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복지’라는 말로 정책 꾸미기? [임보 일기]
“동물복지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이 질문을 자주 한다.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까? 제각각이다. “동물이 행복한 것” “동물에게 지켜야 하는 최저선” 등 다양한 답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동물복지’를 하나로 정의하기란 학자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동물복지’라는 말은 애니멀 웰페어(animal welfare)의 번역어다. 웰페어가 ‘복지’로 번역되는 바람에 한국의 맥락에서 복잡해졌다. 복지는 한국 사회에서 마치 위정자가 ‘시혜’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늘 달성하지 못해 싸워야 하는 어떤 것이니까. 심지어 그걸 동물에게 적용한다는 것이, 여전히 동물과 경쟁하려는 사람들에겐 억울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니까.
동물복지학계에서 통용되는 개념은 존재한다. ‘동물이 경험하는 정신적·육체적 삶의 질과 그 정도’이다. ‘경험’한다는 것은 살아 있고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니까 동물복지는 이미 죽은 동물과는 무관하다. 죽은 동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동물복지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정신적·육체적 삶의 질’ 둘 다 포함해야 한다. 잘 자라고 잘 먹고 잘 싸는, 육체적인 것만 고려하는 관점은 동물복지의 반도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의 행복지수를 매길 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행복의 기준을 생각해보면 정신적 삶의 질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다만 동물의 정신적 삶의 질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에 대한 장벽이 현실에 존재한다. 한국 땅에 사는 다수는 그런 걸 상상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다. 특히 직업적으로 가장 보수적인 관료들은 ‘동물복지’를 다루어야 한다는 여론에 밀려 이래저래 정책에 적용해보지만 사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모른 채 아무 데나 갖다 붙이고 있다. 동물화장장 정책도, 동물사료 개발도, 유기동물보호소 건설도 동물복지 정책 예산으로 넣는다. 동물복지가 뭔지 모르겠는데 뭐라도 해야겠으니 실재하는 동물의 삶의 질과 별 상관없는 것들을 뭉뚱그린다. 동물보호법을 동물복지법으로 바꾸겠다는 선언의 이면에서 어떤 내용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불안하다.
반면 동물복지가 꼭 필요할 때에는 ‘동물복지’라는 말에 일종의 ‘공포’를 느끼는 것 같다. 예컨대, 환경부는 ‘백색 목록’에 포함되는 종의 평가 기준을 정하면서 이미 들어 있던 기준인 ‘동물복지’를 제외하고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백색 목록’이란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 개정으로 개인이 기르거나 소유하거나 유통할 수 있는 야생동물종을 특정하고, 그 외에는 수입 단계부터 막는 제도다. 물론 외국에서 야생동물이 수입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생태교란, 인수공통감염병 전파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동물복지, 즉 수입된 야생동물이 한국의 사육 상태에서 잘 살 수 있느냐도 주요하게 다루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환경부는 ‘동물복지’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며 ‘백색 목록’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발을 뺀다. 동물복지 평가는 이미 해외에서 많이들 하고 있는데 말이다.
역시 새로 개정된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수족관법)’의 하위 법령 마련 과정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동물원과 수족관에 가둬 기르는 야생동물의 복지가 중요하고, 그것이 영업허가 기준에 들어가야 한다고 기껏 법을 만들었는데, 그 세부 내용은 동물원과 수족관 업계의 이해관계에 따라 있으나 마나 한 기준으로 채워져 있다. 문 닫아야 할 업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준 자체를 관행 수준에 맞추는 방향으로 진행 중이다. 허가 업무를 진행하는 검사관도 동물복지를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업계 경력자로 채워졌다. 이대로라면 기존 신고제와 결과적으로 별다를 바 없는 허가제가 될 공산이 크다.
‘동물복지’가 인기 좋은 말이어서 어떻게든 써야 하는 마음은 이해한다. 안 쓰는 것보다는 낫다. 그렇지만 동물에게 필요한 삶의 질이라는 것에 대해 공부도, 고민도 없이 대충 정책을 꾸미는 용도로 사용한다면, 진짜 동물의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는다. 동물정책을 만들고 펴는 사람들이 기본적인 동물복지 공부를 좀 하면 좋겠다. 막연한 상상으로 공포만 키우지 말고.
최태규 (수의사·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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