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안 낳는 세상’ 만든 범인 따로 있었다… 전 세계 출산율 박살 낸 ‘스마트폰’
美 연구진 “스마트폰 확산이 출산율 하락 33~52% 설명”
대면 만남 줄고 성관계 감소…128개국서 유사 흐름 관찰
“주거비·양육비만으로 설명 안 되는 변화 있었다”
미국에서 출산율 급락을 이끈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스마트폰 보급이 지목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집값과 양육비, 경기 침체 등 경제적 요인에 가려졌던 스마트폰의 사회적 영향이 실제 출산율 하락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14일(한국시간) 미국 CNN에 따르면 미국 미들버리대학과 전미경제연구소(NBER) 소속 연구진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2007년을 미국 출산율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지목했다. 공교롭게도 2007년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해이자 애플이 첫 아이폰을 출시한 해다.
미국의 일반출산율(가임 여성 1000명당 출생아 수)은 2007년 이후 현재까지 약 22% 감소했다. 연구진은 이 같은 하락세가 경기 상황이나 피임약 보급, 주거비 상승, 보육비 증가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분석 결과 주민의 90% 이상이 초기 아이폰을 접한 지역은 네트워크 보급이 미미했던 지역보다 출산율 하락폭이 유의미하게 컸다.
특히 젊은 층에서 차이가 두드러졌다. 15~19세 출산율은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았던 지역에서 26% 감소했지만 보급률이 낮은 지역에서는 14% 감소하는 데 그쳤다. 20대 출산율 역시 각각 15%, 10% 감소했다. 30대의 경우 스마트폰 보급이 빠른 지역에서는 소폭 하락했지만 보급이 느린 지역에서는 오히려 상승했다.
연구진은 초기 스마트폰 확산이 당시 미국 일반출산율 감소를 설명하는 주요 변수 가운데 하나라고 분석했다. 연구진 추산에 따르면 스마트폰 보급은 2007~2011년 미국 출산율 하락분의 약 33~52%를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스마트폰이 단순한 통신기기를 넘어 인간의 대면 접촉과 사회적 관계 형성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실제 미국 전국 단위 설문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스마트폰 이용 확대 이후 대면 상호작용은 감소하고 온라인 음란물 이용은 증가했으며 성관계 빈도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케이틀린 마이어스 보고서 대표 저자는 "출산율 하락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엉뚱한 곳에 정책 역량을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라며 "인간의 대면 상호작용을 어떻게 촉진할 것인지도 중요한 정책 과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결과는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한 후속 연구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연구진이 세계은행 자료를 활용해 128개국의 스마트폰 보급률과 10대 출산율 변화를 분석한 결과 의료 체계와 복지 수준, 종교, 임신중지 관련 법률, 경기 상황이 서로 달라도 비슷한 시기에 출산율 변화가 관찰됐다. 연구진은 스마트폰이 전 세계적으로 거의 동시에 확산된 점에 주목하며 공통 요인 중 하나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07년 1.26명에서 2010년 1.23명을 기록한 뒤 하락세를 이어갔다. 2018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0명대인 0.98명을 기록했고, 2023년에는 0.72명까지 떨어지며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0.75명으로 소폭 반등했지만 여전히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같은 기간 스마트폰 보급은 급속도로 확산됐다. 아이폰이 국내에 처음 출시된 2009년 이후 스마트폰 가입자는 수년 만에 수천만명 규모로 증가했고 현재는 사실상 전 국민이 사용하는 기기로 자리 잡았다.
다만 이번 연구는 미국 사례를 분석한 것으로, 한국에서도 스마트폰 확산이 출산율 하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는 별도의 검증이 필요하다.
그동안 한국의 저출생 원인으로는 높은 주거비 부담과 사교육비, 양육 부담, 고용 불안, 결혼·출산에 대한 가치관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지목돼 왔다. 이번 연구는 여기에 스마트폰으로 인한 사회적 관계 변화 역시 하나의 변수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다만 연구진 역시 스마트폰이 출산율 하락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주거비와 양육 부담, 고용 여건, 가치관 변화 등 기존에 지적돼 온 요인들도 여전히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권준영 기자 kjykj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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