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성한 어구에도 잘 잡히던 물고기들, 어디로 갔을까[김창일의 갯마을 탐구]〈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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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는 다양한 낚시도구, 작살류, 그물류를 볼 때마다 생각에 잠긴다.
저런 종류의 어구를 사용해서 생계를 꾸려 갈 수 있었다면 물고기 개체수가 많아서였을까 아니면 수렵 도구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기술이 뛰어나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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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어로 방식을 ‘전어지’(서유구·1840년경)에서는 포리법(捕鯉法)이라 소개하고 있다. “사람들이 각자 나무 몽둥이를 들고 하류의 먼 곳에서 얼음을 두드리면 소리에 놀란 물고기가 달아나다가 그물을 둘러놓은 안으로 들어간다. 그물 위 얼음에 구멍을 뚫어, 물고기가 지나가면 작살로 찔러서 잡는다.” 마지막 단계에서 서유구는 작살로 찔러서 잡는다고 했고, 로웰은 삼봉낚시 홀치기로 잡는 현장을 기록했으나, 전체적인 어로 과정은 동일하다. 작살이든 홀치기든 물고기 개체수가 어느 정도 있어야 가능한 방식이다.
정약용은 1801년 강진으로 유배되기 전 경상도 장기현(지금의 경북 포항시 장기면)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칡넝쿨 등을 잘게 찢어서 만든 엉성한 어망으로 물고기를 잡다가 놓치기를 반복하는 걸 본 정약용은 어부들에게 무명이나 명주실로 그물망을 만들라고 조언했다. 당시에는 칡 껍질, 대마 껍질, 면사 등으로 그물망을 만들었고, 가죽나무 껍질, 삼, 칡 줄기를 이용해 뜸줄, 발줄, 닻줄을 제작했다. 어부들이 면사로 그물을 만들 줄 몰라서 투박한 그물을 사용한 건 아닐 터. “부잣집에서는 삶은 명주실로 그물을 만들기도 한다”고 ‘전어지’에 기록돼 있다. 명주실 그물을 가난한 어부가 사용하기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밀하게 짜이지 않은 성긴 그물로 어부들은 물고기를 잡았다. 지금 이런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다면 어떨까. 아마도 우리는 생선 맛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조선시대 육지와 가까운 바다에는 지금보다 물고기 개체수가 많았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전라도 무장현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조선 후기)는 창살 모양의 ‘어전(漁箭)’으로 고기 잡는 모습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어 눈길을 끈다. 무장현(지금의 전북 고창군) 갯벌에 설치된 어전은 죽방렴과 유사한 형태다. 어살이라고도 부르는 어전은 물고기가 썰물에 빠져나가지 못해 꼼짝없이 갇히는 방식의 나무 울타리다. 이와 같은 원리로 돌담을 쌓아서 가두리를 만드는 돌살(혹은 독살, 원담, 갯담)이 있는데 둘 다 어구 기능은 거의 상실했다. 이런 방식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만큼의 물고기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투박하고 거칠고 성긴 어구에도 잘 잡히던 물고기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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