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하고 삼십 년이 넘도록 통장은 남편이 관리했습니다. 물어보면 늘 알아서 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그런데 지난달 어느 날 갑자기 비밀번호를 적어 건네주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지만 별말이 없었습니다.

종이에 번호만 적혀 있었습니다
식탁에 놓인 종이에는 숫자 네 자리가 적혀 있었습니다. 옆에는 은행 이름과 계좌가 함께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 그냥 알아 두라고만 했습니다. 그 말투가 평소와 조금 달랐습니다. 그날은 더 묻지 않고 종이를 서랍에 넣어 두었습니다.

며칠 뒤 병원 봉투를 보았습니다
세탁물을 정리하다 겉옷 주머니에서 봉투가 나왔습니다. 며칠 전 날짜가 찍힌 검사 예약 안내였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 그제야 이해되었습니다. 큰일은 아니라고 나중에 이야기했습니다. 다만 미리 알려 두고 싶었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날 저녁 같이 서랍을 열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서랍의 서류들을 함께 꺼냈습니다. 보험과 연금 서류가 어디 있는지 하나씩 확인했습니다. 삼십 년 만에 처음 해 보는 일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정리가 잘 되어 있어 놀랐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려면 늦는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그 뒤로는 한 달에 한 번 같이 통장을 봅니다. 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잔고를 확인하는 정도입니다.그런데 그 시간이 생기고 나서 마음이 훨씬 편해졌습니다. 상속이나 세금처럼 복잡한 부분은 전문가와 상의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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