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 물결이 펼쳐지는 5월 경주, 추천 여행지는?

경북 경주는 도시 전체가 ‘지붕 없는 박물관’입니다.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동궁과 월지, 대릉원. 도시 곳곳에 신라 천년 고도(古都)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보여주는 유적과 풍경이 넘칩니다. 그렇다고 경주에 가서 이런 문화유적만 보고 오기는 아쉽습니다. 이맘때만 찾아볼 수 있는 경주의 색다른 풍경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봄이 가기 전에 놓치면 아쉬운 경주의 보석 같은 여행지를 찾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정책주간지 K-공감'에서 확인하세요!


5월 경주
초록 물결이 넘친다
경주 분황사와 황룡사지 일대에 펼쳐진 청보리밭, 5월 초까지 초록빛 장관이 펼쳐진다. 사진 C영상미디어

봄이 무르익은 이맘때 경주에서 가장 먼저 향할 곳은 분황사입니다. 분황사는 국보로 지정된 탑으로 유명한 경주의 대표적 명소 중 한 곳입니다. 그러나 4~5월 분황사의 보물은 따로 있습니다. 분황사 앞을 초록으로 물들인 청보리밭입니다.

청보리밭은 분황사와 황룡사지 주변까지 넓게 펼쳐져 있는데 그 면적이 4만㎡에 달합니다. 경주시가 관광객에게 계절마다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봄에는 청보리와 유채꽃을, 가을에는 코스모스나 메밀꽃 등을 심습니다.

어느새 어른 무릎보다 자란 청보리는 4월 말이면 허리까지 자라 5월 초까지 절정의 초록빛 장관을 선사합니다. 5월 말이면 누렇게 익은 보리를 수확하기 때문에 싱그러운 경주의 청보리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는 않습니다. 분황사에서 황룡사지까지 청보리밭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바람에 청보리가 흔들리는 풍경과 소리에 집중해보길 권합니다. 잠시나마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힐링의 시간을 즐길 수 있습니다. 청보리밭에선 인생사진을 남기기에도 더없이 좋습니다. 이미 사진 명소로 이름나 웨딩사진을 찍는 커플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청보리밭을 걷다 보면 자연스레 천년의 유적도 만날 수 있습니다. 청보리밭 사이 우뚝 선 한 쌍의 돌기둥, 구황동 당간지주(幢竿支柱)입니다. 이 당간지주는 분황사에 있던 것으로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간은 사찰의 행사를 알리기 위한 당(幢)이나 번(幡)이라는 깃발을 매다는 깃대인데, 이를 지탱하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합니다. 이 당간지주에는 특이하게 거북 모양의 받침돌이 있어 자세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좌) 고목으로 둘러싸인 분황사 모전석탑 (우) 황룡사역사문화관 설치된 황룡사 9층 목탑 모형. 높이 80m짜리 목탑을 10분의 1크기로 복원했다. 사진 경주시

청보리밭 너머 광활한 빈터는 황룡사지입니다. 비록 터만 남았지만 그 규모가 상당합니다. 신라 진흥왕 때 공사를 시작해 선덕여왕 때 완공된 황룡사는 동서로 288m, 남북으로 281m에 달했습니다. 불국사의 8배에 달하는 동양 최대 사찰로 위상을 떨쳤다고 전합니다. 높이 80m가 넘는 9층 목탑도 자랑거리였지만 고려 때 몽골군의 침략으로 모두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황룡사의 역사와 옛 모습은 황룡사역사문화관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10분의 1 크기로 복원한 황룡사 9층 석탑 모형과 황룡사의 역사를 담은 3차원(D) 영화 등을 상영합니다.

돌아가는 길에 분황사에 들러 모전석탑까지 눈에 담으면 금상첨화입니다. 초록잎 무성한 고목으로 둘러싸인 분황사는 다른 곳보다 봄이 깁니다.

|겹벚꽃 아래 낭만적인 산책길

분황사에서 신라왕경숲을 지나 보문교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명활성이라는 안내판이 보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남산·월성·대릉원·황룡사·산성 등 다섯 지구 중 산성 지구에 해당하는 곳이지만 명활성이라는 이름이 낯선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명활성은 신라시대에 축조돼 수도를 방어했던 산성으로 현재 일부가 복원돼 있습니다.

명활성을 찾은 숨은 이유가 있습니다. 명활성 입구에서 진평왕릉으로 가는 둘레길 때문입니다. 선덕여왕길이라고 이름 붙은 이 길은 황복사지를 지나 선덕여왕릉까지 이어지는 총 6.1㎞ 코스의 일부입니다. 명활성 입구에서 진평왕릉까진 1.8㎞로 가볍게 걸을 만합니다. 숲머리마을 뒤편 둑을 따라 이어지는 이 길은 봄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숨은 명소입니다. 4월 중순부터는 핑크빛 겹벚꽃이 만발합니다. 겹벚꽃은 개화 시기가 일반 벚꽃보다 2주 정도 늦습니다. 서둘러 진 벚꽃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줍니다. 중간중간 쉬어가기 좋은 의자와 포토존이 마련돼 있어 인생사진을 남길 수 있습니다. 둘레길을 걸을 때 내려다보이는 한옥마을은 보문숲머리 먹거리촌입니다. 한정식, 한우물회, 석쇠구이, 막국수, 순두부 맛집과 분위기 좋은 카페가 모여 있습니다.

겹벚꽃이 만발한 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진평왕릉’이 보입니다. 진평왕은 신라 제26대 왕이자 선덕여왕의 아버지입니다. 진평왕릉은 밑둘레 10m, 높이 7m로 다른 왕릉에 비해 규모가 소박합니다. 으레 왕릉에서 볼 법한 문인상, 무인상, 호석, 돌난간, 도래솔(무덤을 둘러싼 소나무)도 없습니다. 왕릉을 둘러싼 건 오래된 크고 작은 고목과 이름 없는 들풀뿐입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경주 시내에 있는 155개 고분 중에서 왕릉으로서의 위용은 잃지 않으면서도 소담하고 온화한 느낌을 주는 고분은 진평왕릉뿐이다’라고 썼습니다. 소담하고 온화한 느낌 때문일까요. 다른 왕릉과 달리 조용히 소풍을 즐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돗자리를 펴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얼굴에 여유가 넘칩니다. 소풍이 아니라도 비밀의 숲 같은 왕릉 주변을 걷는 것만으로도 좋은 계절입니다.

LED 장미와 수국, 연꽃 조형물이 어우러진 '빛누리정원'. 사진 C영상미디어

일몰 시간이 다가오면 황성공원으로 가야 합니다. ‘빛누리정원’에서 펼쳐지는 빛의 향연을 감상하기 위해서입니다. 빛누리정원은 2020년 12월에 문을 연 국내 최대 규모의 발광다이오드(LED)테마꽃정원입니다. 4920㎡ 면적에 커다란 연꽃 조형물을 중심으로 LED 장미 1만 405송이와 LED 수국 1만 5780송이가 설치돼 있습니다. 꽃들의 향연은 일몰 후 시작됩니다. 클래식, 가곡, 가요에 맞춰 장미와 수국 색이 달라지는 라이트쇼가 펼쳐집니다. 향기 없는 꽃이라도 누구나 반할 만한 장관입니다.

|'감포깍지길'을 아십니까

요즘같이 날씨가 좋을 때는 경주의 바다도 추가해볼 만한 여행 옵션입니다. 감포항까지는 보문관광단지에서 차로 30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감포항에서 해돋이 명소로 이름난 송대말등대나 한적한 감포해수욕장, 문무대왕릉까지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습니다.

감포항을 따라 조성된 해안둘레길도 천천히 걷기 좋습니다. ‘감포깍지길’이라고 이름 붙은 해안둘레길은 사람과 바다가 깍지를 낀 길이라는 뜻입니다. 혼자가 아닌 둘이 깍지를 끼고 걷기 좋은 길입니다. 특히 4구간에 해당하는 해국길은 깍지를 끼고 걸어야만 하는 좁은 골목길이 이어집니다. 감포공설시장 건너편에서 시작되는 해국길은 1920년 개항 이후 일본인이 거주하던 지역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적산가옥과 옛 창고, 술집, 목욕탕, 우물, 신당 등이 남아 있습니다. 근대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골목길을 따라 크고 작은 해국을 그린 벽화가 이어집니다. 감포항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해국계단길은 커다란 해국이 그려져 있어 이 길의 하이라이트로 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