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애순이 엄마의 사망 원인, 숨병의 정체는?

요즘 많은 분들이 제주도 배경의 따뜻한 가족 이야기로 화제가 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시청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28살 나이로 갑작스럽게 죽은 애순이의 엄마의 삶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녀의 사망 원인으로 등장한 ‘숨병’이라는 단어는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과연 숨병이란 무엇일까요?

‘숨병’은 단순한 의학적 진단이 아닙니다. 제주도 해녀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특유의 질환 개념이며, 제주 방언으로 ‘숨을 쉬기 힘들어지는 병’을 뜻합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단순한 호흡 곤란이 아닌, 해녀라는 직업의 환경, 여성으로서의 역할, 공동체 내의 정서가 깊게 깔려 있습니다.

숨병은 해녀들에게서 발생하고, 해녀는 ‘잠수’를 하니 ‘잠수병’으로 오해되기 쉽습니다.하지만 숨병은 단순히 잠수를 해서 생기는 병이 아니라, 육체적 피로와 함께 누적된 심리적 고통, 감정 억압, 공동체 속 소외감 등이 쌓여 발생하는 전통문화 속 질환 개념입니다.
반면, 잠수병은 과학적 원리로 설명 가능한 기체 물리학에 따른 결과로, 병의 성격 자체가 전혀 다릅니다.

해녀는 매일 바다에 들어가 수심 깊은 곳까지 잠수하여 조업을 합니다. 숨을 오래 참는 ‘나잠’(무호흡 잠수)을 반복하면서, 육체적으로 극한의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물속에서의 압박, 바깥과의 기온 차, 그리고 해녀 노릇을 병행하면서 겪는 가족과 사회의 갈등, 그 모든 심리적·신체적 부담이 복합적으로 쌓이면서 숨이 차고, 가슴이 뻐근하고, 때론 실신에 이르기도 하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이런 상태를 제주 해녀들은 예로부터 ‘숨병’이라 불러왔습니다.

숨병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특별한 신체적 이상은 발견되지 않지만 심한 호흡곤란과 가슴의 압박감을 호소함

2. 과호흡 증후군과 유사한 양상을 보이지만, 더 깊은 문화적·정서적 맥락이 있음

3. 주로 해녀들에게 발생하며, 젊은 세대보다는 고령의 여성 해녀들에게 많이 나타남

4. 증상 외에도 ‘억울함’, ‘소외감’, ‘사회적 압박감’ 등이 내면에 자리 잡고 있음

단순히 홧병처럼 ‘속이 타고 억울해서 생긴 병’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홧병이 말 못 할 분노와 울분에서 기인하는 반면, 숨병은 직업적 위험성과 육체적 한계,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적 고립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숨병은 현재 학계에서 정식 질병 코드로 분류되어 있지는 않지만, 의료 인류학이나 민속학, 여성학 분야에서 깊이 다뤄지는 주제입니다. 특히 고령의 해녀가 줄어들면서 이 병도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이는 단순히 질병의 소멸이 아니라 한 시대 여성의 삶과 고통이 잊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이 엄마가 숨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설정은, 제주 여성의 고된 삶과 해녀라는 직업의 그림자를 조명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해녀의 고단함은 단지 육체적 노동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감정을 억눌러야 했던 여성들의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숨병은 단순한 병이 아닌 역사적, 문화적 상징입니다.

누군가의 건강은 단지 몸의 상태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과 마음의 상태, 그리고 사회적 관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말 없이 참는 것, 버티는 것만이 미덕은 아닙니다. 더 이상 ‘숨’이 병이 되기 전에, 우리는 서로의 삶을 더 세심히 살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