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삼성전자는 왜 나홀로 '혹한기'를 맞았나
파운드리 부진에도 이재용 회장 "사업 분사 관심 없다"
4분기도 어렵지만…인사·조직개편 등 대대적 쇄신 전망
지난 11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필리핀·싱가포르 출장을 마치고 귀국했는데요. 이날 이 회장은 언론과 만났지만, 굳은 표정을 유지하며 질문에도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최근 논란이 된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위기설과 이에 대한 해결 방안, 하반기 대규모 인사 계획 등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지만 어떤 답도 내놓지 않았죠.
계속되는 위기론
이 회장의 굳은 표정은 현재 삼성전자의 상황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최근 업계에서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 지연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적자 등으로 삼성전자를 둘러싼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입니다.
삼성전자가 지난 8일 공개한 3분기 잠정 실적은 매출 79조원, 영업이익 9조1000억원입니다. 전 분기 대비 매출은 6.6%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2.8% 감소한 수준인데요. 특히 이는 낮아진 증권사 컨센서스(전망치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며 시장에 실망감을 안겼습니다. 최근 한 달 사이 컨센서스가 20% 이상 떨어졌는데도, 이보다 낮은 수준이었기 때문이죠.
이날 삼성전자는 실적 부진의 원인으로 반도체를 꼽았는데요. 인센티브 충당 등 일회성 비용 영향과 비우호적인 환율 영향에 따라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디바이스 솔루션) 부문의 실적이 하락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적 발표 이후 증권사들은 DS부문의 실적 추정치를 내놨는데요. 실적 발표 이후 나온 16개 증권사 보고서를 종합해보면, DS부문 영업이익은 약 4조1000억~4조2000억원 수준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제 16개의 증권사 중 대부분이 4조원대 초반의 영업이익을 예상했죠.
이중 가장 낮은 영업이익(3조4000억원)을 제시한 상상인증권은 삼성전자의 목표 주가도 8만5000원으로 하향 조정했는데요. 엔비디아향 HBM3E 공급 시기가 연내 불투명하고, 비메모리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실제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은 주축인 메모리 사업이 일회성 비용 탓에 다소 주춤한 것도 있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와 시스템LSI 사업부의 적자 폭이 늘어난 것도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송명섭 iM증권 연구원은 "실적이 예상치를 하회한 것은 2조원에 이르는 특별상여금 충당금 및 일회성 비용과 함께, 비메모리(파운드리·시스템LSI) 부문 실적에서 엑시노스 3나노 생산 차질에 따른 비용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위기의 비메모리
가장 높은 영업이익을 제시한 곳은 현대차증권이었는데요. 현대차증권은 DS부문이 3분기 5조1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16개 증권사 중 영업이익 추정치가 5억원이 넘은 것은 현대차증권이 유일합니다. 다만 그러면서도 현대차증권은 삼성전자가 3분기뿐 아니라 4분기에 이어 내년까지도 전망이 밝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는데요.
노근창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3분기 실적을 발표한 마이크론 등 경쟁사들과 비교해서 지나치게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것은 부정적"이라며 "전통적으로 재고조정과 완제품 관련 마케팅 비용이 증가하는 4분기에도 경쟁 업체들 대비 부진한 실적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어 "엔비디아로 HBM3E 공급이 늦어지고 있고, 파운드리 사업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산업 평균 대비 부진한 흐름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죠.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 또한 4분기 실적 부진을 예측했습니다. 이 연구원은 "비메모리의 일회성 비용은 막대한 투자에도 장기간 성과를 내지 못한 프로젝트 및 사업에 대한 정리가 시작되면서 드러난 문제"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실적에 부담이 됐던 비메모리 분야의 일회성 요인이 과연 정말 일회성일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며 "3분기 일회성 비용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4분기에도 추가적인 손익 조정이 진행될 것"이라고 관측했죠.
실제 삼성파운드리는 지난해 2조원이 넘는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됩니다. 올해 역시 수조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요. 현재 업계에서는 엔비디아, AMD, 퀄컴, 애플 등 '빅테크'들이 삼성파운드리에 주문을 한 건도 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삼성파운드리의 수율(웨이퍼당 결함이 없는 합격품이 나오는 비율)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죠.
이에 1위 업체인 대만 TSMC와의 격차도 점차 벌어지고 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파운드리 매출 점유율은 TSMC가 59%, 삼성은 10%에 불과했고요. 나아가 올해는 TSMC의 점유율이 더욱 높아져 격차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이재용 회장이 5년 전 파운드리에서도 1위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과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는 것이기도 한데요. 이 회장은 앞서 2019년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을 선언하며 2030년 시스템 반도체 1위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이를 위해 파운드리 등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만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하기로 했고요. 지난 2021년에는 기존 계획에 38조원을 더해 총 171조원을 투입한다고 밝히기도 했죠.
하지만 이 회장은 최근 파운드리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는데요. 지난 7일 로이터통신은 이 회장이 "(파운드리·시스템LSI) 사업을 분사하는 데 관심이 없다"며 "우리는 (파운드리) 사업의 성장을 갈망(Hungry)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간 끊임없이 제기됐던 두 사업의 분사 가능성을 일축한 것인데요. 이 회장이 파운드리 사업 분사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반도체 위기, 경영진이 책임질까
이에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이번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대적인 사업 쇄신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DS부문의 비주력 사업인 LED(발광다이오드)에서 철수하는 것이 대표적이죠.
또 해당 인력을 향후 전망이 좋은 전력반도체(CSS) 등에 재배치해 사업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시장 진입이 늦어져 큰 타격을 입은 HBM과 같은 사례를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겠죠. 이와 함께 파운드리 사업부 인력을 메모리 사업부로 재배치하는 방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올 연말 인사에도 관심이 쏠리는데요. 일각에서는 이번 인사에서 삼성전자는 DS부문의 임원을 대폭 줄일 뿐 아니라, 메모리·파운드리·시스템LSI 사업부장과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사장단을 대거 교체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부회장)이 3분기 실적 발표 이후 내놓은 '반성문'에서도 이러한 의지가 드러났는데요. 전 부회장은 사과문에서 "많은 사람이 삼성의 위기를 말하는데, 이 모든 책임은 사업을 이끌고 있는 저희(경영진)에게 있다"며 "위기 극복을 위해 경영진이 앞장서겠다"고 언급했습니다. 연말 대대적인 인사와 조직 개편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데 무게가 실리는 이유죠.
삼성전자는 통상 12월 초에 사장단과 임원 인사, 조직 개편을 순차적으로 단행합니다. 지난해에는 예년보다 일주일가량 앞당긴 11월 말에 인사를 한 바 있고요. 올해는 연말 인사 속도가 더 빨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사과문을 통해 '위기 의식'과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 회복에 대한 의지'를 밝힌 삼성전자가 향후 HBM에 대한 과잉 투자보다는 기술 리더십 탈환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파운드리 사업의 재정비를 통해 과거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빠른 추격자)로써의 명성을 되찾아가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요. 삼성전자가 시장 기대에 부응할 만한 혁신적인 쇄신을 이뤄낼 수 있을지 지켜보시죠.
백유진 (by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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