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부터 2022년의 과정을 담은 책을 내고, 첫 매장을 열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패션 디자이너의 이야기.

코로나19(COVID-19)로 사라진 관광객이 회복되지 않아 한적한 신사동 가로수길과 압구정동 사이, 오래된 빌라를 개보수한 미색 빌딩 1층에 스테인리스스틸로 마감한 창틀과 탁 트인 쇼윈도가 있는 매장이 있다.

매장 안에는 이제 사용자를 찾기 어려운 슬라이드 필름이 영사기처럼 돌아간다. 하얀 벽면 가장자리에 맺힌 필름의 상(相) 안에는 절벽에 선 채 카메라를 향해 시선을 돌린 여성들 — 모니카 모기(Monika Mogi), 키코 미즈하라(Kiko Mizuhara) 그리고 지빈(Jibin) — 이 서 있다. 채우기보다 덜어낸 흔적이 짙은 공간은 한국의 패션 레이블, 혜인서(HYEIN SEO)가 처음 만든 오프라인 매장이다.
지난 2023년 1월 13일, 계절은 확실히 겨울이었으나 기온만큼은 봄 같았던 저녁, 평소 사람이 많이 들지 않는 골목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유명한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의 창립자들, 자기 음악을 만드는 음악가들, 패션 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들, 사진가와 예술가들이 한데 모여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고 매장 곳곳에 걸린 컬렉션을 유심히 살폈다.
2014년 가을-겨울 시즌, 뉴욕 패션위크의 브이파일즈(VFILES.com) 컬렉션에 참가하며 데뷔한 이래 한국 패션 브랜드로서 혜인서는 독자적인 시각과 스타일로 마니악하지만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유수의 패션 잡지들이 앞다투어 화보에 담아내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패션 어워드 중 하나인 삼성 패션 디자인 펀드(Samsung Fashion & Design Fund)를 수상하고,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와 리아나(Rihanna) 같은 수퍼스타가 옷을 입고 무대에 섰다. 첫 컬렉션이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후 디자이너 서혜인을 서울(Seoul)에서 만났을 때, 그는 원래 패션 브랜드를 낼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좋은 소재를 매일 만질 수 있는 패션 하우스(maison)에 들어가 작업하는 것이 원래의 꿈이었어요.
어찌 보면 ‘강제’로 데뷔한 후 4년 차를 맞이했을 때 — 그러니까 디자이너 서혜인 (Seo Hyein)과 이진호 (Lee Jino)가 여덟 번째 컬렉션을 만들던 무렵과 — 브랜드 설립 10주년을 앞둔 지금은 비슷한 것보다 달라진 것이 많아졌다.
서울과 안트베르펜를 오가던 초기와 달리 완전히 서울에 정착했고, 몇 차례 사무실과 아틀리에를 옮겼고, 그사이 많은 창작자가 이 독특한 패션 레이블의 지지자이자 친구가 되었다. 이와 함께 컬렉션에 드러나는 정서 또한 점진적으로 바뀌어나갔다. 런던 패션위크 기간 중 선보인 2017년 가을-겨울 시즌 '파이널 보스(Final Boss)' 컬렉션을 본 후 나는 이러한 글을 남겼다.
‘2017년 현재 혜인서가 지닌 힘의 원천은 스트리트웨어(streetwear)를 재해석하는 독자적 감각, 사이버 펑크(cyber punk)와 미래주의(futurism)의 결합, 일본 만화(manga)와 비디오 게임(video game) 등 90년대와 2000년대 언저리를 관통한 소년·소녀들이 즐겼을 법한 취향을 함축하여 동시대 여성들, 그리고 그들의 옷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일부 남성들이 입기 좋은 기성복으로 변형하는 작업 그 자체였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스트리트웨어에 기반을 둔 패션 레이블로 이 브랜드를 설명하기에는 괴리가 있다.
1월의 어느 화요일 오후, 조금 반경을 넓히면 금세 시끌벅적해지는 동네를 곁에 둔 혜인서 매장에는 먼저 도착한 긴 장발 머리의 서혜인이 새까만 옷을 입고 매장 안쪽 테이블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프랑스의 선사학 교수 프랑수아 봉(François Bon)이 지은 <보이지 않는 도시에서>라는 책이다. 공식적으로 브랜드의 대표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이진호가 곧 매장 문을 열고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혜인서’는 지금 어디에 있고, 또 어디를 향하는지 궁금했다.

혜인서의 사진집( The Photographs in This Book were Taken by Hyein Seo, Jino Lee and the Team Between 2013 and 2022.)
첫 오프라인 매장을 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초대장(invitation)이었다. 좋은 종이에 인쇄한 잉크의 흔적 대신, 생각보다 두툼한 소포 속에는 800쪽에 달하는 흑백 사진을 모은 한 권의 두툼한 사진집이 있었다. 검정색 린넨으로 감싼 책등과 전면에 쓰인 단어처럼 이 책은 브랜드를 전개하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회고이자 일종의 아카이브였다. 완성된 이야기로 채운 정교한 출판물이라기보다, 브랜드와 컬렉션, 옷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역할에 충실하다고나 할까.

일종의 내부 기록으로서 브랜드와 함께한 사람들의 일상을 담아낸 사진을 정리하니 처음에는 천 장이 넘는 사진이 나왔다. 서혜인은 새로운 매장의 초대장이자, 브랜드의 과거를 가장 밀착하여 담아낸 아카이브의 과정을 남겨두고 싶었다고 했다. “결과물을 완벽하게 낼수록 사람은 괴로운 법이잖아요. 함께 일하는 사람도 괴롭혀야 하고, 일련의 과정 역시 그럴 수 있어요. 그래서 최대한 즐겁거나, 그 (과정) 안의 아름다움을 많이 느끼는 게 저에게는 조금 더 소중한 일이 되었어요. 이 책에는 그러한 과정의 아름다움 같은 걸 담고 싶었어요. 옷 자체보다, 만드는 아름다움이란 게 사람이나 과정 속에 있다는 걸 점점 깨닫게 되는 요즘이에요.”
1월에 문을 연 혜인서 매장의 초대장은 2013년부터 이어진 여정을 2022년에 마무리하는 형식으로 보여준다. 서혜인의 친구이자 함께 작업한 사진가 다솜(Dasom)은 ‘(매장 오프닝의 초대장이니) 입학식인데, 졸업실 느낌이 든다’라고 했다. “끝이 나는데 시작하는 것 같고, 뭉클한 기분 같은 게 잘 표현되었다고 저희끼리 좋아했어요.”

혜인서의 첫 번째 매장 (HYEIN SEO’s First Store)
“한국 시장은 조금 더 조심스러웠어요.” 패션 레이블 혜인서의 경영 전반을 관리하는 이진호는 ‘소비자들의 요구는 꾸준히 있었다’면서, 아직 문을 연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매장에 관해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실질적으로 소비자층이 많지 않다고 느꼈어요. 여러 나라와 도시에 혜인서를 바잉(buying, 구매)하는 매장들도 어찌 보면 도시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특별한 소비자들을 위한 곳이니까요.”
첫 매장을 낸 이유와 ‘10주년’이 꼭 관계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코로나19로 세계가 이전과 완전히 달라지기 이전, 이제 서울에 매장이 생겨도 좋지 않을까 하는 계획은 있었다. 하지만 2020년 이후, 패션은 물론 사람들의 삶이 완전히 달라지면서 ‘오프라인 공간에 매장을 내는 것’보다 소위 코로나19 시기에 ‘어떻게 브랜드를 운영하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그러다 보니 계획보다 매장을 여는 시점이 늦어졌죠. 언제 매장을 열려고 했다기 보다, 사람들이 직접 와서 컬렉션을 보고,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했어요.” 옮긴 지 이제 막 1년이 된 건물과 아주 가까운 건물 지하에는 원래 혜인서의 아틀리에 겸 쇼룸이 있었다. 그들이 서울에 완전히 정착하면서 가로수길 근처로 온 지는 벌써 5년이 됐다.
지금 가로수길은 가장 사람들이 몰리던 시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띤다. 살아 있는 생명처럼 이동하는 도시의 활력이 홍대와 연남동 근처로, 다시 성수동으로, 을지로와 그 주변의 오래된 골목으로 조금씩 변모하며 새로운 공간과 사람들을 창출한다.


매장 건물 2층과 3층에는 혜인서의 사무실과 아틀리에가 있다. 아틀리에는 ‘공방’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고스란히 이행한다. 상주하는 두 명의 제단사와 재봉사 — 디자이너로서 서혜인은 그들에게 꼭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이며 존경을 표한다 — 가 새로운 시즌을 위한 시제품(prototype)을 부지런히 만든다.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은 가봉 상태의 옷을 마네킹에 입힌 후 꼼꼼히 점검한다. 혜인서의 옷에 빠질 수 없는, 손으로 마감한 옷과 장신구의 모든 탄생이 이곳에서 출발한다. 그 방증으로 아틀리에 한쪽에는 수백, 수천 개의 장식을 일일이 손으로 꿰는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와 인턴 직원이 앞으로 완성할 옷의 중요한 디테일을 만들어간다.
오프라인 매장을 만든 데는, 독자 매장과 유통망을 전개하는 방식의 비즈니스 대신 LA와 런던, 도쿄와 뉴욕 그리고 온라인에 속한 다양한 편집매장을 대상으로 브랜드의 ‘실제’ 결과물을 선보이는 방식이 주는 아쉬움도 있었다. 이진호가 말을 이었다. “편집매장이 바잉하는 (혜인서) 컬렉션은 제한적인 부분이 있죠. 혜인서 매장은 전체 컬렉션과 옷 자체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형태로 조금 더 간결하게, 많은 걸 배제한 상태로 매장을 세팅해두었어요. 시즌마다 다른 주제를 다루다 보니, 음악이나 설치 등을 그에 맞추어 가변적으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전달자이자 관찰자로서의 디자이너 (Designer as Communicators and Observers)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취향을 고른다는 건 어떠한 사상, 심지어 정치적인 색까지 포함해서 (브랜드가) 어떠한 선언(statement)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결국 옷을 만든다는 건 이미지를 만드는 일이기도 해요.
“(첫 매장에) 아쉬운 점도 많지만,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한 것 같아요.” 서혜인은 문득 코로나19 이전, 꼼데가르송(COMME des GARÇONS)의 사무실에 방문했던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전설적인 브랜드의 비밀스럽고도 일상적인 공간을 나오면서 그는 꼼데가르송 누아르(COMME des GARÇONS Noir)의 디자이너, 케이 니노미야(Kei Ninomiya)를 마주쳤다. 예의 기다랗게 세운 펑크(Punk) 스타일 헤어에 친절한 미소를 띤 디자이너는 아마도 못다 한 업무를 마치기 위해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그가 본 장면은 사람들이 ‘패션’에 기대하는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공간 또한, 그러한 기대를 충족하기 위한 곳은 아니었다. 패션 디자이너는 디자이너 자신을 보여주는 대신, 옷과 브랜드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이미지를 보여주고 소통한다.
디자인을 하고, 옷을 짓고, 컬렉션의 전체적인 흐름을 조율하고, 항상 정해진 시간과 일정에 맞추어 선보여야 하는 디자이너들이 고객이 몰리는 매장과 업무 공간을 분리해두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러나 서혜인은 디자이너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라는 걸 이제는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했다.

개인으로서, 수줍은 소녀의 모습이 남아 있던 2014년이었다면 아마도 지금 같은 얘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30대 후반이 되어가다 보니, 그래서 좀 더 유연하고 단단해지는 시점이 온 것 같아요. 처음 시작했을 때는 영문을 몰랐고, 중간에 힘든 시절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옷을 디자인하는 기쁨을 느끼고 있어요.”
그는 자신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혜인서의 옷을 실제로 입고 다니는 걸 보는 게 커다란 즐거움이라고 했다. 사람을 많이 만나진 않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을 소설 읽듯이 관찰한다고 덧붙였다. 서혜인은 항상 머릿속에 ‘동시대(contemporary)’를 염두에 둔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꾸준히 유연하게 변해가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취향을 고른다는 건 어떠한 사상, 심지어 정치적인 색까지 포함해서 (브랜드가) 어떠한 선언(statement)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결국 옷을 만든다는 건 이미지를 만드는 일이기도 해요. 그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요.”

브랜드를 새롭게 바라보는 일 (Take a Fresh Look at the Brand)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서혜인이 컬렉션 전반을 관장한다면, 브랜드 설립 10년 차에 가까워진 지금의 이진호는 혜인서라는 브랜드를 운영하는 ‘회사’를 디자인하는 비중이 늘었다. 두 명으로 시작한 브랜드 안에는 이제 스무 명 가까운 구성원이 생겼다.
혜인서의 인스타그램(@hyeinantwerp) 계정에 올리는 사진 한 장부터 매장 인테리어와 함께 바꾼 브랜드 아이덴티티, 새로 단장한 웹사이트 작업 전반이 그의 업무 범위 안에 있다. 브랜드 설립 초기와 달라진 점을 굳이 고르자면, 외부 협력자들과 더 활발한 협업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음악가나 사진가, 모델과 더 소통하면서 함께 재미있는 걸 더 해나가고 싶어요. 내부적으로는 디자인이든 비주얼이든 끊임없이 같이 이야기하고 고민하는 연속이죠. 작년에는 (매장과 사무실, 아틀리에가 있는) 이 건물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많이 고민했어요. 어떻게 동선을 짜고, 어떻게 2층과 3층을 활용하고…. 매장을 연 지금은 남성복 쪽을 조금 더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 컬트 레이블의 오랜 팬이라면, 매장 앞에 단단히 고정한 ‘HYEIN SEO’라는 이름의 오랜 서체 또한 바뀌었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매장과 옷은 물론 라벨과 종이로 만든 태그, 새로운 매장을 알리는 출판물 형태의 초대장과 웹사이트까지 다양한 곳에 그 변화가 스며들었다.

한국의 외국 서적 전문 서점이자, 디자인 스튜디오인 포스트 포에틱스(Post Poetics)의 디렉터 조완(Jo Wan)이 이 중요한 작업에 함께했다. 서혜인은 조완이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혜인서의 새로운 로고는 어떤 면에서 아주 미묘한 변화를 띤다.
“한 번 보면 바뀐 줄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이진호가 덧붙인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바뀌는 패션 하우스수준의 큰 변화를 원한 건 아니었어요. 다만 가독성이 떨어지는 걸 보완하고, 옷에 부착했을 때 문제가 생길 만한 부분을 정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새로운 브랜드 로고의 가장 큰 변화는 — 서혜인의 말을 따르자면 —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특징이 사라진 것이 특징’이다. “(새 로고는) ‘앞으로의 10년’ 같은 거예요. 저 역시 나이가 들고, 그만큼 성숙하고 싶은 부분을 반영하고 싶었어요.”

옷을 보여주는 즐거움, 옷을 만드는 즐거움 (The Joy of Showing Clothes, The Joy of Making Clothes)
2022년도 가을-겨울 시즌 혜인서의 컬렉션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장편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Nausicaä of the Valley of the Wind)>에서 영감을 받았다. 코로나19 상황이 길어지면서 촉발한 자연과 환경 문제들을 상징하는 주제이기도 했다. 매장을 연 날 선보인 케이터링 음식과 음악에도 주제로부터 이어진 요소가 어우러져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지금 혜인서 컬렉션은 여성복과 남성복을 함께 다룬다. 서혜인이 안트워프 왕립 예술 아카데미(Royal Academy of Fine Arts Antwerp) 석사 3학년 과정을 마무리하는 졸업 작품으로 출발한 브랜드의 초기 컬렉션과 비교하면, 변화는 꽤 두드러진다. 그가 항상 즐겨 사용한 공예(craft)에 기반을 둔 디테일이 점점 늘었고, 자연을 상징하는 요소들도 컬렉션과 캠페인 전반에 나타난다. 초기 혜인서 컬렉션을 스트리트웨어(streetwear)와 고급 기성복(high fashion)의 결합으로 표현한다면, 지금은 그 설명만으로 브랜드를 정의하기 어려워졌다.
“졸업 컬렉션은 한 번에 시각적으로 눈길을 끌어야 한다는 목표가 확실했어요. 입었을 때 즐거운 옷이라기보단 보기에 즐거웠던 옷이었죠.” 꾸준히 컬렉션을 선보이면서 옷을 만드는 태도 자체에 변화가 생겼다고 서혜인은 말했다. “옷을 만들수록 우리가 갖고 싶은 옷을 만들게 되거든요. 한 번 보고 사라지는 보여주기식 패션에 환멸감도 들고요. 그래서 (혜인서의) 옷이 점점 더 입기 쉬운 방향으로(wearable) 바뀌어 왔어요.” 반드시 손으로 처음과 끝을 마무리해야 하는 공예 요소를 점점 더 늘리게 된 것은 그가 놓고 싶지 않은 특징이 되었다.

스트리트 쿠튀르(street-couture)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스트리트웨어와 남성복의 테일러링 요소가 중요한 기반을 이루었던 초기 컬렉션과 최신 컬렉션의 달라진 점 중 또 다른 하나는 눈에 띄는 ‘그래픽 디자인’과 ‘슬로건' 같은 요소가 모습을 감추었다는 점이다.
혜인서의 컬렉션은 은연중에 동시대 패션의 한편에서 비슷한 스타일의 룩과 옷의 디자인에 영향을 주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그 반대쪽으로 성큼 발을 내딛기도 한다. 이진호에게 혜인서 컬렉션의 중요한 표현 요소는 변치 않게 고집하는 대신, 변화의 흐름을 유연하게 대처하는 데 있다. “많이 보이는 것들에서 멀어지게 되는 부분도 있어요. 지금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들 위주로 작업하게 됩니다. 훗날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래픽 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운 컬렉션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요.”
Text 홍석우
Photography 박인준
지속 가능한 브랜드, 한국의 ‘독립’ 패션 레이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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