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맞았지만 못다 이룬 꿈 위해 작업을 해요"

원로 고정희 화가

“맨날 이번 개인전이 마지막이어야 하면서 아트페어 3회를 망라해 개인전 10회가 넘는 전시 비용을 아들이 모두 부담했거든요. 근데 이번 전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시가 열릴 때마다 진짜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제 또래 전후 나이먹은 화가들이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들 많은데 저는 아직 그릴 수 있을 만큼 건강하기 때문에 개인전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문득 문득 찾아오는 외로움을 달래고 잊기 위해 꾸준하게 하루를 건너뛰지 않고 작업에 집중했죠. 어디 안 나가고 되도록 그림 앞에 앉아서 작업을 하면 잡념이 들지 않고 외로움도 극복할 수 있어 좋더군요.”

이는 올해 구순에 접어들었고 화업 67년을 맞이한 전남 구례 출생 교육자 출신 원로 서양화가 고정희씨가 2021년 개인전 이후 4년여만에 지난 9월 24일 개막, 오는 27일까지 광주예술의전당 갤러리에서 열고 있는 개인전시에 맞춰 밝힌 소감이다.

작가의 이번 전시는 지원 공모전으로 마련, ‘황혼의 찬란한 여정’이라는 타이틀로 근작 40여점을 출품해 선보이고 있다. ‘인생은 구름 같아요-환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번 전시는 힘에 부칠 나이를 훨씬 넘어섰지만 젊은 작가들 못지 않게 하루 6시간씩 매일 작업하며 예술혼을 불태워온 작가의 예술에 대한 행간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젊은 작가들 또한 매일 6시간씩 작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작가는 70여년 간 그림으로 살아온 일상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했다는 소회를 토로했다.

다행히 대개 나이 먹은 작가들이 손이 떨리거나 해서 그림을 그리지 못하지만 자신은 아직 손이 떨린다든가 하는 게 없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데 감사해 한다. 그가 이처럼 청년 예술가들도 하기 힘든 작업을 6시간씩 하는데는 외로움과 쓸쓸함은 몰론이고, 잡념이 찾아오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귀띔했다.

<@1><@2><@3>이런 작업 패턴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점 역시 잊지 않았다. 동물성이나 기름진 것을 먹지 않고 단백질 많은 것을 즐겨 먹는 등 음식을 가려 먹고 있는데 비교적 소식을 하는 게 건강의 비결이라고 소개했다. 아울러 코로나19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전제한 뒤 집에 갇혀 어딜 나갈 수 없어 하늘만 바라보며 산 적이 있다고도 했다. 작가는 아마 태반 주사를 여섯차례 맞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아팠는데 이렇게 살아나가지고 그렸던 작품들로, ‘인생은 구름같아요-환희’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죠. 저는 그림으로 살아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모란이나 연꽃을 집중적으로 작업을 하다가 창 밖의 구름을 보고 구름 이야기들을 선보여오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적색과 녹색, 흰색 등 칼라를 구사하면서 마치 회오리처럼 돌고 있는 인간 군상을 통해 쳇바퀴도는 듯한 일상을 표현했다. 코로나19 여파가 몰고 온 일상에 대한 변화 투영이기도 하다.

고 원로화가는 전시에 앞서 “어려운 생활 속에 한때는 작품 활동을 중단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자녀들이 성장해 경제적인 도움을 줘서 나 자신이 가슴 속에 갖고 사는 염원을 실현하기 위해 서울과 광주, 외국 등 전시회를 열면서 작품에 전념하다 보니 세월이 구름같이 흘러 인생의 끝자락 노후를 맞게 됐다”며 “아직 숙제를 다 못했다. 관절염을 앓는 등 건강이 좋지 않지만 붓을 놓지 않지 않는 이유다. 지금도 100호 작업을 하는 등 숙제를 하고 있다는 일념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작가는 일찍부터 그림에 입문해 창작활동을 벌였다. 특히 광주사범학교(현 광주교대) 재학시절은 잊지 못한다. 평생 화가로서의 탄탄한 기초를 다진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교수로 기라성같은 ‘여성과 꽃’을 주제로 한, 강렬한 색채화로 국내 화단에 큰 족적을 남긴 전남 고흥 출생 천경자 화가(1924∼2015)와 추상화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전남 화순 출생 강용운 화가(1921~2006)가 재직할 무렵이었다.

그의 회화는 정신적인 방면에서 천경자 화가의 영향을 받고, 기법적인 측면에서는 강용운 화가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사범학교 재학시절 논둑길에서 그림을 그리는 천경자 선생을 처음 뵈었고, 추상은 순전히 강용운 선생의 영향이었다고 한다. 그의 회화들에서 실제 추상기법들이 많이 관찰되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여기다 1997년 독일 카셀도큐멘타에서 출품 작품들을 보며 충격을 받게 된다. 지금까지 자신이 펼쳐왔던 회화들에 대해 자성을 하는 계기가 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작품들이 그만의 회화적 골격을 갖추는 밑바탕이 됐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어쩌면 그에게는 미술인생에 크나큰 행운이었을 터다.

굳이 여류로 규정하는 일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발상이지만 그는 지역 여류 화단에서 최고참으로 통한다. 미술사가 조인호씨가 늘 자신을 포함해 목포 최초 여성 서양화가인 고 김영자 화가와 광주살레시오여고 교사를 역임한 고 임막임 화가(광주여성작가협회 창립멤버)를 지역 3대 여성화가라고 하는 말하는 것도 들었지만, 그 말에 개의치않고 자신의 회화인생을 잘 마무리하는데만 신경을 쓸 계획임을 잊지 않았다.

<@4><@5><@6>그의 작품들은 서양화이면서 한국적인 느낌이 발산된다. 부드러운 색을 여러 번 칠해 물체의 느낌을 표현한다. 다섯 차례 정도에 걸쳐 이같은 작업을 반복해 색상과 형태를 만들어가는 여정을 기꺼이 감수한다. 그러다보니 화면의 물상들이 튀지 않고 차분하게 다가온다는 게 특징이다. 더욱이 변색되는 아크릴 대신 수백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유화를 사용한다. 이는 자신의 예술혼이 오랫동안 바래지 않고 살아 꿈틀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쉽지 않은 작업기법을 구사하면서도 그림을 그리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는 일에서 행복을 얻기 때문이다.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뒤 미술학원을 열어 후학들을 키워냈다. 그만큼 그에게 생계의 파고는 높았다. 하지만 그는 늘 창작이 정신적 본업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개인전과는 인연이 쉽게 닿지 못하다가 1990년 그의 나이 55살을 맞아 늦깎이로 첫 개인전을 열 수 있었다. 그동안 유럽을 비롯해 미국과 일본, 서울, 광주 등 국내외에서 열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아트페어를 망라해 다수 단체전에 참여해왔다.

그는 한때 광주전남여성작가회 회장으로 활동할 당시 전국여성작가전을 광주시립미술관에 유치했고, 지역 여성작가들의 활동반경을 일본 등 해외로까지 확대하는 발판을 다지기도 했다.

2012년 전시에서는 모란이나 연꽃을 집중적으로 작업하는 한편, 불로초 위주로 그림을 작업해 선보인데 이어 창 밖의 구름을 보고 작업한 구름 이야기들이 대거 출품해 선보인 바 있다.

한편 작가는 작업실에 총 300여점을 소장 중인데 적지 않은 나이인 관계로 시간이 얼마나 더 주어질 모르지만 추후 여건이 맞으면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광주시립미술관 등 공적 영역의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할 계획도 내비쳤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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