 공포를 일상으로 연장한다.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스마트폰 화면에 남아 있는 앱 아이콘은, 공포가 스크린 너머에서 내 일상으로 번졌다는 메타버스적 경험을 완성한다. 소원을 빌고 스마트폰을 내려놓았을 때 느껴지는 묘한 잔상은 〈기리고〉의 마지막 공포다.

한국 호러는 학교와 가정 등 일상 공간에 쌓인 한의 정서와 무속 전통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왔다. 이는 〈파묘〉가 증명했듯 세계시장에서도 유효하다. 〈기리고〉는 0과 1로 이루어진 알고리즘이 원한의 새로운 그릇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한의 정서가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통해 재탄생하는 순간, 공포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 내 손에 살아 숨쉬는 현실이 된다. 〈기리고〉는 단순한 청소년 호러물을 넘어, 세대를 겨냥하면서도 세대를 초월하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매일 들여다보는 스마트폰에, 누군가 심어놓은 폭력과 원한이 가장 지독한 방식으로 도사리고 있지는 않을까?

김봉석 (대중문화 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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