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출판사’에서 어엿한 회사로, 출판사 무제의 도전 [2025 행복한 책꽂이]

가히 휩쓸었다고 할 만하다. ‘2025 행복한 책꽂이’ 설문에 응답한 출판인 다수가 무제출판사(이하 무제)를 올해의 출판사로 꼽았다. 신진 출판사 부문도 1위는 무제였다. 2025년 출판계 이슈, 나아가 올해의 책 부문에서도 무제의 영향력을 거론하는 이가 많았다. 일개 출판사의 약진을 넘어 출판계 전반을 흔드는 현상이다.
무제의 흥행몰이 뒤에는 단연 유명한 대표가 있다. 배우 박정민씨가 이곳 대표다. 박 대표가 출연한 출판사 유튜브의 ‘Q&A’ 영상은 2주도 안 되어 조회수 60만 회를 넘겼다. 2025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무제 부스 앞은 방문자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2025년 6월 〈유 퀴즈 온 더 블럭〉(유퀴즈) 출연이 흥행 기점이었다. 11월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가수 화사씨와 함께 축하 무대에 서면서 무제라는 이름은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무제의 인기는 ‘배우 박정민’의 주가와 맞물려 올라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문에 응한 출판인들은 부럽고 놀랍다는 반응이다. 침체된 출판계에서, 작가도 아닌 출판사의 이름이 이 정도로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른 출판사에 없는 대표의 경쟁력’을 원인으로 꼽는 이가 많았다. 내실을 높이 사는 이도 있다. “시도가 참신하고 무엇을 하는지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기획력이 훌륭하고 흥행과 품질의 밸런스를 잘 맞춘다”라는 호평이 나왔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조금 복잡한 감상도 몇몇 보였다. “책만으로 이슈를 만들기 어려운 시대에 유명 배우 출판사의 인기가 허무하게 느껴진다” “동기부여와 자극도 되지만 마음 한편으론 쓸쓸해지기도 한다”라는 답변이 나왔다. “화제성에 부응하는 양서를 기대한다” “어떤 새로운 기획과 필자 리스트를 가져올지 기대된다”라는 ‘관망’ 의견도 여럿 보였다. 무제를 2025년의 출판사로 꼽는 이들은 분명 다수였지만, 그 목소리는 제각기 달랐다. ‘올해의 출판사’ 항목에서 ‘응원과 찬탄’만 보내던 예년 조사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그간 미디어에서 조명되던 ‘배우 박정민의 다른 면모’ 외에, ‘출판사로서 무제’는 어떤 비전을 갖추고 있을까. 무제출판사 김아영 이사를 만났다. 2025년 4월 무제에 합류한 김 이사는 박정민 대표를 제외하면 유일한 직원이다. 입사 후 8개월 동안 김 이사가 “정시 출퇴근할 수 있을 정도로 안 바빴던 건 첫 이틀뿐이었다”. 늘 일을 쥐고 있는 건 박정민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3개월 전부터 공연 연습으로 잠시 자리를 비웠지만, 수시로 김 이사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함께 업무를 처리한다. 이른 새벽, 주말에도 연락이 끊기는 일은 없다. 무제가 폭발적 화제를 모은 분기점은 박 대표의 〈유퀴즈〉 출연이었지만, 이전에도 출판사 일이 여유 있는 날은 없다시피 했다.
박정민 대표처럼 김 이사 역시 출판인 출신이 아니다. 그의 전 직장은 IT 회사다. 무제출판사의 홈페이지를 만드는 일로 협업하다가 박 대표의 제안을 받고 입사했다. 작가에게 원고를 의뢰하는 일은 박 대표와 김 이사 두 사람이 하지만 원고 편집과 디자인은 외주를 준다. 그는 “무제가 아니었다면 출판업계에 들어올 확률은 0%였다. 물론 출판사들 역시 내 경력을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로 원하지 않던’ 업계에 들어오게 된 건 대표와 무제의 방향성에 흥미가 가서였다. “(박정민) 대표님이 5년, 10년 단위 정확한 계획을 보여준 건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아영 이사는 특히 오디오북 출간에 대한 박 대표의 이야기가 와닿았다고 했다. 박정민 대표는 방송에서 “아버지가 사고로 시력을 잃은 뒤 첫 책을 오디오북으로 만들어 선물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지난 4월 무제가 펴낸 〈첫 여름, 완주〉(김금희 지음)는 고민시·김도훈·염정아 등 유명 배우들이 ‘배역’을 맡아 오디오북으로 출간해 화제를 모았다.
무제는 이 같은 ‘듣는 소설’을 시리즈로 펴낼 예정이다. 김아영 이사는 “사실 ‘누군가 원해서 돈이 많이 벌리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직업관이었다. 대표님이 업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세상이 조금 더 좋아지는 일’을 같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박정민 대표가 대외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무제는 도서 판매 수익 일부를 꾸준히 기부하고 있다.
‘배우의 일회성 프로젝트’ 아니다
무제는 어떻게 ‘본격적으로’ 출판에 나서게 된 걸까. 김아영 이사는 질문을 뒤집어, 무제가 ‘본격적으로 출판하지 않았던’ 배경에 대해 말했다. “2024년까지는 대표님이 배우를 확실한 본업에 두고 일했다. 이때는 다른 업계에서 유명한 사람이 와서 출판사를 하는 게 치팅(반칙)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박정민 대표 본인도 매체 인터뷰에서 ‘배우이기에 홍보 기회를 쉽게 얻는 게 ‘반칙’ ‘특혜’처럼 느껴졌다’고 말한 바 있다. 2025년 들어 박 대표 생각이 바뀐 까닭은 ‘작가에 대한 예의’를 위해서였다. 김 이사의 말이다. “2024년 책 〈자매일기〉를 펴내면서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는 게) 원고를 주신 작가님들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여겼다. 다른 회사는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비용과 인력을 들여 철저히 하는데 대표님은 여력이 없었다. 출간 도서의 추천사를 적는 정도에 머무르지 않고 더 열심히 홍보하게 된 계기다.”

‘작가에 대한 예의’는 변명이나 겉치레가 아니다. 무제가 가장 절실했던 때는 〈첫 여름, 완주〉 출간 시기였다. 〈첫 여름, 완주〉는 10만 부를 인쇄해 무제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김아영 이사는 작가에게 공을 돌리는 한편, 내부에서 느낀 책임감도 털어놓았다. “김금희 작가님이라는 이 시대의 작가를 모셔놓고 하루 한두 권 파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른 대형 출판사에서 나왔다면 무조건 베스트셀러일 텐데, 하루 한두 권밖에 안 팔린다면 그건 무조건 우리 책임일 수밖에 없다. (박정민) 대표님이 모든 걸 갈아 넣었다. ‘이 귀한 원고를, 단지 우리가 받았다는 이유로 못 팔면 어떡하나’라는 불안함 때문이었다.”
김아영 이사는 출판사의 두 가지 방향성을 강조했다. 첫째, 무제는 ‘배우의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니다. 다른 출판사처럼 직원을 다수 갖추고, 장기적으로 업을 지속하려 한다. 목표는 “어엿한 회사”이다. 일각의 시선처럼 ‘배우가 부업으로 하는 2인 출판사’가 아니라, “5인 이상이 모여 체계적으로 흘러가는 회사”를 지향한다고 김 이사는 말했다. 무제는 홈페이지에 ‘채용 계획이 없으며, 원고 투고를 받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적어두었다. 회사 주소나 전화번호도 알리지 않는다. 소화할 수 없을 만큼 원고가 들어오고, 갑자기 회사에 들어와 이력서를 건네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규모를 키울 계획이다.
둘째, 무제는 확고한 방향을 견지하고 있다. 소외된 목소리를 사회에 알리는 책을 펴내려 한다. 그간 무제에서 나온 책은 반려동물(〈살리는 일〉), 여성의 독립(〈사나운 독립〉), 자매의 삶(〈자매일기〉) 등을 주제로 삼았다. ‘소외된 목소리를 전하는’ 작업이 모두 〈첫 여름, 완주〉만 한 판매량으로 이어진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1차 목표는 판매 부수가 아닌 정체성 유지라고 김 이사는 말했다. “정체성을 지켜가는 게 우리 출판사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런 책이 잘돼서 많이 팔리면 당연히 좋지만, 단순히 ‘재미만 있어서’ 무조건 100만 부씩 팔리는 책을 내기는 어렵다.”
‘잘 안 팔릴 수도 있는 책’을 주목받게 하는 건 대중적으로 알려진 대표의 이점이다. 그렇다면 이점을 활용하지 않았던 이유인 ‘치팅’에 대한 생각은 정리되었을까. 출판인 설문 속 우려 섞인 감상을 전하자 김아영 이사는 공감을 보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 그간 열심히 좋은 책을 많이 만들어온 입장에서, 다른 업에서 유명해진 사람이 와 화제를 모은다면? 사람들의 관심이 반가우면서도 허탈할 것 같다.” 그 연장선상에서 김 이사는 그간 인터뷰 제안을 고사해왔다고 말했다. “나라면 (이) 인터뷰 기사를 보고 괘씸할 것 같다. ‘그래서 뭐, 일 얼마나 했는데?’라고 말할 듯하다. 그동안 열심히 노력하고 나름 경험치도 쌓았지만 아직도 1년이 채 안 됐다. 출판업에서 이룬 게 없는 사람이 대표가 유명하다는 이유에서 인터뷰하는 게 보기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다만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우리가 이 업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모든 게 좋았을까?”
‘배우가 운영하는 출판사’ 무제가 특이 사례는 맞지만, 유명 연예인과 인플루언서가 추천한 책이 갑작스레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은 드물지 않다. ‘텍스트힙’ 문화와 유명인 마케팅은 서로를 강화한다. 무제는 이 경향을 홀로 주도한 곳이 아니다. 출판 시장의 침체가 낳은 여러 부수 결과 중 하나에 가깝다. 무제를 향한 몇몇 출판인들의 유보적 감상이 ‘비판’이 아닌 ‘허탈함’에서 멈춘 것 역시 이런 배경을 알기 때문이다. 김아영 이사는 크게 흥행한 서울국제도서전에 빗대어 이야기했다. “개인적으로는 몹시 힘들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분이 부스에 찾아오셨다. 사람이 몰리지 않도록 주변을 가렸음에도 길이 막혀 주변 부스와 다른 방문객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다른 출판사에 대한 우리 입장이 늘 그때와 비슷하다. ‘우리가 죄송해하거나 미움받을 일은 아닌데, 주변에서 그렇게 느끼실 수 있겠구나’라는….”
출판계 이슈의 중심이 된 무제의 행보는 어디로 향할까. 2025년은 무제가 본격적으로 출판하기 시작한 해이지만, 동시에 “기준과 목표를 세운 해”이기도 하다고 김아영 이사는 말했다. 다가올 출간 목록은 어느 정도 정해졌다. 내년은 물론 내후년에 나올 책도 일부는 계약되어 있다. 다만 확고하게 정해두기 어려운 영역이 고민거리로 남아 있다.
수익 창출과 가치 추구라는 무제의 두 가지 목표는 상충하기 쉽다. 2025년 박 대표의 ‘공중전’은 둘을 함께 추구하는 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유효할지, 무엇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일지 판단하기 어렵다. 대표 중심 홍보 방식은 언제까지 유지해야 할까? 넘지 않아야 할 선이 있을까? 그 효과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1인 회사, 2인 회사를 넘어선 ‘어엿한 회사’라는 무제의 야망은 사고처럼 닥쳐오는 일에 치이지 않고, 핵심적 고민에 답을 내리기 위한 길이기도 하다. 김아영 이사는 다소 지친 얼굴이었다. 그런데 일이 재밌는지 묻자,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표정이 밝아지며 말했다. “너무 재밌어요. 너무, 너무너무 재밌어요.”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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